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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여파로 많은 직장인들의 업무공간이 회사에서 집으로 바뀌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판교에 위치한 IT기업에 다니는 30대 직장인 장씨는 지난달 말부터 회사 방침에 따라 선별적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가능한 한 외출을 삼가고, 예방 수칙을 지키며 생활하던 중 인근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동거 중인 60대 어머니가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확진자가 방문한 병원에 같은 날 진료를 받았다. 순간 집 안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장씨와 가족들은 별일 없을 거라 되뇌며 곧장 자치구에 확진자 동선을 시간대별로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또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질병관리본부에도 문의했다.
◇"나만 재택근무여서 불안해"
코로나19 여파로 재택근무가 곳곳에서 시행되면서 직종·직급이나 거주 형태, 가족 간 재택근무 여부 등에 따른 체감 효과가 제각각이다. 특히 직장인들의 개인 간 접촉은 줄었지만, 가족 간 접촉까지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맞벌이 부부거나 부모·형제 등 경제활동을 하는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 본인은 재택근무를 해도 다른 가족들은 하지 않으면 내심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장씨는 "최근 취미 활동도 못해 가뜩이나 갑갑해 하시는 어머니께 당분간 집에만 머무르시라고 말씀드리기가 쉽지 않았다"며 "또 잠복기가 있는 감염병이다보니 가족 모두 건강 염려증에 시달려야 했다"고 말했다. 60대인 아버지는 기저질환이 있어 부모의 일거수 일투족에 예민해졌다고 한다. 다행히 장씨의 어머니는 2주 동안 이상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이달 초부터 재택근무 중인 항공사 직원 박씨(34)도 비슷한 상황이다. 배우자 이씨가 병원에 근무하면서 수많은 환자들과 접촉하기 때문이다.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탓에 이씨 스스로도 늘 조심하고 있지만,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이 많다. 무엇보다 1살짜리 영아가 확진을 받은 사례까지 나오면서 4살, 2살인 두 딸의 위생에 더욱 신경쓰고 있다.
이들 동갑내기 부부는 "둘 중 한명이 재택근무가 아니다보니 코로나19와 관련해 신경쓰이는 건 일반근무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며 "확진자 증가 기세가 꺾이고 있다지만 서울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해 아직 안심할 순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 가족으로부터 코로나19가 전이돼 확진 판정을 받는 사례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재택근무가 아닌 '재택격리'?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재택근무는 평사원이나 대리에겐 '일할 맛'이 나지만, 과장은 '재택감옥', 상무는 '심심한 시간'을 보낸다는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하지만 젊은 미혼 또는 직급이 낮은 직원들 사이에서도 재택근무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대부분 환영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비자발적 재택근무는 피로감이 쌓인다는 의견도 있다.
극과 극의 평가가 나오는 데에는 업무처리 방식과 재택근무 환경의 차이가 크다. 잔심부름이나 서류 작업 등 실무를 직접 처리해야 하는 대리급 이하 직원은 재택근무로 눈치 볼 필요가 없어졌고, 1인 가구의 경우 집 안에 업무에 방해되는 요소가 없어 재택근무의 장점이 크다. 다만, 누군가는 재택근무를 하면 회사에서 논다는 의심을 할까봐 오히려 평소 업무량과 속도를 맞추려고 긴장 상태가 더해지는 부작용도 있다고 한다.
평소 외근이 잦았던 김씨(30)는 "출근 준비 시간과 이동 동선을 줄여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장점이지만 코로나19에 따른 타발적 재택근무로 외출을 하지 못하는 갑갑함이 있다"고 말했다. 1인 가구는 주로 작은 원룸에서 생활해 온종일 재택근무를 하면 답답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카페에서 원격으로 일하기에는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될 수 있어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는 되레 '격리'라는 느낌이 강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씨는 "일반적인 상황의 재택근무라면 환영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는 격리나 집콕 같은 부정적 느낌이 먼저 떠오른다"며 "업무에 중요한 미팅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을 하려니 매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통근시간 아끼니 여가시간 늘었다"
'저녁이 있는 삶'이 실현된 데 대한 만족감을 드러내는 직장인도 많았다. 다소 갑갑한 것과 별개로 여가 시간이 늘어나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IT기업에 근무하는 3년차 직장인 서씨(28)도 처음에는 낯설었던 재택근무가 익숙해지면서 점차 시간 활용에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서씨는 "통근시간 대신 얻은 육체적 편안함이 처음에는 게으름으로 변질됐으나 지금은 그동안 미뤄왔던 PC 속 불필요한 파일 정리부터 집안일까지 틈틈이 해결하는 에너지원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로 출근했다면 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던 일들이 하나둘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며 "최근에는 20분 만에 간단히 식사를 해결한 후 집 앞 치과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면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퇴근 시간에 맞춰 동네 산책을 하거나 유튜브 등을 보고 직접 음식을 만드는 등 혼자만의 취미 생활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건축업 종사자인 유씨(28)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자신의 업무에만 집중하다 보니 정해진 근무 시간 내에 업무를 끝낼 수 있게 됐다"며 "반려동물과 함께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점도 심리적 안정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인 시간이 많아져 그동안 잘 신경쓰지 못했던 집안일들을 챙기게 됐다"며 "물론 업무시간에는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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