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이병철부터 김범수까지…한국 부자 1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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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완 기자
입력 2021-08-0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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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 이후 적산·삼백산업이 만든 두 재벌… 정재호 삼호그룹 회장·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 재벌 판도 바꾼 산업 변화… 건설 붐으로 막대한 부 거머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전자·반도체 산업으로 역대 최고 주식평가액 달성

  • 전환기에 서 있는 한국 재벌... IT 사업으로 시장에 뛰어든 카카오 김범수, 삼성 이재용 제쳐

  • 다만 한국 경제는 아직 반도체 중심… 김범수 1위 배경엔 이건희 재산 분배 이슈 있어

김범수 카카오 의장 [사진=카카오 제공]


우리나라 최고 부자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온 기업가가 최근 뒤바뀌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의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제치고 한국 최고 부자에 올랐다고 최근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수십 년간 대기업이 지배한 한국에서 자수성가한 정보기술(IT)기업이 어떻게 최고 부자 지위에 오르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이는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정치 권력은 유한하고 경제 권력은 무한하다는 말이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셈이다.

해방기 이전에 탄생한 우리나라 재벌들의 돈줄은 땅이었다. 땅을 짚고 최고 부자 자리에 오른 대표적인 인물로는 민영휘가 있다. 1930년대 대중지 '삼천리' 11월호에는 "조선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누구냐고 하면 어른이나 아이나 이구동성으로 민혜당(민영휘)이라고 똑같이 대답한다"고 적혀 있다. 민영휘는 '조선 토지 대왕'이라고 불릴 만큼 전통적인 땅 부자로 알려져 있다. 당시 민영휘는 농토 약 5만석지기(지금 돈으로 약 7200억~8400억원)를 바탕으로 부자 반열에 올랐다. 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백화점인 화신백화점을 지은 평안도 용강 출신 박흥식도 10대째 내려오는 2000석지기 지주로 알려져 있다.
 

 

재벌 대부분이 땅 부자였던 '대지주의 나라'는 광복 후에 단행된 농지개혁으로 막을 내렸다. 당시 정부는 농지개혁을 시행하면서 농지 소유 상한을 약 3만㎡로 정해 대지주 탄생을 제도적으로 막았다. 그 결과 1945년 말 35%에 불과했던 자작지 비중은 1951년 96%까지 치솟았다. 다시 말해 '대지주의 나라'에서 단번에 '소농의 나라'로 변모한 셈이다.

농지개혁으로 쇠약해진 땅 부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빈자리에는 적산 불하 수혜를 입거나 삼백(제분·제당·면방직)산업으로 덩치를 키운 기업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광복 직후 일제가 남기고 간 재산, 즉 적산을 싼 가격에 불하했는데 이 과정에서 부를 쌓은 재벌이 등장했다. 대구에서 양말 공장을 하다 삼호방직을 설립한 정재호 삼호그룹 회장은 적산인 조선방직과 대전방직을 손에 넣으면서 국내 최대 방직 재벌 기업가가 됐다.

반면에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전 회장은 미국이 원조하는 제분·제당·방직 등 삼백산업이 경제 중추로 떠오르자 이를 기반으로 자본을 축적해 나갔다. 이병철 전 회장은 6·25전쟁 직후 1953년 부산 전포동에 설탕공장인 제일제당공업사를 세운 뒤 순수 국내 기술로 설탕과 밀가루를 만들면서 덩치를 키웠다. 결국 이병철 전 회장은 1960년 국세청에 2억8000만원의 소득 신고를 하면서 그전까지 최고 재벌로 꼽혔던 정 회장(1억3000만원)을 제치고 우리나라 부자 1위에 올라섰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산업 판도와 경제개발 계획 속에서 재벌 순위는 엎치락뒤치락을 거듭했다. 1970년대에는 중동 건설 붐과 1차 석유파동이 국내 경제를 휩쓸면서 우리나라 재벌 순위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1970년 중반에는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중동 건설 붐에 힘입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막대한 부를 거머쥐면서 최고 부자로 떠올랐다. 정 명예회장은 1980년 국세청에 연간 소득으로 78억6000만원을 신고하면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때 베트남전 특수를 등에 업은 기업도 재벌 대열에 합류했는데, 베트남전 당시 미군 군수물자 수송을 맡았던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이 2위(9억8000만원)로 껑충 뛰어오르기도 했다. 특히 조 회장은 1980년대 3저(저환율·저유가·저원자재) 호황과 88서울올림픽 특수를 발판 삼아 한진그룹의 몸집을 키우면서 1990년 국세청 신고 소득액 기준 71억5000만원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때 삼성그룹 2대 총수에 오른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신고 금액은 그 절반에 못 미치는 29억5000만원이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사진=아주경제DB]


1990년대 들어 재벌 판도는 다시 한번 송두리째 흔들렸다. 전 세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등장한 반도체를 삼성이 성공적으로 키워내면서다. 삼성은 1992년 세계 최초로 64메가 D램 개발에 성공했고 이후 휴대전화, TV, 디스플레이로 이어지는 '황금의 사각 편대'를 구축했다. 그 결과 이건희 전 회장이 보유한 주식 재산도 광복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업분석 전문 한국CXO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이건희 전 회장의 주식 가치는 작년 12월 9일 종가 기준 22조154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역대 최고 주식평가액이다.

부동이던 한국 1위 부자 자리는 이건희 전 회장 별세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어받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IT(정보통신)와 게임 등 비대면 관련주들이 급부상하면서 움직일 거 같지 않던 한국 부자 1위 자리는 또 한 번 바뀌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의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제치고 한국 최고 부자에 등극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김 의장은 순자산 134억 달러(약 15조4000억원)를 기록하면서 121억 달러(약 13조9000억원)인 이 부회장을 제치고 국내 1위에 올라섰다. 모바일메신저 외에도 결제, 금융, 게임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힌 카카오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비대면 서비스 수요 덕을 톡톡히 본 것으로 풀이된다. 카카오 주가는 올해에만 91% 급등했다. 지금까지 건설과 반도체가 재벌을 키웠다면, IT서비스가 새로운 부의 동력으로 작용한 모양새다.

카카오가 한국 최고 부자에 등극했지만, 삼성 몸집이 작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도체는 여전히 국내 경제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산업 전반에 파급효과가 큰 핵심품목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 의장이 한국 최고 부자에 오른 배경에는 이건희 전 회장의 삼성 계열사 보유 지분 상속이 여러 후계자에게 나뉜 점도 영향을 끼쳤다. 여전히 국내 재벌가 주식 부자 순위에는 삼성가 유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60개 그룹 주요 총수 일가 90명의 주식 평가액은 지난 4월 말 기준 98조3300억원이다. 이 중 삼성가 몫은 42조원(42.8%)에 육박한다. 이는 현대차 시가총액과 맞먹는 수준이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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