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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사망 직원 자녀 특채 협약...복지정책인가, 일자리 세습인가?... 대법 공개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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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근 기자
입력 2020-06-2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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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수 대법관 "유족채용이 특혜라면, 재벌 경영권 승계는 뭐라 할 것인가?"

  • 기업체 측 "산재 사망 자녀 채용은 '부모찬스'" 주장... 노동계 "부모 사망이 찬스냐" 발끈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직원의 자녀를 특별 채용하도록 한 노사 단체협약은 정당한 산재보상 정책일까? 아니면 일자리 세습을 보장하는 악습일까?

이 같은 조항을 갖고 있는 현대·기아차 단체협약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공개변론이 대법원에서 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7일 산업재해 사망자 A씨의 유족이 기아자동차와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 사건 공개변론을 열었다.

이날 공개 변론에서 현대·기아차 측 대리인은 “산재 유족이 고용 세습 조항으로 취업을 보장받는 것은 부모 찬스를 사용해 양질의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것”이라며 다른 청년 구직자를 차별해 공정성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특별 채용이 산재 유족에 대한 보상이라는 반론에 대해서는 “산재 유족이 실력으로 채용되면 특별수당을 지급해서 우대할 수 있다”며 반드시 채용으로 보상을 강제할 필요가 없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유족 측은 “사회의 부가 한쪽으로 쏠리고 빈곤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공정의 가치는 사회적 약자 보호의 필요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산재 유족 보호라는 측면에서 공정의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기아차에는 현재 특별 채용된 산재 자녀가 전체 채용 규모의 0.5%도 채 되지 않아 청년구직자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논리도 폈다. 이어 “회사가 자발적으로 체결해 25년간 유지해온 협약을 스스로 부정해 모순”이라는 지적도 했다.

유족 측 참고인인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는 “기업 스스로 산재 자녀를 채용하겠다고 약속한 것이지 손목을 비틀어 도장 찍게 한 건 아니다”라며 “협약을 무효로 하는 것이 오히려 기업의 채용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유족 측 대리인도 “단체협약을 무효로 하려면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며 “공서양속(공공의 질서와 선량한 풍속)의 한계를 명백히 일탈하지 않는 한 단체협약은 유효하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기아차 측은 “(산재자녀 특별채용 조항은) 양 당사자 사이에 의사의 합치라는 계약 요소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법에 따라서 효력이 부여된 것”이라며 “(채용을 둘러싼) 법률행위의 효력을 다투기 위한 전제로서 협약을 따져봐야 한다”고 답했다.

앞서 1·2심은 “이런 단체협약 규정이 사용자의 고용계약 자유를 제한하고,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등 사회 정의 관념에 반한다”며 무효로 판단한 바 있다.

대법관들의 질의도 이어졌다.

김선수 대법관은 현대·기아차 측이 '고용세습', '일자리 대물림'이라는 표현을 반복하자 "사망 근로자 자녀를 사회적 신분으로 볼 수 있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김 대법관은 "사망 근로자 자녀를 사회적 신분에 의한 특혜라고 본다면 대기업 사주 자녀로 태어나서 부와 경영권을 세습하는 것도 특혜라고 공격해도 할 말 없을 것 같다"고 꼬집었다.

민유숙 대법관은 특별 채용을 해줄 가족이 없는 비혼 직원은 산재 자녀 특별 채용 협약으로 차별을 받을 여지가 있다며 특별 채용 조항이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를 따져 묻기도 했다.

이 사건 당사자인 이모씨는 2008년 2월 현대차 남양연구소로 전출한 지 6개월 뒤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10년 세상을 떠났다.

근로복지공단은 벤젠에 노출된 상태로 일을 하다가 백혈병을 앓게 됐다며 산재를 인정했다. 유족들은 단체협약에 따라 자녀를 회사에 채용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사측이 거절하자 소송을 냈다. 

공개변론에 앞서 대법원은 대한변호사협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관련 단체의 의견서를 받았다.

대한변협은 “산재 유족 특채에 관한 사항을 일률적으로 무효로 볼 것은 아니다”라며 “취업의 공정이나 채용에 있어서 기회의 균등에 현저하게 반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있는지를 살피고 사회질서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민주노총은 “회사의 업무로 목숨을 잃은 직원에 대해 수용가능한 범위에서 (회사가)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이라며 “채용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며 특채가 남아 있는 곳이 거의 없어 영향도 미미하다”고 말했다.

반면 경총은 “고용세습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으며, 이는 취업을 준비하는 많은 청년들에게 심각한 허탈감을 심어줄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노동계에서는 공개변론 과정에서 사측 변호사가 '산재 유족 특채가 부모 찬스'라고 말한 것을 두고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다.

한 노동단체 관계자는 "부모가 산업재해로 죽은 것이 찬스란 말이냐"라면서 "아무리 남의 일이라지만 심한 것 아니냐"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산재 사망 근로자 유족 특채'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위해 김명수 대법원장 등이 법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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