이번 결정으로 노딜 브렉시트(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이탈하는 것)라는 파국의 급한 불은 껐지만 불확실성은 남아 있다. 영국 의회가 기존 브렉시트 합의안을 수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걸려 있는 탓이다. 결국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장본인이면서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민낯을 드러내면서 영국의 이미지 추락도 불가피하게 됐다.
◆'유럽 금융 1번지'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영국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를 결정한 것도, 리스본 조약 50조에 따라 브렉시트를 개시한 것도 영국이다. 그러나 국민투표를 치른 뒤 1000일이 지나도록 스스로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하고 있다. '시간끌기'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브렉시트를 공언해야 EU와의 합의가 시작되는데 그마저도 시간을 끌면서 27개 EU 회원국들의 눈총을 받았다. 2년 넘는 시간을 들여 마련한 브렉시트 합의안은 사실상 마지막 단계인 영국 의회에서 번번히 통과가 좌절됐다.
영국은 한때 유럽 진출을 꿈꾸는 국가나 개인의 관문이었으며 수도는 세계 금융 1번지로 꼽혔다. 그러나 브렉시트이후 영국과 런던의 위상에는 크게 균열이 생겼다. 영국을 금융 허브로 만들었던 금융권이 속속 이웃 유럽 국가로 떠났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등에 따르면 BMW와 일본 혼다자동차 등 자동차 업체들도 영국 내 생산라인을 없애거나 중단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브렉시트로 인해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졌지만 브렉시트는 사실 경제 이슈가 아닌 '정치쇼'라는 지적은 이미 여러번 나왔다. 브렉시트를 야기했던 찬반 국민투표만 해도 그렇다. 2016년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국민투표 카드를 꺼냈다. EU 잔류를 전제로 추진한 것이지만 의외의 결과가 나오자 캐머런 총리는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캐머런 총리의 바통을 이어받은 메이 총리는 EU와 영국 의회 눈치를 보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총리만이 아니다. 현재 영국 의회는 집권 보수당을 중심으로 한 연정이 하원의 절반 이상인 만큼 보수당 내에서만 입장을 정리한다면 합의안 가결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뚤어진 자만심으로 재차 승인투표를 미루어 혼돈을 가중시켰다는게 영국 가디언 등 현지 언론의 지적이다. 미국 정치주간지 더네이션도 영국 정치의 위기를 지적하면서 의회가 브렉시트 과정에서 보여준 혼란은 영국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英하원에 넘어간 공...'웨스트민스터'에 쏠린 눈
EU는 정상회의를 통해 이른바 '투 트랙' 브렉시트 연기 방안을 제시했다. 다음 주까지 영국 하원이 브렉시트 합의안을 승인하면 유럽의회 선거 직전인 5월 22일까지 브렉시트를 연기한다는 것이 첫 번째 방안이다. 5월 23~26일 예정돼 있는 유럽의회 선거에 차질을 주지 않기 위한 판단으로 보인다.
그러나 합의안이 부결되면 4월 12일까지 영국이 '노딜 브렉시트'를 선택하거나,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 제안이다. 만약 영국 하원이 브렉시트 합의문을 승인하지 않으면 일단 4월 12일까지 브렉시트를 연기하되 전날인 4월 11일까지는 영국이 차기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할지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영국이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 4월 12일 '노딜' 상태로 자동 탈퇴하게 된다.
이에 따라 오는 26∼27일로 전망되는 브렉시트 제3 승인투표에서 합의안이 가결되면 브렉시트 시기는 5월 22일로 연기될 수 있다. 메이 총리도 막판 설득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론자 등이 이에 찬성할 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들은 기존에 진행된 연기 승인투표에서 지속적으로 반대 입장을 내세웠던 탓이다.
이제 결국 노딜 브렉시트의 향방을 정하는 공은 영국 의회에 넘어갔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회의를 마친 뒤 "4월 12일은 영국의 유럽의회 선거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날"이라며 영국 의회의 역할론을 강조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그러나 메이 총리의 바람과는 다르게 다음주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승인투표 자체가 이뤄질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BBC 등 외신은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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