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소멸시효 지난 키코 속속 배상 결정··· 2000억 줄배상 시작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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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기자
입력 2020-02-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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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銀, 분쟁조정안 수용…하나·신한도 이사회 설득 중

은행들이 키코(KIKO) 손해배상 조정을 수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아직까지 분쟁조정을 신청하지 않은 피해기업들에 대한 배상까지 이뤄질 경우 그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키코 피해기업 전체에 대한 은행들의 배상이 이뤄지게 되면 최대 2000억원까지 늘어날 수 있는 것으로 금융권은 내다보고 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이 금융감독원의 키코 손해배상 조정안을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3일 이사회를 개최한 결과 분쟁조정 결과를 수용해 42억원을 배상하겠다고 밝혔다. 2008년 키코 사태 이후 12년 만에 은행의 첫 배상이 결정된 것이다.

하나은행도 이날 이사회를 열고 분쟁조정안 수락 여부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은행은 분쟁조정안 수락에 긍정적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도 이사회를 열고 분쟁조정 결과 수락을 재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금감원의 조정안을 받아들이면서도 은행들의 고민이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일부 피해기업에 대한 배상을 시작하면서, 나머지 피해기업도 자율조정(합의권고) 방식으로 분쟁조정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금감원에서는 147개 기업이 분쟁조정을 신청할 수 있으며, 배상 규모는 최대 2000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논의할 범은행권의 자율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고 권고한 상황이다.

만약 은행들이 자율협의체 논의 결과 배상이 신통치 않을 경우 피해기업이 금감원에 추가 분쟁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자율협의 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배상금을 지급해야 할 우려가 있다. 자율협의에 들어가야 할 은행들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이미 분쟁조정을 통해 배상을 한 선례가 있는 만큼, 추가 신청이 이뤄지게 되면 은행들로서는 배상을 사실상 피할 수 없는 처지다.

피해기업에 대한 배상이 자칫 배임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점도 우려스럽다. 키코 피해기업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민법상 소멸시효를 지난 상태다. 대법원까지 간 재판에서도 사기성이 없다는 판정이 내려진 만큼 은행들이 법적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에서는 은행의 공공적 성격, 평판 리스크, 소비자 보호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배상이 늦었을 뿐 배임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윤석헌 금감원장도 지난해 말 "키코 분쟁조정안은 고객을 도와주겠다는 의사 결정이라 배임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은행의 외국인 주주 등이 이 같은 판단에 모두 동의할지 확실치 않다.

시중은행 고위 임원은 "DLF(파생결합펀드)는 은행의 잘못이 분명하고 깔끔하게 손해를 배상하는 게 은행 경영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는데, 키코는 사정이 다른 면이 있다"며 "지금은 막강한 검사권을 쥐고 있는 금감원의 심기를 건드릴 경우 후폭풍을 걱정해 조정안을 수용하고 있으나 내심 배상 규모가 너무 커지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우리, 하나, 신한은행 본점 전경 [사진=각 은행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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