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진행형 '허스토리'] ①첫 단추 잘못 낀 한·일 위안부 문제…"지금부터가 진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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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인 기자
입력 2020-02-0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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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문제·피해자’ 빠진 한·일 청구권 협정·위안부 합의

  •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 2차 재판 진행…“이제 시작이다”

“사과해라. 그래야 짐승에서 인간이 된다.”

위안부 소재 영화 ‘허스토리’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관부재판(關釜裁判·부산 종군위안부 여자근로정신대 공식사죄 등 청구소송) 일본 정부를 향해 내던진 외침이다.

위안부 피해 문제는 1990년대 초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김 할머니의 용기는 관부재판으로 이어졌고, 일본 정부가 ‘위안부’를 처음으로 인정한 재판이 됐다. 하지만 이후 5년간 계속된 항소, 상고 끝에 1심 판결이 뒤집히면서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는 과거에 맺어진 한·일 청구권 협정(1965년)과 한·일 위안부 합의(2015년)에 있다.

◆‘역사문제·피해자’ 빠진 한·일 청구권 협정과 위안부 합의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은 지난 1965년에 체결될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부터 시작된다.

협정에 따르면 일본은 한국에 대해 조선에 투자한 자본과 일본인의 개별 재산 모두를 포기하고, 3억 달러의 무상자금과 2억 달러의 차관을 지원한다. 또 한국은 대일 청구권을 포기하는 것에 합의했다.

문제는 여기에 위안부 등 역사적 문제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는 2005년 한·일 협정문을 공개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 정부·군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는 청구권 협정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있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쟁에 따른 진상규명, 책임 추궁, 사죄, 배상 등이 빠진 협정으로 위안부 등 식민지 피해자의 손해 배상 청구권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 정부는 이미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위안부, 강제징용 등 피해자에 대한 문제가 해결됐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하지만 한·일 청구권 협정 속 일본이 주장하는 ‘배상금’이라는 표현은 없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이 더욱 고조됐다.

당시 한·일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점에 양국이 동의했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 예상으로 조성된 기금 10억엔(약 100억원)을 피해자들에게 지급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정부가 피해자 할머니들과 상의 없이 합의를 체결하고, 한·일 관계 회복을 이유로 ‘비공개 이면 합의’까지 해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비공개 이면 합의’에는 △‘위안부’ 피해자 관련 단체 설득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 관련 노력 △제3국 ‘위안부’ 기림비 설치 미지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공식 명칭으로 사용 등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오성희 정의기억연대 인권연대처장은 “문제 해결 과정이 피해자 중심으로 채택해야 하는데 청취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 과정에서 인권회복, 권리구제하는 방안 중심의 해결 절차가 다 생략됐다”고 지적했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1425차 수요집회가 열리는 모습. [사진=박경은 기자, kyungeun0411@]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 2차 재판 진행…“이제 시작이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제1425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가 열렸다. 같은 날 오후에는 서울중앙지법 제15민사부(부장판사 유석동)가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차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위안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지난 2016년 12월 위안부 피해자들이 당시 박근혜 정부가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반발하며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차원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첫 재판은 소송 후 3년이 지난 지난해 11월 13일에서야 이뤄졌다. 일본 정부가 헤이그 송달협약 13조(자국의 안보·주권을 침해하는 경우)를 근거로 우리 법원이 발급한 소장 접수 자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2차 재판도 1차 재판 이후 약 3개월 만에 열렸다. 3차 재판은 오는 4월 1일에 진행된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1차에 2차 재판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오성희 처장은 이날 기자에게 “제일 이상적인 건 정부에 등록된 생존자들이 살아계실 때 그런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일본 정부가 그럴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것을 꼬집으면서 “(할머니들이) 살아계실 때 피해자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풀리면 좋겠지만, 안 돼도 어쨌든 저희는 계속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 처장은 “할머니들 돌아가신다고 하더라도 이걸 요구하면서 싸워가야 한다는 걸 다른 나라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이 알고 한국 시민 청소년 청년들도 알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많이 알고 있다”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돌아가셔도 문제 해결을 위해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했다.

한편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세상을 떠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모두 6명으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19명으로 줄었다. 또 일본 정부의 접수 거부로 위안부 손해배상 재판이 지연되는 동안 소송을 제기한 위안부 피해자 중 5명은 세상을 떠났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해 11월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첫 재판이 소송 제기 이후 3년 만에 처음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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