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에 거주하는 박재현씨(57·가명)는 회계 및 컨설팅 관련 업무로 25년간 직장생활을 해오다 퇴직했다. 재직 중 사회공헌 관련 사업을 주도했던 경험을 살려 협동조합에서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을 대상으로 경영컨설팅을 해주는 업무를 맡았다. 사실 박씨는 퇴사 후 재취업까지 4년가량의 시간을 들였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일반기업에 재취업하는 게 힘들다는 것을 알고 사회공헌 사업을 하는 협동조합으로 발길을 돌린 케이스다. 그는 "보수가 많지는 않지만 사회적 가치를 키우는 보람도 있고 이 나이에 이 정도 보수를 받는 것만도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1970~1990년 대한민국의 경제성장 격동기에 왕성하게 활동했던 이들. 바로 50~60대이다. 중년기라고 하기엔 나이가 많고 그렇다고 노년기라고 정의하기도 어려운 어중간한 세대다. 아직은 경제활동을 손에 놓기에는 아까운 세대라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이들에 대해 '신(新)중년세대(50~69세)'라는 별칭이 생겼다.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아 실업의 위기에 처한 이들이나 오히려 제2의 인생을 찾아 나서야 하는 시기라는 조언도 들린다. 바야흐로 이들이 출사표를 던져 인생을 재설계할 '신중년 전성시대'가 찾아왔다.
◆'희망월급 150만~200만원‧희망퇴직 나이는 71세'
16일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신중년(50~69세)은 1415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이 711만6000명으로 남성(703만4000명)보다 8만여명이 많다. 연령대별로는 55~59세가 427만3000명으로 가장 많고, 65~69세가 234만6000명으로 가장 적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서 신중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27.0%에서 지속 증가해 2021년에 30.0%를 넘어서 2026년에는 32.2%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특히 신중년 10명 중 7명은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중년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2009년 63.3%에서 지속 증가해 2017년에 68.7%로 가장 높았다가 2018년에는 68.5%로 소폭 하락했으나 전체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는 상황이다.
이들에 대한 고용상태(고용률)를 보면 2009년 61.8%에서 꾸준히 늘어 2017년에 67.1%로 가장 높았다가 2018년에는 66.6%로 소폭 하락한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신중년 취업 시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100명 중 25.7명이 '임금수준'이라고 응답했다. 일의 양과 시간대라는 응답자도 25.2명에 달했다. 이들이 취업 시 희망하는 임금은 월평균 150만~200만원이라는 응답이 26.6%로 가장 많았고, 100만~150만원이라는 응답도 22.6% 정도로 나타났다.
다만, 여전히 취업 중인 신중년은 기존 직장에서 지속 근무하길 원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1년간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신중년 100명 중 60명은 현 직장에서 계속 근무하기 위해서라고 응답했기 때문이다. '일하고 싶지 않아서'(3.5명)와 '나이가 많아서' (3.3명)라는 응답은 많지 않았다.
독립적인 경제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이들 10명 중 7명은 향후 계속 일자리를 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중년이 일을 그만하고 싶은 평균 나이는 71세인 것으로 조사됐다. 남성(72세)이 여성 (70세)보다 2년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노년층 이후에는 노동 시장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게 신중년들의 속마음인 셈이다.
◆'자신을 알고, 내 주변을 살피는 게 우선순위'
신중년이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해 더욱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조언이 이어진다. 수십년간의 사회생활 속에서 굳어진 자신의 성향을 오히려 본인이 알지 못할 경우, 재취업이나 창업 시 낭패를 볼 수 있어서다.
이를 위해 탁진국 광운대 산업심리학과 교수와 이기학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가 2003년 개발한 '한국판 직업결정척도'를 활용하면 된다.
이 척도는 한국에서 진로결정에 어려움을 겪는 원인을 △진로정보 부족 △자아정체감 △우유부단함 △진로 결정 필요성 부족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의 영향 △외부요인 등 다섯 가지 요인으로 구분했다. 해당 문항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개발된 문항으로, 일부 문항을 중장년층에게 해당하도록 수정·보완했다. 직접 자신의 상태를 파악해 보면 진로 결정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퇴직 후 신중년이 맞게 될 다섯 가지 변화 역시 대비해야 한다.
고용정보원에 따르면, 먼저 은퇴로 인해 사회에서 인정해 주는 명함이나 직함이 없어지고, 지역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는 등 자신의 지위 변화로 느끼는 상실감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퇴직 이후에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지역의 사회단체나 자원봉사단체, 평생학습 참여 등 사회와 연결고리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뒤따른다.
그동안 일과 집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생활 리듬이 퇴직 이후에는 바뀌게 된다. 갑자기 변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TV만 보면서 무의미한 일상을 보내기 십상이다. 그래서 퇴직 전에 미리 월 계획표와 하루 일정표를 작성하고 새로운 리듬을 만들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는 게 진로컨설팅 전문가들의 귀띔이다.
또 소비수준이 급변한다. 은퇴로 인해 정기적으로 들어오던 소득이 없어지면서 소비에도 제약을 받는다. 퇴직 이후 경제력에 걸맞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소득이 있던 직장 생활과는 다르게 소비수준을 바꾸는 지혜가 필요한 상황이다.
가정 내 역할도 바뀐다. 가정 안에서 아내와 남편의 역할이 변한다. 그동안 남편은 돈을 벌어오고 아내는 가정을 지켰다면, 이제는 새로운 역할분담을 해야 할 시기라는 얘기다. 100세 시대에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진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데 진로상담 전문가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체력 변화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나이가 들면 체력과 운동능력이 점점 떨어진다. 규칙적인 운동과 자신만의 건강관리법을 만들어 활력 있는 노후를 맞아야 새로운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진로상담 전문가는 "사회가 변화하는 것은 어쩔 수 없고, 급변하는 사회에 어떻게 적응할까 걱정하기보다는 자신과 주변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파악하는 게 순서"라며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데 있어서 사회를 중심에 두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우선 고려해야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해나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기회는 있다'··· 프리랜서로 가는 길
100세 시대를 바라볼 때 신중년에게는 제2의 인생보다는 인생 3모작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직장을 찾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제공해줄 수 있는 기술이나 서비스를 적극 시장에 내놓는 방향을 고민해 보는 방법도 추천된다.
특히 플랫폼(platform)을 활용하면 좋다. 플랫폼이라는 말은 원래 기차를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도록 만든 평평한 곳이라는 의미이나, 이제는 다양한 IT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가치를 만드는 생산자와 그 가치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자유롭게 만나고 연결되는 곳을 말한다.
잘 알려진 플랫폼으로는 △우버 △에어비앤비 △쿠팡 △알리페이 △페이스북 △카카오톡 △유튜브 △네이버 등이 있다. 특히 재능 공유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전문 프리랜서들의 활동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게 진로상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재능 마켓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는 주로 디자인·IT 개발·번역 등 디지털 노마드형 업무 종사자이다. 미국의 프리랜서는 노동자의 35% 정도이며,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스마트폰 앱이나 플랫폼을 활용하여 재능을 주고 대가를 받는 등 '긱 이코노미' 경제 개념의 프리랜서 시장은 수요자와 매칭을 원하는 다양한 콘텐츠로 운영되고 있다.
글로벌 추세에 따라 한국에서도 프리랜서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플랫폼에서 다양한 분야의 재능이 공유되고 있다. 생산 자동화에 의한 효율성 개선에 따라 직접 고용보다는 분야별 전문가가 등록된 플랫폼을 통해 고용문제를 해결하는 사례가 늘어가면서 향후 플랫폼 노동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이 점진적으로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시적으로 사람을 구해 일을 맡기고, 일을 처리한 후 관계를 정리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프리랜서 입장에서도 보면 전문분야에 재능을 공유하고, 조직에 종속되지 않아서 자유롭다. 적정한 시간과 일정으로 원하는 일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 만족감이 클 수 있다. 신(新)인력서비스 확산과 재능 마켓 플랫폼의 지속적인 서비스 발전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게 된다면, 판매자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중년 취업 포인트, 나이보다는 성실성'
신중년이 퇴직 후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첫째 관문인 인사담당자의 눈에 들어야 한다.
우선, 중장년 채용 시 우선 고려사항으로 인사담당자들은 ‘성실성·조직 충성도 등 인성’(34.9%)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기업문화, 기존 직원과 소통할 수 있는 조직융화력’(24.1%), ‘건강’(15.7%), ‘직무역량, 업무 전문지식’(15.7%) 순으로 많았다. 중장년 구직자들이 구직 애로사항으로 꼽는 ‘나이’를 우선 고려한다는 응답은 4.6%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돼 채용기업과 중장년 구직자가 느끼는 ‘나이’에 대한 인식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중장년 채용이 신입 채용보다 어려운가’라는 질문에는 응답기업의 38.9%가 ‘그렇다’고 답해 '그렇지 않다'(26.9%)는 답변보다 현저히 높았다. 중장년 채용이 어려운 이유로 ‘희망임금이 높아 임금협상이 어려워서’가 23.2%로 가장 많았고, ‘회사 문화, 기존 직원과의 융화가 어려워 보여서’(22.7%)가 뒤를 이었다.
반면, 중장년 채용기업이 말하는 장점으로는 중장년 채용 경험이 있는 기업 10곳 중 7곳(69.9%)은 '경영성과에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했다. 중장년이 이바지한 분야는 ‘업무 충성심, 성실성으로 일하는 분위기 쇄신’이라는 응답이 29.8%로 가장 많았고, 뒤이어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 전수’(27.8%), ‘업무 효율성 제고와 조직문화 개선’(16.0%), ‘매출 증가·원가절감·생산성 향상’(15.3%) 순으로 조사됐다.
한국고용정보원 관계자는 "고용노동부 등 중앙정부와 함께 각 지방정부에서는 신중년을 위한 다양한 재취업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며 "신중년이 재취업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나만의 진로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생애경력설계, 직업훈련, 상담, 일자리 알선 등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얻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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