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코로나 19 시대 청각학…‘오디오 비즈’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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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논설위원
입력 2020-09-2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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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청각학 개척자 이정학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총장

  • 비대면 소통, 오디올로지(audiology) 중요성 부각

  • 글로벌 보청기 표준 주도, 미국-유럽 중재

 

사람은 듣는다. 의식적으로 듣고(listen) 주변의 소리를 들리는 대로 그냥 듣는(hear)다.

태어나기 전에도 듣는다. 임신 중 태아와 나누는 대화, 들려주는 소리가 아이 교육의 시작이다. 태교음악 뿐 아니라 말, 소리도 그만큼 중요하다.

죽어서도 듣는다고 한다. 옛 어르신들은 “망자(亡子)는 죽고 나서도 한참을 듣는다”고 말씀하셨다. 죽은 뒤 가장 오래 기능이 남아 있는 감각기관이 청각이라는 거다. 그래서 우리 전통 장례 풍습에서 장례 기간 끊이지 않고(특히 마을 아낙네들이 돌아가며) 곡(哭)을 한단다. 요즘 거의 사라졌지만 죽은 이를 무덤까지 옮기는 상여를 메고 가는 사람들이 부르는 상여 소리도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고 들었다.

현대 장례식장에서 들리는 찬송가나 기도 소리, 천주교 성가, 연도(한국 천주교 고유의 음률이 담긴 위령기도) 소리, 불교의 염불과 목탁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요즘 요양병원을 가면 병상에 누워 귀에 이어폰을 꽂고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듣는 노인 환자들을 볼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해 움직이기 어렵고 눈이 안 좋아 TV도 보기 힘든 이 어르신들에게 유일한 일상의 유희(遊戲)는 ‘듣는 것’이다.

코로나 19가 엄습한 지금 시대, 비대면 소통이 늘어나고 있다. 사람의 오감(五感) 중 촉각, 후각, 미각을 제외한 눈과 귀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다. ‘몸이 100냥이면 눈이 90냥’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눈을 중요시 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관심도 크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떻게 말하는가.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X)이라는 말처럼 듣는 걸 우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영상회의, 온라인교육에서 화면이 꺼져도 소리가 나오면 계속할 수 있다. 그런데 소리가 안 나온다면?

사람의 청각을 연구하는 오디올로지(audiology), 청각학은 아직 우리나라에 체계적으로 자리 잡히지 못한 융·복합 학문이다. 의학, 심리학, 생리학, 재활학, 언어학, 물리학, 전자공학, 기계공학 등이 종합적으로 버무려진 학문이다. 이 학문은 연간 15조 원대 보청기 비즈니스 시장과 이어진다.

이런 가운데 최근 난청인들과 국내 보청기업계에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100년 넘게 미국과 유럽은 제 각각 청각테스트 기준, 보청기 규격 등 자기만의 보청기적합관리 가이드라인을 고집했다. 그런데 지난 3월 국내 최고의 청각학자인 이정학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총장이 보청기적합관리 글로벌 표준(국제표준화기구 ISO 21388 Hearing Aid Fitting Management)을 이끌어 냈다. 미국, 유럽은 물론 중국과 일본까지 모두 162개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명실상부 ‘청각 월드컵’ 룰을 한국이 주도해 만들고, 한국에서 열린 회의에서 확정했다.

코로나 19 시대, 백세시대를 넘어 호모 데우스(불멸의 인간-유발 하라리 저)라는 말이 나오는 요즘 더욱 청각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로에 위치한 학교 총장실에서 이정학 총장을 만나 2시간 동안 열띤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정학 총장 인터뷰 모습. 사진=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이승재 위원(이하 위원)= 청각학 자체를 사람들이 잘 모른다. 쉽게 설명해 달라.

이정학 총장(이하 총장)= 청각학은 청각기관에 대한 학문이다, (우리가) 대화를 할 때 목소리를 듣는다. 그게 귀로 들어가서 뇌로 가고 마지막으로 해석한다. 음파가 전달되는 물리학으로 시작해 생리학적으로 받아들인다. 생리학적 과정은 집중을 하지 않아도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뇌에서 해석하는 심리학 과정을 거친다. 딴 생각을 하고 있으면 말이 해석이 안 된다. 물리학, 생리학, 심리학이 종합적으로 작용해서 말을 듣고 해석한다. 청각학은 융·복합 학문이다.

그게 정상적인 듣기 과정이고, 과정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은 듣기가 안 된다. 보통 생리학적 문제다. 생리학적 파트에 문제가 생기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진단을 하고 이비인후과 의사가 치료를 한다. 하지만 문제가 내이(안쪽 귀)로 들어가 버리면 치료가 어렵다. 이 부분은 재활분야다.

재활의 핵심이 보청기다. 보청기는 귀에 착용하는 것과 수술해서 집어넣는 것으로 나뉜다.

어떤 경우에는 청력이 나쁘지 않은데 해석이 안 된다. 그럴 때는 보청기도 필요 없고, 치료약도 없다. 재활을 통해서 도와주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진단과 재활 기능 양쪽을 다루는 것이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청각기관에 대해서 과학적인 분야와 임상적인 분야를 다루는 학문이 오디올로지다.

위원= 의료, 학문적인 차원, 임상적인 차원, 비즈니스적인 차원이 다 있는 건가?

총장= 다 다룬다. 공통되는 부분과 다른 부분이 있다. 이비인후과와 공통인 부분이 많다. 뿐만 아니라 재활의학과, 신경학과, 소아과, 산업의학과도 관계가 많다. 소아난청 진단파트에서 이비인후과와 소아과의 경쟁이 될 수도 있다. 소아과에서 진단 파트에 관심이 많다.

선진국에서 청각학은 이비인후과와 소아과와 관계된다. 청각과가 따로 있는 병원도 있다. 미국이 특히 잘 돼있다. 세계에서 제일 큰 병원 시스템인 미국 보훈병원(Veterans Hospital)에는 청각부(Department of Audiology)가 따로 있다.

미국 대학 청각학과는 대학 8년 과정이다. 학부, 대학원 각각 4년, 8년을 마치면 AuD(Audiology Doctor)라고 부른다. 미국 의학 박사(MD·Doctor of Medicine)처럼 일정 과정을 거쳐야 개업을 하거나 의사 시험 볼 자격을 주듯이 AuD도 시험 볼 자격을 받는 과정이 8년이 걸린다. 시험에 합격을 하면 이쪽 전문가로 활동을 하게 된다.

위원= 우리나라는 청각학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한듯하다.

총장= 아직 진행 중이다.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1994년 한국에 들어왔다. 들어와서 의과대학 이비인후과 교수를 하다가 우리나라에도 선진국 같은 Audiology 학과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에 청각학 전공을 처음 만들었다. 처음에는 석사가 아니라 연구과정으로 만들었다. ‘20명 정도 모집해볼까’했는데 100명 이상이 지원했다. 석사과정도 아니고 연구과정인데. 연구과정을 97년에 처음으로 시작하고 그 다음부터 바로 정식 석사과정을 신청했다. 경쟁률이 굉장히 셌다.

위원= 학부에서 뭘 전공했던 사람들이 지원하는가?

총장= 청각학이 융·복합 학문이라 물리학, 생리학, 심리학, 특수교육학, 재활이 다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학부 모든 분야에서 다 온다. 음악, 미술, 경영학, 전자공학, 의학 거의 전 과가 다 된다. 그 중에서 보청기 쪽이 많이 관련 되기 때문에 전자공학과 출신들이 상당히 많이 온다. 의사들도 온다.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항상 지원자가 정원을 넘는다. (*2020년 기준 전국 4년제 대학 청각 관련 학과는 5곳으로, 대구가톨릭대학교 언어청각치료학과, 부산가톨릭대학교 언어청각치료학과, 한림대학교 언어청각학부, 우송대학교 언어치료·청각재활학과, 동명대학교 언어치료청각학과가 개설되어 있다.)

위원= 총장은 학부에서 무엇을 전공했고, 유학은 어떻게 갔나.

총장= 문학을 전공했고 82년에 학부를 졸업했다. 부전공으로 경영학을 했었다. 심리학과 교수가 와서 조직행동론을 가르쳤는데 그 교수와 뜻이 맞아서 청각학을 처음 접했다. 82년도에는 휴대폰이나 PC도 없었다. 그 분의 소개를 받고 미국 유학원에서 자료를 찾아보았다. 찾아보니 물리학과 관련이 많았다. 당시 물리학을 좋아해서 ‘물리를 잘 하면 할 만 하겠다’고 생각해 시작했다. 어렵게 유학신청을 했는데 떨어졌다. 한국에 청각학이 없으니까 안 받아줬다. 대신에 ‘이런 것들을 공부해 와라’하고 관계되는 분야에 몇 가지 전공을 가르쳐주더라.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는 것들을 몇 가지하고 그 다음에 드디어 유학 허가를 받았다.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다. ‘우리나라에 없지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을 많이 했다. 전공인 문학에 소질이 별로 없고 방황하던 시절에 ‘정말로 하고 싶은 걸 찾아야지’ 하다 청각학을 알게 되었고 드디어 시작했다. 미국에 가서 처음에는 고생을 많이 했다. 피 보는 것을 싫어했었는데 생각보다 공부해야 할 임상 분야가 많았다.

위원= 일반인들은 청각학에 대해 피상적으로 청각장애, 보청기 정도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단순히 장애에 도움을 주는 보조기기 차원을 넘어서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

총장= 난청 예방이 중요하다. ‘건강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난청이 나지 않을까’ 이 파트를 많이 공부한다. ‘소음이 있는 환경에서 귀를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런 부분이 국제표준으로 많이 되어 있다. 귀 보호 장비가 큰 산업 분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아 그 쪽을 키우고 싶다.

위원= 일부 선진국에서는 꼭 귀 보호장비를 쓰고 작업을 한다. 잔디 깎을 때도 쓰고. 내가 미군에 근무할 때 그랬다. 사격할 때 말랑말랑한 귀 보호대, 이어 프로텍터(ear protecter)를 주더라. 당시 한국군에는 그런 게 없었다.

총장= 내가 그 부분을 제일 재밌어 했다. 물리학이 가장 많이 적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난청인 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을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 나는 이 분야, 즉 산업청각학(industrial auduology)에 관심이 많다. 청력 보존 프로그램(HCP·Hearing Conservation Program)라는 것이 있다. 굉장히 큰 분야이다. 큰 공장, 회사, 군대 등에 적용된다. 소음방지 이어플러그 하나에 1달러다. 10만 명이 하루에 한 개씩 쓴다고 생각해보라. 엄청나게 큰 산업이다. 그게 1단계고, 2단계는 건청인들을 위한 헤드폰이 있다. 3단계는 방음벽 시설이다. 산업적으로 크다. 그래서 청력보호 기준을 90데시벨(dB)로 할 것이냐 85데시벨로 할 것이냐 5데시벨 차이가 어마어마한 돈의 차이다. 대기업은 절대 90(데시벨)에서 안 낮추려 하고 노동자들은 85(데시벨)로 낮추려 그런다. 그런 것들이 재밌었다. 큰 산업인데 우리나라가 거기까지 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

위원= 세계 보청기 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

총장= 세계 시장이 15조에서 20조로 그렇게 크지 않다. 중요한 것은 보청기 시장 규모가 계속 상승곡선을 그린다는 것이다.

위원= 왜 보청기 시장이 커지나?

총장= 노인 인구가 많아져서 그렇다. 보청기 시장은 실버산업으로 좋다. 뿐만 아니라 건청인들에게도 난청을 예방하는 측면으로 확장할 수 있다. 특히 요즘 블루투스 이어폰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음향시스템을 조절해서 음악을 들을 때, 사람 목소리 들을 때 증폭 방식을 달리하는 등의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위원= 한국 청각 비즈니스는 어떤가?

총장= 한국 시장 규모는 5000억 원 정도이다. 그런데 한국엔 보청기 외에 없다. 나머지는 초기 단계다. 초기 단계에서 잘 되지 않아 홍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알리는 제일 좋은 방법이 뭘까 생각하다 보니 ‘국제표준’이 떠올랐다. 10년 전부터 국제표준에 관심은 있었다. 우리가 그냥 청각학에 대해 말해봐야 홍보되지 않는다. ‘미국, 유럽이 제각각 다른 표준을 국제표준으로 만들어서 그걸 알리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작했다.

위원= 청각 관련한 국제표준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

총장= 세계무역기구 WTO(World Trading Organization)에서 무역을 하기 위해 만든 기준이 국제표준이다. 제품을 만들 때 무역장벽을 없애기 위해서 표준이 필요했던 것이다. 기준이 통일되어 있지 않으면 만들어봐야 나라 간에 통용되지 못한다. 표준화가 되어야 서로 무역이 가능하다. 그래서 시작한 지 백 년도 넘었다. 국제표준에는 IEC(International Electronical Commission)와 ISO(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가 있다. IEC는 주로 기계 자체 쪽, 하드웨어 파트를 맡고 ISO는 주로 소프트웨어를 맡는다. 요즘은 경영분야, 회계분야까지도 인증을 받는다. 그래서 ISO의 국제표준은 소프트웨어 쪽에 주목을 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ISO에 관심이 많다. 오래 전부터 회자하는 말이 있다. ‘3류기업은 제품 생산을 잘 하려고 애를 쓰고, 2류기업은 디자인과 마케팅에 최선을 다하고, 일류기업은 국제표준을 선점한다.’ 국제표준을 선점하면 국제적으로 무역할 때 분쟁을 해결하기 쉬워진다. 각 나랏법으로 싸울 수 없으니 국제적인 기준이 있어야 하고 그 국제법이 바로 국제 표준이다. 애플과 삼성이 디자인 하나 가지고도 ‘원주인’을 따지며 소송을 하고 10년 째 싸우고 있다. 그때 국제표준과 특허를 많이 소유하고 있는 회사가 유리하다. 그래서 국제표준이 무역관계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청각산업은 무역규모가 크진 않다. 그렇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나름대로 자기의 표준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에는 산업적인 측면도 있지만 귀를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표준이 발전을 못했고 나중에 그 존재를 알게 되면서 선진국의 국제표준을 번역해서 썼다.

내가 보청기에 대해서 국가표준을 찾아보니 제대로 안 되어 있었다. 하드웨어 쪽은 웬만큼 되어 있었지만 소프트웨어 쪽 번역이 잘못 되어있어 우리가 2005년부터 국가작업으로 수정·재개정 작업을 했다. 청각학적으로 새로운 보청기 검사 등 표준을 만들려고 유럽 표준을 번역해 우리나라 국가표준으로 하자고 했더니 우리나라에서 그렇게는 못 쓴다고 했다. 유럽표준이 지역표준이지 세계표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ISO나 IEC 국제표준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했다.

위원= ‘보청기의 표준’이라는 것은 어떤 부분의 표준인가?

총장= 하드웨어 파트는 마이크로폰 등 여러 가지 부품들에 대해서 정리해놓은, 주로 IEC 표준이다. 심리학까지 들어가는 복잡한 분야인 ‘하드웨어를 인간에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는 ISO 표준으로 정한다. 기존에 IEC, ISO에 정해져 있던 보청기 관련 표준은 거의 우리학교 연구팀들이 10년 동안 번역하고 수정하고 있다. 그런데 보청기를 인간에게 적용할 순서나 절차에 관한 ISO의 국제표준이 없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어느 정도 ‘시설’에서 어떤 ‘장비’가 있어야 하고 어떻게 ‘교육’받아야 하며 어떠한 ‘윤리기준’과 ‘절차’를 따를 것인가 하는 ‘보청기적합관리’ 국제표준이 없었다. 유럽과 미국이 각자 국가표준을 가지고 있는데 서로 조금 다르고 통합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적으로 통합된 기준, 즉 IEC 혹은 ISO 표준만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2005년 당시 그 기준이 없어서 내가 정부에다 ‘저한테 연구 과제를 주면 미국과 유럽을 설득해서 통합된 국제표준을 만들어보겠습니다. 한국이 주도해서 만들어봅시다.’고 말했다. 국가기술표준원 주관의 보청기적합관리 ISO 표준을 만드는 정부 과제를 4~5년 정도 받아서 했다.

정부가 지원해주는 연구과제비를 받아서 국제회의를 소집할 수 있었다. 2005년 이탈리아 밀라노 ISO 총회에 처음 참석해 제안했을 때 미국, 독일, 프랑스, 벨기에 등에서 ‘한국이 어떻게 보청기적합기준 ISO표준 주도국이 될 수 있느냐’며 반대가 심했다.

위원= 유럽과 미국 간 일종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총장이 주도해서 글로벌 표준을 만들었다고 이해하면 되는 것인가?

총장= 그렇다. 고래 싸움에 새우밖에 안 되는 우리가 역할을 한 것이다.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가 ‘한국이 주도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판을 깔아드릴 테니 여러분들이 와서 논의하고 국제적으로 다른 부분을 맞춰서 국제표준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위원= 미국, 유럽 국가표준이 많이 다른가? 과거 비디오테이프의 브이에이치에스(VHS), 베타(BETA) 방식의 차이로 이해하면 되나?

총장= 다른 점이 그렇게 많지 않다. 시설·장비·교육 기준이 조금씩 다른 식인데 타협점이 있다. 타협이 힘든 이유는 기준이 바뀌어버리면 보청기 관리 지점을 다 바꿔야하기 때문이다.

통합 과정에서 처음에는 반대가 심했는데 ISO 투표권을 가진 25개국 중 3분의 2가 찬성을 해줘서 (제안이) 통과되었다. 미국, 프랑스, 독일 다 반대했었는데 막상 통과가 되니 상황이 달라졌다. 본인들이 빠지고 나머지 3분의 2 이상이 참여를 해서 국제표준을 만들면 되니까. 그 뒤부터는 미국, 프랑스, 독일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와서 본인들의 의견을 게재했다.

위원= 타협 과정에서 중국은 어땠나?

총장= 중국은 처음에 아무리 연락해도 담당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이해를 못한 것 같았다. 참석을 하지 않아 의견표시 자체가 되지 않았다. 결국 다른 표준 회의에 참석한 중국 국가 공무원에게 내용을 전했더니 놀라더라. 그 사람이 다음 회의에 참석해 찬성표를 던졌다.

위원=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도, 유럽도 아닌 제 3의 새로운 기준이면 좋아하지 않나?

총장= 투표권을 가진 25개국 국가가 대체로 한국을 싫어하지 않는다. 

위원= 일본의 입장은 어땠나?

총장= 일본은 청각학이라는 학문이 없어서 공학 출신들이 보청기를 다룬다. 제품은 잘 만드는데 그걸 인간에게 적용하는 소프트웨어 ISO 파트는 잘 못한다. 내가 일본에 찾아가거나 그 쪽 분들이 한국으로 오는 등 교류를 많이 했다. 이제는 청각학에 있어서 한국을 인정해준다. 이전에는 세계 보청기 회사들이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왔는데 요즘은 한국을 먼저 왔다가 일본으로 간다. 보청기적합관리 국제표준 마지막 회의도 서울에서 했다. 그 전에는 회의를 일부러 독일, 프랑스, 미국, 캐나다 등에서 했는데 다 찬성이 나오니까 마지막 담판을 서울에서 지었다.

위원= 그러면 이제 미국도 그렇고 유럽도 그렇고 기존에 있던 걸 국제표준에 맞게 업데이트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총장= 국제표준 적용이 나라마다 다르다. 독일은 권고(recommendation)가 아니고 의무(requirement)다. 국제표준이 통과되면 그 나라 표준이 바로 부합해야 한다. 법으로 정해져 있다. 기준이 바뀌면 전체 보청기 센터가 바뀐다. 프랑스와 미국은 권고다. 그런데 그 기준을 따르지 않으면 불편해진다. 국제표준을 준수하지 않는 업체라는 것이 드러나 버리니까.
 

[이정학 총장 인터뷰 모습. 사진=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위원= 난청인들은 잘 듣게 하고. 건강한 사람은 좋은 음질로 듣게 하는 방향으로 같이 사용하는, 즉 보청기와 이어폰이 결합한 새로운 하이브리드 기기(디바이스) 시장을 만들 수는 없나?

총장= 우리나라에서 삼성전자가 그런 쪽으로 개발하려고 했었다. 그쪽 팀이 우리 대학원을 와서 청각 공부를 하고 삼성전자에서 보청기 개발을 했다. 2013년에 좋은 제품을 완성했는데 회장 유고 사태가 나면서 흐지부지됐다.

위원= 다른 유명 IT기업이나 신기술을 찾는 기업들이 청각 비즈니스의 시장성과 의미를 알 텐데, 삼성 이외에 청각 기기에 관심을 가지는 기업은 없나?

총장= 애플과 독일의 보청기 기업 지멘스(현 시그니아)가 있다. 지멘스는 100년 역사를 가졌다. 요즘은 스위스와 덴마크가 보청기 분야에서 최고다. 보청기 하드웨어를 만들 수 있는 나라가 몇 군데 없다. 보청기가 하이테크 산업이기 때문이다. 보청기 속 증폭기, 손톱보다 작은 칩으로 인간의 귀에 맞출 수 있는 선택 폭이 10억 가지가 넘는다.

위원= 보청기 종류가 10억 개, 한 사람 한 사람 맞춤형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총장= 보청기 종류가 아니라 최신 보청기 1개의 내부기능 선택의 종류가 10억 가지나 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피아노 건반이 ‘도레미파솔라시도’ 일곱 가지가 나오고 진폭이 10데시벨부터 100데시벨까지 90 가지, 7 곱하기 90이 된다. 거기에다 저주파나 고주파 조정, 어디까지는 선형방식으로 증폭하다가 어디서부터는 비선형으로 증폭하는 것 등을 곱하면 그렇게 된다.

또 조건에 따라 맞출 수 있는 가지 수가 건청인과 난청인이 다르다. 그걸 이해하지 못한 채 보청기 하드웨어만 발전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그 이해가 없는 보청기는 어떤 때는 잘 들리는데 어떤 때는 시끄럽고 웅웅거린다. 많은 부모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보청기를 착용하다가 서랍에 넣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소리만 커지고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기 때문이다.

위원= 좋은 보청기를 위해서는 측정이 출발점 아닌가. 청각을 측정하는 청력검사와 청각 측정 자격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

총장= 청능사라고 청각 능력에 대한 전문가 자격증이 있다. 직업능력개발원에 등록되어 있는 민간 자격증이다. 청각 능력의 경우 여러 가지를 살펴볼 수 있다. 1단계로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2단계는 ‘말소리를 얼마나 이해하는가’가 있다.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말소리 이해이다. 50에서 100까지만 들리던 걸 0부터 100까지 다 들리게 해주는 건 쉽다. 그런데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는 인지력을 높이는 것이 측정의 기준이다.

(*청능사는 청능사자격검정원이 주관하는 자격검정시험에 합격하여 자격을 취득한 사람으로서 청각장애인들의 청능평가, 상담과 보청기와 인공와우의 평가를 통하여 재활, 훈련을 담당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위원= 건강검진 가서 ‘삐삐’거리는 소리를 듣는 청력검사와 어떻게 다른가? 언어 별로 다를 수 있지 않나?

총장= 보청기를 사용하는 목적은 말소리를 잘 알아듣는 것이다. 순음인 ‘삐삐’ 소리가 들리게 하는 것은 쉽다. 그 부분은 어느 나라나 같다. 하지만 말소리의 기준이 되는 것은 언어마다 다 다르다. 그 기준 어표가 있다. 인공와우 수술해서 집어넣어 놓고 각각 개별적인 검사표 가지고 청력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비교하면 비교가 안된다.

위원= 보청기 청력검사는 어떤 식으로 하는 건가?

총장= 말소리를 얼마나 이해하느냐는 단음절, 2음절, 문장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가’는 단음절이다. ‘학교’는 2음절이다. ‘학교에 갔습니다’는 문장이다.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어음검사(사람 말소리로 하는 청력검사)를 한다.

위원= 데시벨(소리측정 단위)은 일정하게 두는 것인가?

총장= 일정하게 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보청기적합관리 표준을 만들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어음청력검사 국가표준을 만들어야 한다. 표준 말투로 보통 사람의 목소리가 몇 데시벨인지, 건강한 사람들이 그 말소리를 겨우 들을 수 있는 게 몇 데시벨인지 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런 측정도구를 만드는 방법이 국제표준에 나와 있는데, 그게 우리나라에는 없었다.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서울대병원, 연세대병원, 한림대병원 등에서 사용하는 어음청력검사 방법 및 해석사 기준이 다 달랐다. 한국 와서 제일 먼저 한 것이었다.  그 어표를 사용해 한국의 어음 청력검사에서 0데시벨의 기준이 23.5데시벨이라는 걸 찾아냈다.

위원= 국제표준은 영어 기준으로 되어 있나?

총장= 국제표준을 설명하는 언어는 영어, 불어, 러시아어로 되어있지만 어음청력검사 방법에 대한 표준은 하나다. 언어와 상관없이 그 방법에 따라 개발을 하면 난이도가 똑같다. 어음청력검사 방법을 국제표준으로 인정받으려면 해당 표준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SCI논문에 게재하고 국제표준에 등재를 해야 한다. 어음청각표준은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만들어서 2012년에 국제표준에 올렸다. 이게 있어서 보청기적합관리 국제표준 연구개발팀의 의장이 되는데 인정을 받았다. ISO 8253-3에서 이 어표를 찾아볼 수 있다. 이게 제대로 되어 있는 나라가 덴마크, 독일, 미국, 영국 정도다. 중국은 없고, 일본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위원= 표준어를 기준으로 한다고 했는데, 사투리는 또 다르지 않나? 심하면 다른 언어처럼 들리기도 한다. 표의와 표음도 다를 텐데 이런 부분은 어떤가?

총장= 사투리에 대해서는 한계성을 가진다. 방언까지 하면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다.

위원= 요즘 가장 큰 화두인 코로나19와 비즈니스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어떤 연결고리가 있나?

총장= 이번에 국제표준으로 등재한 것이 보청기적합관리(Hearing aid Fitting Management)이다. 코로나시대 이전부터 준비하고 있었고 코로나시대에 들어서며 더 앞당기고자 하는 것은 원격 보청기적합관리(Tele-Hearing aid Fitting Management)이다. 보청기 관리를 비대면으로 하는 것이다. 이어폰만 있으면 된다. 이어폰만 있으면 관련 시스템을 클라우드와 연결해서 보청기를 사용자에게 적합하게 만드는 것이다. 보청기 피팅 시스템은 회사들이 벌써 개발해 놓았다. 현재 앱을 이용해 하고 있는 곳들도 있는데 표준화가 안되어서 회사마다 다르다. 그래서 우리 대학 연구팀이 금년 12월 말까지 제안서를 제출해보려 한다.

위원= 어쨌든 우리나라는 보청기 디바이스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건가?

총장= 그렇다.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수입하여 조립하는 수준이다. 생산할 수는 있지만 안하고 있다. 그런데 2020년까지 시간이 흐르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중요도에 대한 상황이 많이 변했다. 삼성과 보청기 개발을 시작한 2009년에는 정부 지원으로 따질 때 소프트웨어는 5%의 지원을, 기계를 만드는 하드웨어는 95%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10년도 안 되는 사이에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중요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자동차를 만드는 포드는 무너져가는데 하드웨어가 없는 구글이 자율주행 자동차에서 최고가 되었다. 이미 수준 높은 하드웨어들이 많으니까 이제 거기에 집어넣는 소프트웨어가 중요해졌다. 그래서 우리 학교가 개발을 해보려 진행 중이다.

위원= 유럽 디바이스 업체들이나 에어팟을 만드는 애플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아닌가?

총장= 그래도 우리가 국제표준을 선점 했고. 국제표준에 맞는 유통구조를 갖출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인의 강점인 ‘빨리빨리’를 살린다면 똑같은 시스템이라고 해도 경쟁력이 있다. 예를 들면 100년 이상 앞서간 나라들을 쉽게 따라갈 수 없다. 그런데 귓본을 뜨고 보청기를 제작하는 과정이 유럽, 미국은 늦다. 하나 하는데 2주, 한 달이 걸린다. 반면에 우리는 2~3일이면 해버린다.

위원= 개인적으로 음악 듣는 걸 좋아해서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좋은 걸 잘 찾아 쓰려고 하는 편이다. 내 귀에 맞춰서 이어폰을 만들어주는 서비스는 없다는 아쉬움이 큰데, 보청기는 그런 식으로 만드나?

총장= 보청기는 그렇게 한다. 가수가 쓰는 고급 이어폰(인이어)도 그런 식으로 한다. 7~8 시간씩 차야 하는데 자기 귀에 맞지 않으면 못 낀다. 아무 이어폰이나 귀에 꼽으면 귀도 아프고 환기가 안돼서 중이염 걸릴 수 있다. 그래서 환기도 고려하고 음질도 고려하고, 편안함도 고려한 이어폰을 맞춤형으로 만들 수 있고, 그걸 확산시키려고 한다.

위원= 제가 어릴 때 어르신들이 ‘사람이 죽어도 제일 오래 남는 것이 청각이다’는 말씀을 하셨다. 상여할 때 곡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라고 그러셨는데 실제로 그런가? 과학적인 입증을 찾을 수는 없었다.

총장= ‘죽고 나서도 들리는가’에 대한 문제는 윤리적인 부분 때문에 많은 연구는 없지만 동의를 받는다면 심장이 정지된 후 청각 자극을 주고 뇌파 반응을 보는 것으로 밝힐 수 있다. 하지만 태어나기 전부터 듣는다는 것은 많이 검증한다. 그래서 태아에게 좋은 걸 들려주라고 하는 것이다.

위원= 청각이 특히 삶의 질과 밀접하지 않나. 요양원 어르신들은 이어폰이나 보청기를 끼고 라디오를 많이 들으신다고 한다. TV도 잘 못 보고 말도 잘 못하시니 외부에서 정보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귀라고 한다. 청각학이 융복합 학문이고 산업 비즈니스로 커지고 있는 만큼 고연령사회에 맞춰 다양한 분야로 나아갈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나?

총장= 그렇다. 그래서 우리학교에서 청각학과 관련한 실용적인 비즈니스 산업을 위해 산학협력 차원의 청각산업센터를 만들었다. 보청기를 잘 사용하면 치매 예방에 좋다는 논문도 많다.

위원= 비즈니스 부분에서는 특히 담당 부처가 어디인지, 또 각종 정부 규제가 중요할 거 같다.

총장= 산업적인 측면에서 청각산업만 따로 담당하지는 않지만 산업통상자원부가 주로 담당한다. 임상에 적용할 때는 보건복지부가 담당한다. 현재 보청기 자체에 대한 주무 부서는 없지만 산자부와 보건복지부가 힘을 합쳐 관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비즈니스적 측면에서 산자부가 주무 부서가 되어야 한다.

위원= 추석을 앞두고 있다. 청각이 노화되면서 보청기가 필요하지만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어르신들이 많을 것 같은데, 노부모님 뵙고 그걸 어떻게 체크할 수 있나?

총장= 텔레비전 볼륨을 너무 크게 듣고 계시거나 예전에 비해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면 보청기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100세 시대에는 보청기가 필요하다. 현재 기준으로 65세 이상 3분의 1이 난청이 있다. 그 중 난청이 경미한 사람을 제외하고 보청기가 필요한 사람은 반 정도 될 것이다. 하지만 보청기가 필요한 사람 중 실제로 보청기를 하고 있는 사람은 반도 안 된다. 몰라서도 안 하고 알면서도 불편해서 안 하기도 한다. 그걸 어떻게 돕고, 산업을 발전시킬까를 고민해야 한다. <정리=박하늘 인턴기자 editorial@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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