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달경제 고속성장 뒤에 가려진 배달원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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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예지 기자
입력 2020-01-0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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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中 배달경제 전년比 30% 성장…메이퇀·어러머, 이용자 수 경쟁 치열

  • 배달시간 초과되면 벌금 물어… 압박 받는 배달원들 살인까지

#장대비가 쏟아지는 금요일 저녁, 중국 상하이에 거주하는 22살 와이마이(外賣, 음식배달 서비스) 배달원 왕펑의 휴대폰으로 ‘띠링’ 하는 주문 알람이 울린다. 곧바로 오토바이에 올라 탄 왕펑은 시속 120~130㎞에 달하는 속도로 배달에 나선다. 최대한 빠른 시간에 최대한 많은 물량을 배달해야 그만큼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배달 한 건당 받는 돈은 7~8위안, 우리 돈으로 1200~1300원이다. 이날 왕펑의 배달량은 30건으로 평소에 비해 적은 편이다. 주문이 많이 몰리는 저녁시간대엔 적어도 7건의 배달을 나가야 적당한 하루 일당을 벌 수 있을 텐데 퇴근길 교통체증이 말이 아니다. 왕펑은 주문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해 보지만 “시간 안에 오지 않으면 ‘나쁜 평가’를 남길 수밖에 없다”는 말만 돌아올 뿐이다. 나쁜 평가를 받으면 50위안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반나절 고생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화를 끊은 왕펑은 신호등도 무시한 채 폭주족처럼 가속페달을 밟는다.

중국 언론 보도를 종합해 정리한 ‘와이마이 배달원의 하루’ 가상 시나리오다.

최근 중국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배달원의 비극적인 사고 소식이 쏟아진다. ‘배달앱 전성시대’라 불릴 만큼 음식 배달 시장이 고공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유난히 빈도가 잦고 내용이 참혹하다.

배달원의 안전은 뒷전으로 한 채 고객 확보에만 열을 올리는 배달 플랫폼 업체들 간 치열한 패권 다툼이 낳은 비극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고속성장 배달 앱 시장··· 알리바바·텐센트 패권다툼 치열

과거 피자·치킨 배달조차 흔치 않았던 중국은 5년 사이 글로벌 최대 음식 배달 시장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메이퇀연구원이 발표한 배달시장 조사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음식배달 시장 규모는 2018년 4420억 위안(약 74조3532억원)보다 약 30% 성장한 6035억 위안에 달한다.

시장은 중국 'IT공룡'을 등에 업은 두 업체가 양분하고 있다. 텐센트와 알리바바를 각각 든든한 후원자로 두고 있는 메이퇀뎬핑(美團·이하 메이퇀)과 어러머(餓了麽)다. 이 두 업체의 중국 배달앱 시장 점유율은 90%를 차지한다.  2018년 둘을 합친 주문건수만 무려 100억건에 달한다.

주목할 점은 두 업체의 패권 다툼이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해 시장선두주자였던 어러머가 메이퇀에 뒤처지면서 경쟁이 더욱 격화하는 모양새다.

어러머는 2018년까지만 해도 시장 점유율 48%로 메이퇀(43%)을 따돌리고 업계 1위를 이어갔다. 그러나 1년 사이 점유율이 43%로 떨어졌다. 반면, 메이퇀은 52%로 늘어나 세계 1위 배달 앱으로 성장했다.

어러머를 지원사격하는 알리바바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알리바바는 광고, 클라우드 컴퓨팅 등 자사의 생태계로 이용자를 끌어모으고 묶어두는 데 배달앱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배달앱이 그만큼 소비자 접근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95억 달러(약 11조원)를 들여 어러머를 완전히 인수하고 129억 달러의 투자 계획을 밝히며 텐센트에 도전장을 내민 이유다.

알리바바는 이용자 수를 늘리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데, 가장 중점을 둔 건 배달 시간 단축이다. 많은 소비자들이 배달업체를 고를 때 가장 많이 고려하는 요인 중 하나가 배달 속도이기 때문이다. 알리바바는 올해 배달원 수를 늘린 건 물론이고, 주문부터 배달까지 30분 이내 완료를 원칙으로 삼았다. 배달이 15분 이상 지연될 경우 음식값의 25%를 환불해 주겠다며 대대적으로 광고도 했다. 

메이퇀도 이에 질세라 비슷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배달원의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도착 예정 시간보다 배달 시간이 늦어지면 항의 성격인 나쁜 평가를 작성할 수 있게 했다.
 

중국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메이퇀에 소속된 배달원들. [사진=소후망 캡처]

◆치열한 경쟁 속 배달원 비극 늘어나··· 처우 개선 목소리 커져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서 피를 흘리는 건 배달원들이다. 예전보다 훨씬 바빠진 배달원들이 배달 시간을 맞추기 위해 위험운전을 일상화하는 왕펑 같은 배달원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상하이에서는 지난해 상반기 동안 하루 평균 2건의 배달 운전 사고가 발생했다. 이 중 어러머는 전체의 34.2%인 111건, 메이퇀은 109건으로 나타났다.

항의를 받으면 벌금을 물어야 하는 제도 탓에 가뜩이나 적은 월급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중국 현지 언론 36커에는 한 초보 배달원이 운전 미숙으로 음식 일부가 쏟아진 채로 배달을 완료해 고객의 식사값을 대신 지불해 줬음에도 나쁜 평가를 받아 급여에서 200위안이 공제됐다는 사연이 소개됐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배달원은 인터뷰에서 “배달 일을 시작한 첫달 이런저런 이유로 벌금을 물어 월급의 절반밖에 못 받았다”고 토로했다.

배달원의 벌금 압박이 커지면서 지난달에는 급기야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지난해 12월 23일 중국 우한의 한 슈퍼마켓에서는 가게에서 제품을 픽업하던 메이퇀 소속 배달원이 슈퍼마켓 직원과 마찰을 빚다 결국 직원을 칼로 찔러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의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중국 내에선 항의에 따른 벌금 문제로 두 사람이 다툰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처럼 배달원의 애환이 담긴 사연이 알려지면서 중국에선 배달원 업무 환경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질책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중국 관영언론인 중앙(CC)TV는 배달원의 고충을 조명하면서 “앞으로 배달원이 고임금 숙련 노동자로 일할 수 있도록 훈련 프로그램이 제공되는 등 변화가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메이퇀과 어러머도 안전하고 정확한 배달원의 배달을 위해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한 교통정보 알림 등 안전 장치를 마련할 예정이다. 메이퇀은 슈퍼마켓 살인사건에 대해 해명하면서 "향후 배달원들의 안전을 위한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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