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칫집 분위기가 바뀌기까지는 4개월이면 충분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다. 4·15총선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은 불과 4개월 만에 싸늘한 민심과 마주하고 있다. 당시 많은 이들은 코로나19 때문에 여당이 불리할 것으로 전망했다. 결과는 민주당의 압승이었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극단적인 이들은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결과를 부정했다. 그만큼 4·15총선이 남긴 빛과 그늘은 짙었다.
그러나 환호작약은 짧았다. 13일 리얼미터는 통합당(36.5%)이 민주당(33.4%)보다 3.1% 포인트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통합당 계열이 민주당을 앞선 것은 2016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여론 지지율이 역전된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커다란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전조다. 그런데도 여론이란 게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기 마련이라고 자위한다면 아직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것이다.
민주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좋은 시절을 보냈다. 대선, 지방선거, 총선까지 모든 선거에서 승리했다. 4·15총선은 자신감을 한껏 부풀렸다. 이런 토대 위에서 국회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고, 임대차 3법과 검찰개혁을 밀어붙였다. 추미애 장관이 주도한 검찰인사와 수사권 지휘는 지지층에서조차 무리라며 우려했다. 하지만 당내에서 쓴소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독주, 독선, 오만이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14일 갤럽 여론조사에서도 이 같은 인식은 감지된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39%로, 전주보다 5%p 급락했다. 40%대가 깨진 것은 지난해 조국 사태 이후 10개월 만이다. 언론은 “콘크리트 지지층에 금이 갔다”고 했다. 반면 부정 평가는 7%p 상승한 53%였다. 긍정과 부정 격차는 14%p까지 벌어졌다. 심각한 것은 30대에서 무려 17%p, 서울에서 13%p나 떨어졌다는 점이다. 둘 다 문재인 정부에는 핵심 지지층이다.
지지율 하락은 그동안 경고음을 무시한 결과다. 독선·독단적인 국정운영은 지지층마저 등 돌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부동산 정책 실패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즉흥적이며 감정적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부동산 문제는 부정 평가에서 6주 내내 1위를 지켰다. 서민들까지 화가 났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는 바람에 내 집 마련은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전셋집은 사라지고, 전세금은 수억씩 올라 전세 난민 신세가 됐다.
문재인 정부 3년 동안 부동산 정책은 22차례 나왔다. 결과적으로 집을 사지 않은 사람만 바보가 됐다. 고위공직자 부동산 실태는 상대적 박탈감을 넘어 절망하게 했다. 경실련은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씩 차액을 챙겼다는 자료를 내놓았다. 진보 경제학자 우석훈은 최근 칼럼에서 “부동산 대책에 전환점을 찾지 못하면 이 정권은 망한다. 20·30대가 등을 돌리고 있다”면서 김현미 국토부 장관 사퇴를 촉구했다.
쿠키뉴스 여론조사는 성난 민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성공적인 국정 수행을 위해 물러나야 할 인물’을 물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위(32.7%)에 올랐다. 2위(19.3%)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다. 또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4.8%), 홍남기 경제부총리(4.7%)가 뒤를 이었다. 무리한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추미애를 제외하면 모두 부동산 정책과 관련됐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지점이 어딘지를 보여준다.
이제라도 왜 국민들이 분노하는지 살펴야 한다. 그동안 많은 지식인들이 쓴소리를 했지만 무시됐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 강준만 전북대 교수, 우석훈 경제학자, 권경애 변호사, 김경률 경제민주주의21 대표, 홍세화 전 민중당 대표가 왜 비판 대열에 섰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들은 누구보다 진보정권을 지지한 이들이다. 이들마저 적으로 돌려 세울 것인가. 배지를 달자마자 X맨을 자처한 머리 텅 빈 정치인들로는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
당을 쇄신하고 합리적이며 건강한 목소리를 복원시켜야 한다. 지금과 같은 일사불란은 망하는 길이다. 내부 비판과 견제가 사라진 조직은 괴멸한다. 최장집 교수는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는 논문에서 “운동권·빠 세력이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했다. 대통령 권력집중은 강화됐고, 법의 지배는 위험에 놓였다”면서 차이와 다름을 인정할 것을 주문했다. 맹목적인 진영논리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대결과 적대 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협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21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 한 말이다. 여의도 정치 현장에서 실행되고 있는가. 성찰할 일이다. 진보논객 강준만 교수는 “자기 진영을 대변하면 환호하다 비판하면 그 순간 끝나는, 지식인들이 치어리더로 전락한 사회는 암울하다”고 경고했다. 더 어둠이 내리기 전에 전환점을 모색해야 한다. 시행착오는 참여정부 한 번으로 족하다.
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부대변인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