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제2의 LH를 막아라, 이해충돌방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연합뉴스]
#. 이해충돌방지법이 제정된 후 공직자인 A씨가 사돈의 팔촌 B씨에게 자신의 정보를 슬쩍 흘려주자 B씨가 이를 통해 크게 이익을 봤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B씨가 A씨의 직계존비속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이해충돌방지법상 ‘직무상 비밀이용 금지’ 혹은 ‘미공개 정보이용 금지’ 조항에 따라 A씨와 제3자인 B씨 모두 처벌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투기 의혹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정치권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300명 국회의원 전원과 그의 직계존비속, 지자체장과 지방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와 그의 직계존비속에 대한 부동산 관련 전수조사와 함께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LH 재발방지 5법’이라는 칼을 꺼내들었다.
여당이 꺼내든 공공주택특별법과 한국토지주택공사법, 공직자윤리법, 부동산거래법, 이해충돌방지법 5개 법안 중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이해충돌방지법이다.
LH사태가 국민들의 공분을 산 가장 큰 이유는 대한민국의 민감한 이슈인 ‘부동산’이 관련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가의 일원인 공무원이 직무상 정보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9년 전부터 발의된 이해충돌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면, LH 사태를 사전에 미리 막을 수 있었다는 질타가 곳곳에서 쏟아지면서 이해충돌방지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민주당은 이해충돌방지법을 3월 내에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해충돌방지법, 9년간 발의·폐기 반복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가 금전·부동산 거래, 인허가, 지정, 등록 등 직무를 수행할 때 자신의 사적 이해관계에 따라 공정하고 청렴한 직무수행이 저해되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상황에 대해 미리 이를 신고하고, 직무 회피를 신청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공직자 본인이 직무수행 중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해 사익을 취할 수 없도록 함은 물론, 제3자에게 정보를 제공해 이익을 취하도록 하는 것도 금지한다.
2013년 처음 국회에 발의됐으나, 폐기와 발의가 반복되며 논의가 정체됐다. 입법 당사자인 국회의원을 비롯해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의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로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탓이다.
선진국에서는 이해충돌방지법을 다양한 형태로 논의하면서 입법해 왔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현행 공직자윤리법과 부패방지법, 청탁금지법, 공무원행동강령, 대통령령 등으로 이를 갈음해왔다. 때문에 선제적으로 이해충돌을 방지하거나 효과적으로 작동하기에는 미약한 수준이다.
국회에 발의된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안’은 총 5개다. 정부안을 포함해 이정문‧박용진‧유동수 민주당 의원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앞서 발의했다. 이들 법안은 △사적 이해관계 신고와 회피 △이해관계자 기피 의무 부여 △취득이익 몰수와 추징 △직무상 비밀이용 재산상 이익 취득 금지 △가족 채용 제한 △수의계약 체결 제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7일 이해충돌방지법 공청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입법 논의에 들어갔다. 18일에는 법안심사소위에서 정부안을 토대로 기타 법안들을 함께 심사할 예정이다.
◆이해충돌방지법, 핵심 쟁점은 무엇?
이해충돌방지법의 쟁점은 공직자의 직무상 '사적이해 관계자'를 정부안에 제시된 것처럼 자신의 가족까지로 한정할 것인지, 아니면 친족까지 늘릴 것인지다. 또 자신의 가족뿐 아니라 배우자의 직계존비속까지 범위를 확대하자는 목소리도 있어 그 대상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에 참석한 이천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안에는 직무 관련 거래 신고나 수의계약 체결과 관련해서 생계를 같이 하는 직계존속 등만 포함하고 있는데, 배우자의 직계존비속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그러지 않으면 지나치게 그 범위를 축소해 입법의 취지를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안 제13조 및 제25조의 규제내용인 ‘직무상 비밀 이용 재물‧재산상의 이익 취득행위’와 ‘직무상 비밀의 사적이익 이용행위’로 한정한 조항 역시 쟁점이다. 직무상 비밀이라고 한정할 것이 아니라 ‘미공개 정보’로 명확히 수정해 회색지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재근 참여연대 권력감시국장은 “정부안에서는 공직자가 ‘직무상 비밀’을 이용하면 처벌하게 돼 있지만, 직무상 비밀이 형사처벌로 이어질 때 협소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미공개 정보 금지’로 규정해야 한다”며 “정부 법안에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제3자는 처벌하지 않도록 돼 있는데, 제3자도 처벌하고 (재산상 이득의) 최소 2배까지 벌금을 부과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미공개 정보 이용 금지는 정부에서도 검토한 것으로 아는데, 미공개 개념이 불명확한 측면이 있다”며 “‘침해되는 비밀’을 직무수행 중 알게 된 범위로 할지, 조직 내부의 비밀 자체를 대상으로 할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박용진 의원 발의 법안에 담은 '사적 이해관계자 사전등록제'도 핵심 쟁점 중 하나다. 만약 사전등록제가 시행될 경우 △공직자는 사적 이해관계자를 등록기관에 등록한 뒤 매년 1회 변동사항을 신고해야 하고 △공직자의 소속 기관장은 이해관계 등록의 예외를 정할 때 등록기관과 협의한 뒤 예외 항목과 사유를 공개해야 하며 △1급(차관보급) 이상 공무원 등 고위공직자의 경우 등록한 사적 이해관계를 공개해야 한다.
이해충돌 행위에 따른 처벌 역시 법안마다 다르다. 정부와 박용진 의원은 ‘사적 이해관계자 미신고 등’ 여부를 위반했을 경우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으나, 유동수‧심상정 의원은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가 필요하다고 봤다.
‘가족채용 제한 위반’의 경우 박 의원과 유 의원은 각각 3년‧2년 이하 징역의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적시했다.
이외에도 고위공직자를 차관급 이상 공무원, 국회의원, 광역·기초 자치단체장, 공공기관의 장으로 한정할 것인지, 차관급 이상 보수를 받는 공무원과 국회의원, 광역·기초자치단체장, 공공기관의 장·부기관장과 상임감사·상임이사까지 대폭 확대할지 여부도 쟁점이다.
◆급물살 탄 이해충돌방지법, ‘부작용’ 우려도
그러나 부작용 우려도 나온다. 이해충돌방지법은 직무 관련성과 사적 이해관계 등에 따라 대상과 범위 등이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을 제정하더라도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고 억울한 사례가 나올 수 있는 만큼 정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날 공청회에서 판사 출신인 임영호 변호사는 “이 법이 국민의 의식과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가하려고 하는 법률이라면, 법 규정의 의미가 명확해야 하고 실제로 운영하고 해석함에 있어서 본래의 입법취지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며 “이전에는 지켜야 할 예의로서 사회구성원들이 인식하던 행동규범을 갑자기 법 위반이라고 해석하면서 처벌하려 든다면, 오히려 이를 선뜻 법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법이 개인의 자유나 건전한 사회활동을 함부로 제약하는 방식으로 활용돼서는 안 된다”며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애초의 입법 의도와 달리 ‘공직사회 내부에서의 경쟁자 공격, 혹은 미운 자 찍어내기’ 수단으로 악용되는 등 우리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소지가 다분히 있다”고 우려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이미 부패방지법에서 직무상 비밀이용을 금지하고 있는데도 LH 임직원들의 개인적인 탐욕 추구와 조직적인 정보 공유, 투기를 막지 못했다”며 “모호하고 추상적인 이해충돌방지법 하나를 통과시킨다고 우리 공직사회의 불공정을 발본색원할 수는 없다. 정부는 국면전환용으로 이해충돌방지법에 접근하기보다 어떻게 더 실효성 있게 만들지 등 보완입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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