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화가 남관 개인전서 실험정신 재조명

  • 현대화랑서 6일부터 30일까지

 남관, 삐에로 가족 85-A, 1985, 129X159 cm [현대화랑]

추상화가 남관(1911~90)의 개인전이 열린다.

현대화랑은 ‘남관의 추상회화 1955~1990’전을 지난 6일부터 30일까지 개최하고 6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 남관은 1955년 44세의 나이로 프랑스 파리로 떠나 1년 만에 동서양의 화풍을 융합한 화풍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광복 이후 우리나라 화가로는 처음 파리로 건너간 경우다. 1958년에는 전위적인 예술모임인 ‘살롱 드 메’ 초대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1966년에는 프랑스 망통회화비엔날레에서 ‘태양에 비친 허물어진 고적’이라는 작품이 1등상을 받았다. 프랑스 작업 시기에는 고대 유물과 유적지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풍식이나 침전된 것 같은 화면이 나타난다. 이 같은 화풍은 한국전쟁의 참상을 추상으로 표현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전시에서 1층은 파랑을 많이 쓴 국내에서의 작품을, 2층에서는 파리 시절의 작품을 선보인다.

1962년부터는 고대 상형문자가 작품에 등장하고 종이 조각을 잘라 구도를 잡아 색을 칠하고는 떼어내는 작업을 시도한다. 현대화랑은 작가의 실험정신을 다시 조명하기 위해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1968년 귀국한 이후의 작품들은 한층 밝아지고 청색이 많이 들어가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파리에서는 동양에 뿌리를 둔 작품을 선보였던 가운데 서울에 있으면서는 파리를 상상하는 식의 작업을 한다.

1957년작 ‘피난민’은 입체주의나 야수파의 특징도 드러난다. 중앙집중 구도가 드러나고 화면의 질감을 예민하게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작품들은 태고의 유물들의 철 표면이 부식된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이를 통해 전쟁의 참상과 피폐함을 표현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1980년대에는 작품에 문자를 활용하는 경향이 더 강해진다. 한자 같기도 하고 사람을 그린 것 같기도 한 가운데 신라 왕관을 그린 것 같기도 하다. 색 표현이 능수능란해진 점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무척 완고해 타협할 줄을 모르는 성격으로 국전심사위원장으로 있으면서는 위원들의 결탁 움직임을 보고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도 했다. 여행이나 놀이에도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작업에만 몰두하는 열정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가는 14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미술학교를 졸업했다. 해방 후 귀국해 1948년부터 1951년까지 숙대와 홍대 교수를 역임한다. 1968년 프랑스에서 귀국한 이후에는 1978년까지 홍대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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