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11시30분 체감 기온 영하 2도의 쌀쌀한 날씨에도 경기도 용인의 한국 민속촌 광장은 인파로 북적였다. 주황색 팻말을 든 안내원 열댓 명이 중국어로 외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내 30~40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모여들었다.
두꺼운 외투 속에 형형색색의 한복을 입은 이들이 눈에 띄었다. 한국에 오기 몇 주 전 미리 사뒀던 것이란다. 한국 관광과 한국 문화 대한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들의 관심은 여전했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에 본사를 둔 건강식품 판매업체 이융탕(溢涌堂) 그룹 직원 5000명이 인센티브 관광을 위해 지난 7일부터 5박 6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100여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들뜬 마음으로 한국 관광에 나선 이들을 동행 취재했다.
한국민속촌에서 해외마케팅을 담당하는 박용우 대리는 “지난해 2000명의 중국 단체 관광객이 방문하며 회복 기미를 보인 데 이어 올해는 연초부터 더 많은 인원이 방문했다”고 반색했다.
이날 민속촌에는 오전과 오후로 조를 나눠 1300명의 이융탕 직원들이 방문했다. 기자가 만난 오전 선발대 540여명은 이미 민속촌 관광과 점심식사를 끝내고 서울 경복궁으로 이동하기 위해 집합하는 중이었다.
한국 방문이 처음이라는 왕샤오진(王曉進)씨는 한껏 들떠 있었다. 그는 “점심으로 먹은 갈비탕이 너무 맛있었다”며 “민속촌에서 한국 전통음식을 먹으니 새로운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오늘 경복궁과 청와대, 남산타워를 갈 예정인데 빨리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추운 줄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둘러 민속촌을 나선 이융탕 임직원들은 빨간 대형 관광버스 13대에 몸을 싣고 경복궁으로 향했다. 한 시간 여 만에 도착한 경복궁에는 더 많은 중국인들이 관광 중이었다. 이날 이융탕 그룹 외 다른 중국 기업에서도 약 500명의 관광객이 방문한 터라 경복궁 안이 꽤나 떠들썩했다.
4년 전 서울에 방문했지만 경복궁 방문은 처음이라는 장샤오제(張曉潔)씨는 외투를 벗고 한복의 고운 자태를 자랑하면서 곳곳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장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경복궁이나 덕수궁 같은 고궁에서 한복을 입고 사진을 촬영하는 게 요즘 유행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올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이루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 사극 드라마 팬이라는 류팅팡(劉廷方)씨는 수문장 교대식을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대장금, 선덕여왕, 공주의 남자부터 가장 최근의 녹두전까지 한국 사극 드라마를 빠짐없이 챙겨 봤는데 경복궁에서 이런 공연을 보다니 마치 사극 드라마 속에 들어온 기분“이라며 “다음엔 가족들과 한국에 오고 싶다”고 말했다.
관광일정을 즐기면서도 한편으론 내일 있을 쇼핑 일정을 기대하는 이들도 많았다. 마융룬(馬永潤)씨는 “오늘 관광명소를 보는 것도 물론 즐겁지만, 사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쇼핑”이라며 “내일 면세점에 가서 구매할 제품 리스트를 미리 작성해 놨다”고 밝혔다.
이번 이융탕 인센티브관광을 유치한 한국 여행사인 화방관광 관계자에 따르면 이융탕 직원들은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 동안 조별로 서울 곳곳에 롯데면세점과 신세계, 신라면세점 등을 찾아 쇼핑을 즐겼다.
올 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한국 방문이 유력해 보이는 가운데 이번 이융탕 그룹의 단체관광이 이뤄지면서 한한령 해제 기대감도 높이고 있다. 중국 당국은 2017년 사드 갈등 이후 한국행 단체 여행 상품 판매를 금지해왔다. 인센티브 관광 역시 이러한 분위기 속에 급감세를 보였다.
이날 이융탕 직원들이 방문한 경복궁도 한한령 여파로 그간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줄어든 상황이었다. 경복궁 홍재석 주무관에 따르면 경복궁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2016년 240만명에서 2017년 40만명으로 급감했다. 2018년엔 26만명으로 감소폭이 더 커졌다. 다만 지난해는 11월까지 모두 57만명이 찾았다. 개별 관광객을 중심으로 중국인 방문객이 서서히 증가하면서다.
홍 주무관은 “지난해 연말 중국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이 열리고,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한국에 방문하는 등 양국 관계 개선의 신호가 감지된 것을 알고 있다”며 “게다가 시진핑 주석의 방한도 앞두고 있어 올해는 중국인 관광객이 좀 더 늘어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전문가들은 시 주석 방한이 한·중 관계 변화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박승찬 중국경영연구소 소장은 “최근 한·중 관계 개선의 분위기는 관광업계에서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며 “시 주석 방한을 앞두고 중국 측이 인센티브관광 허용 등으로 가지고 있는 패를 하나씩 풀어놓고 있는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박 소장은 한한령 해제를 예단할 수는 없다고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그는 “시 주석이 방한한다면 양국 관계가 사드 이전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지만, 미국이라는 변수가 있다”며 “미국은 양국 관계 회복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고 이런 이유로 시 주석의 방한도, 한한령 해제도 100% 확신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