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좋지 않아 물가도 낮은데 뭐가 문제지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매년 여름 직후에는 먹거리 가격이 급등하곤 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강물이 넘치고 산사태가 날 정도의 폭우, 걷기 힘들 정도의 강풍을 동반한 태풍 때문에 수확기의 과일이 문드러지고 채소가 썩어 나가고 있다. 단기간의 공급 부족은 가격 급등으로 이어지면서 그렇지 않아도 팍팍한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 이들의 가계부에 더 큰 시름을 안겨 주고 있다.
먼저 여름철 이후 먹거리 물가 상승률이 특히 높다는 것에 대한 팩트체크부터 해 보겠다. 두 가지 물가지수를 비교해 보면 답이 금방 나온다. 소비자물가지수와 신선식품 물가지수. 소비자물가지수는 모든 물가지수를 망라했다고 보면 되겠다. 우리들이 소비하는 상품 및 서비스를 망라하는 대표적인 물가지수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 그렇게 자주 구입하지 않는 품목들이 있어 국민들이 체감하는 물가 수준과 차이가 크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나온 물가지수 중 특히 먹는 것에 초점을 둔 것이 신선식품 물가지수이다. 육류와 생선류, 채소류 등 매일 먹는 음식품으로 대상을 한정하니 체감도가 더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 확실한 방법은 위 두 가지 물가지수를 기간별로 구분해 보면 된다. 구체적인 숫자를 보자. 2000년 이후 매월 소비자물가지수와 신선식품 물가지수의 6월 대비 9월의 누적 상승률 연평균 값을 계산한 결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이지만 신선식품물가 상승률은 13.0%로 나타났다. 상승률이 무려 13배나 차이가 난다. 같은 먹거리라도 품목에 따라 상승률 차이가 크게 난다. 6~7월과 8~9월의 전월 대비 물가상승률을 비교해 보자. 곡물 물가상승률은 0%(6~7월)에서 0.2%(8~9월) 정도로 여름철이 지나도 상승폭이 비슷하다. 과일은 두 기간이 지나면서 가격 상승률이 –4~-2%에서 1~3%로 상승폭이 곡물에 비해 좀 크다. 채소류는 상승률이 훨씬 더 클뿐더러 변동폭도 크다. 2000~2019년 채소류의 전월 대비 물가상승률은 6월 평균 –6.7%였지만 7월에는 12.8% 포인트 급등한 6.1%이고, 8월에는 8.9% 포인트 더 상승한 15.0%로 나타났다. 한여름철 태풍과 장마를 겪으며 6월 대비 8월의 채소류 물가상승률은 21.7% 포인트나 더 높은 셈이다.
관련기사
그러나 거기서 거기인 먹거리에 대한 지출이 저소득층에서는 부담이 많이 된다. 소득 수준을 가장 낮은 가구부터 높은 가구까지 늘어놓았을 때 가장 낮은 하위 그룹 20%의 전체 소비지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이 식료품으로서 20%를 차지한다(2015년 기준). 전체 가구의 평균적인 식료품 지출 비중이 14%임을 고려하면 저소득층이 먹거리에 더 많은 지출을 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니 지금과 같이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식료품 가격이 크게 상승하면 허리띠를 더 졸라매든가, 아니면 다른 활동은 포기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필자 역시 재택근무에 돌입해 온라인 수업을 하는 자녀들과 온종일 집에 있다 보니 우리집 전체적으로 식사량이 크게 늘고, 밥해주고 돌아서면 또 밥해야 한다는 아내의 푸념을 듣곤 한다. 물론 그럴 때마다 회사 구내식당보다 집밥이 훨씬 더 맛있고, 요사이 애들이 좀 더 커졌다고 위안을 하지만 아내는 콧방귀도 안 뀌며 장바구니를 들고 현관문을 나선다(설거지가 그냥 있으면 안 된다. 당연히 내 몫이다).
그 어느 때보다 식료품 물가의 안정이 필요한 시기이다. 수급 및 가격 안정을 위해서 유통시스템의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 원칙적으로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해야겠지만 담합이나 사재기와 같은 불공정 거래 행위나 불합리한 유통 구조는 개선해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정부의 조기 수매 계약을 확대하고 식탁에 자주 오르는 필수 식료품 가격이 급등할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생산자, 즉 농림어업 종사자들에 대한 지원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힘써 지은 농산물이 태풍과 홍수 등으로 제값을 못 받을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장마나 폭염 등 기후요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물가 불안이 반복되지 않도록 농산물 생산기반 정비, 하수처리 시스템 개선, 유통시스템 관리 및 재해보험 가입 독려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