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주에게 제공할 목적으로 하도급 업체로부터 도면 등을 받아 온 그간의 업계 관행이 명백한 하도급법 위반이라고 판단한 사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 업체의 기술 자료를 유용한 현대중공업에 시정명령과 함께 2억4600만원의 과징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1일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6월 사명을 한국조선해양으로 바꾸고 조선 관련 사업 부문 전부를 분할하면서 현대중공업을 신설했다.
선박용 조명기구는 선박엔진의 진동, 외부 충격, 해수와 같은 혹독한 환경에 노출되기 때문에 일반 가정용 조명기구와 달리 폭발을 방지하기 위한 구조와 높은 조도, 우수한 전기적 안정성이 필수다.
현대중공업은 이에 2017년 4월부터 2018년 4월까지 30년 이상 선박용 조명기구를 납품하고 있던 A사의 제작도면을 유용해 B사가 선박용 조명기구를 제작할 수 있게 했다. A사는 국내에서 선박용 조명기구를 납품하는 유일한 업체였다.
공정위는 이런 현대중공업의 행위로 기존 수급사업자의 기술 자료를 유용했다고 판단했다.
현대중공업은 선주의 요청으로 인해 B사를 하도급 업체로 지정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실수였다고 주장했다. 공정위는 "선주의 요청이 있었더라도 하도급 업체의 기술 자료를 유용한 행위가 위법이라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B사가 선박용 조명기구를 납품할 수 있게 되면서 단가 인하율이 높아진 사실도 확인됐다.
현대중공업의 내부 문건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B사가 하도급 업체로 등록되지 못할 경우 단가 인하 목표치를 3%, 이원화가 달성될 경우 단가 인하 목표치를 5%로 계획했다. 실제 이원화가 이뤄지며 단가를 7% 낮추는 결과를 낳았다.
현대중공업은 낮은 견적가격으로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기술자료를 유용하기도 했다. 2016년 6월부터 2018년 5월까지 5가지 선박용 엔진부품 입찰 과정에서 기존 하도급 업체의 도면을 제3의 업체에 제공하고 견적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입찰 결과, 기존 하도급 업체의 도면을 전달받은 제3의 업체가 제품 일부를 낙찰받아 납품했다.
발주과정에서 하도급 업체의 도면이 제3의 업체에 제공된 것은 담당자 업무 과중으로 인한 실수였다는 현대중공업 주장에 공정위는 설령 실수라고 하더라도 법 위반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보다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구매하는 행위는 기업의 정당한 경제활동"이라며 "다만, 이를 위해 기술자료를 유용한 행위는 법에 저촉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2015년 6월부터 2018년 1월까지 총 80개 하도급 업체에 총 293개의 기술자료를 요구하면서 법정 서면을 교부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됐다.
현대중공업은 선주에 제출할 목적으로 하도급 업체에 자료를 요구하고 이를 취합해 전달한 것일 뿐이라 실질적인 서면 교부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정위는 현대중공업 행위가 기술자료 요구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될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법정 사항에 대해 사전 협의해 기재한 서면을 교부하지 않은 점에서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공정위는 현대중공업에 2억46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하도급 업체의 기술자료를 유용하는 행위를 하면 안 되고 정당한 사유가 있어 기술자료를 요구하더라도 반드시 서면으로 하도록 시정명령했다.
공정위는 "직권 인지를 통해 업계에 만연한 기술유용 관련 실무 행태를 제재하고 이를 통해 실무 관행을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내년 상반기까지 첨단 기술 분야를 대상으로 기술유용 행위 감시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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