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통해 연대와 협력을 강조해왔던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대표 작가 홍이현숙(62)이 비인간 존재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박종관)는 2020년 아르코미술관 기획초대전 ‘홍이숙: 휭, 추-푸’를 오는 2월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미술관(관장 임근혜)에서 개최한다.
코로나19 관련 당국의 방역 지침에 따라 미술관은 잠정 휴관 중이며, 전시는 영상을 통해 온라인상에 먼저 소개됐다. 일반 관람 예약은 추후 별도 공지 예정이다.
아르코미술관은 2000년대 중반부터 동시대 미술이 주목하고 있는 예술적·사회적 의제를 다뤄온 작가의 신작을 선보였고 이를 통해 지속적인 창작활동이 가능한 환경 조성에 주력해왔다.
올해 선정 작가인 홍이현숙은 가부장적 사회와 시선에 저항하는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몸을 퍼포먼스·영상·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이야기해왔으며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대표 작가로 평가받는다.
활발한 작품 활동 외에도 아르코미술관이 홍이현숙 작가를 주목하는 이유는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해 소외된 존재들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가시화했던 실험적인 기획과 프로젝트에 있다. 아르코미술관은 “작가는 다수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기획을 통해 낙후되거나 사라지는 터전과 지역민의 삶을 고민했고 동료들과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고 전했다.
이번 아르코미술관에서의 ‘휭, 추-푸’는 연대와 협력을 강조했던 지난 작품과 연장선에 있으면서 비인간 존재들에게로 그 관심을 확장한다. 더불어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의 감각을 구현해야하는 예술가의 고민 또한 반영했다.
제목 ‘휭, 추-푸’에서 ‘휭’은 바람에 무언가 날리는 소리, ‘추푸’는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이다. ‘추푸’는 ‘숲은 생각한다’(2018)(에두아르도 콘 지음, 차은정 역, 사월의책)에서 인용했으며, 케추아어(남아프리카 토착민의 언어)로 동물의 신체가 바람에 휘날리거나 수면에 부딪히는 모습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시 제목에 의성어나 의태어를 사용함은 인간의 한정된 언어가 아닌 열린 소리와 몸을 사용하여 인간·비인간이라는 근대의 이분법적 논리를 극복하고 비인간 동물과 동등하게 소통하려는 시도와 의지가 담긴 것이다.
전시장에는 인간의 청각 범위를 초월하는 고래의 소리와, 재개발 지역의 골목에 남아 인간의 애정 어린 시선과 혐오의 눈길을 동시에 견디며 살아가는 길고양이 등이 소환된다.
작가는 그들과 우리가 서로 삶의 공간을 공유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함께 헤엄치고 날아다니는 상상의 결과를 전시장에 펼친다. 또한 작품을 통해 비인간 동물이 겪는 고통이 곧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위기임을 의식하게 만든다.
홍이현숙 작가는 아르코미술관 유튜브에 공개된 인터뷰 영상을 통해 “비인간과 인간 사이의 간극이 굉장히 큰데, 다가갈수록 그 간극은 점점 커지는 듯한 느낌이다. 이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며 “고양이하고 나 사이에 정말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있다”고 말했다.
벽 앞에서 작가는 멈추지 않고 용기를 냈다. 작가는 위험을 무릅쓰고 고양이들이 있는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는 “간극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들과 나 사이의 차이들을 더 몸에 각인하고, 결국은 인간이라는 입장에서 같이 살 수 있는 공존의 어떤 방향들과 기술들을 배우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예술을 통해 위험에 함께 내몰리면서 비인간들이라는 존재의 편에 설 수 있다”고 짚었다.
공멸과 공생 사이에서 위태로운 현재, 그래서 미래를 감히 상상하기 힘든 뉴노멀(New-Normal)의 시대에 홍이현숙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과의 새로운 연대와 공생이 가능한 장소를 예술을 통한 상상으로 열어 보고자 한다.
한편 전시와 함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부대행사들이 준비되어 있으며 행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예약안내는 12월말 공지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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