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전자 예방접종증명서가 디지털백신여권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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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철 기자
입력 2021-08-2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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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UN) 지정 전기통신부문 총괄 국제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 디지털백신여권 국제표준화를 논의하는 온라인 워크숍이 지난주 열렸다. 이례적으로 ITU 전기통신표준화부문(ITU-T)에서 정보보호연구반(SG17), 멀티미디어연구반(SG16), 사물인터넷·스마트시티연구반(SG20), 세 연구반의 의장이 함께 참여했고, 각국 시민의 건강 개선과 질병 발병 예방을 위한 권고사항을 제시하는 세계보건기구(WHO)가 ITU와 함께 워크숍을 공식 주관했다. 민간 정보통신기술(ICT) 산업계 주요 표준을 선도하는 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 월드와이드웹컨소시엄(W3C),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와 미국, 중국, 유럽의 민간·공공 부문 디지털·의료보건 전문가 26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코로나19 디지털백신여권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각국의 전자 예방접종증명서 기술과 실제 사례를 듣고 향후 이 논의의 추진방향과 표준화를 위한 검토 사항을 논의했다. 질병관리청의 정우진 과장이 한국의 코로나19 전자 예방접종증명서 서비스와 앱을 소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인터넷진흥원의 박상환 블록체인진흥단장이 블록체인 분산신원증명(DID) 기술 기반 '쿠브'와 SKT, 라온시큐어 등 다른 민간기업의 탈중앙화 플랫폼 활용 가능성, 네이버·카카오의 중앙화 디지털 인증서 기반 서비스 현황을 제시하고 관련 기술의 표준화 방향을 제안했다.

워크숍에서 현재 코로나19 예방접종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도입된 기술 현황을 다루는 첫 세션에 WHO 소속 기술책임자(Natschja Ratanaprayul)도 참석해 발표를 진행했다. WHO 측은 다음 다섯 가지를 검토하고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첫째, 국가용 코로나19 예방접종증명서 규격을 선정할 것. 둘째, 구현방식에 따라 솔루션을 서비스할 지점을 결정할 것. 셋째, 증명서를 발급하고 검증하는 절차를 지원할 정책을 마련할 것. 넷째, 증명서를 발급할 대상의 고유 신원 확인체계와 신원정보를 증명서에 연계할지 판단할 것. 다섯째, 타 국가에서 발행된 증명서의 유효성을 검증할 신뢰 프레임워크와 상호 인정을 위한 절차를 구성할 것. 이 밖에도 WHO가 코로나19 예방접종증명서 규격으로 마련한 'DDCC:VS'가 소개됐다. 이 규격은 '디지털 기술 표준'이 아니라, 예방접종증명서 기능을 위한 종이·전자적 수단을 모두 고려한 규격이다. WHO는 디지털백신여권이 도입되더라도 전 세계 시민들 간의 디지털 격차가 확대되지 않아야 하고, 기술을 제공하는 특정 공급자에게 사람들이 종속되지 않고, 누구든지 접근할 수 있는 형식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첫 세션의 결론에서 WHO의 예방접종증명 관련 규격을 ITU-T 표준으로 제출할 것을 권고하고, ITU 차원에서 신뢰와 상호운용성을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기 위해 DID 기술을 활용하는 데 뜻을 모았다. 둘째 세션에선 예방접종증명서를 하드웨어보안모듈(HSM)이나 여러 국가에서 통용할 수 있는 휴대전화 가입자식별모듈(SIM)을 써서 구현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 감염 후 음성판정을 받은 사람에 대한 정보 처리, 증명서 발급 당사자 신원을 다루기 위한 메타데이터 표준화 등을 제안했다. 셋째 세션에선 예방접종증명서에 담을 핵심 데이터를 정의하되 WHO가 정의한 용어들을 사용할 것, 예방접종증명서 표준화 로드맵을 만들고 이행수준 격차를 분석할 것 등을 권고했다.

한국의 질병청, 행정안전부, 과기정통부가 지원하고 민간 기업들의 적극적인 서비스 개발과 홍보로 확산하고 있는 코로나19 전자 예방접종증명서 규격과 기술이 이런 흐름에 동참해 코로나19 예방접종증명서 국제표준 관련 주요 의사결정을 주도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한국에서 통용되고 있는 기술이 반영된 국제표준이 마련되고 각국에서 이 표준을 상호인정한다면 실질적인 '디지털 백신여권'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워크숍을 주도적으로 개최한 ITU-T SG17의 의장인 염흥열 순천향대 교수는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봤다. 워크숍을 마친 뒤 그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밝혔다.

"백신접종 여부를 주로 알려주는 백신접종증명서·백신 여권, 백신접종 여부에 더해 PCR 결과·회복 여부 등을 포함하는 COVID-19 증명서 등 여러 가지 용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단기적인 목표와 장기적인 목표를 설정해 국제 표준화를 추진해야 합니다. 신흥 기술과 기존 기술의 조화·활용도 필요해 보입니다. 정보화 성숙도 등이 뒤진 후발국 등의 역량을 고려한 포괄성이 있는 증명서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견해와 주장을 갖는 여러 이해당사자의 견해를 모아 국제표준으로 합의하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매우 의미 있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류가 당면한 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하나의 기술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ICT·정보보호 전문가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지원 바랍니다. 정부·공공기관과 주요 기업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절실합니다. 우선 닥친 업무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예측하면서 장기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는 혜안도 필요해 보입니다."

염 교수의 지적대로 일상생활과 의료 현장에서, 민간 기업과 보건당국의 발표 등에서 통일되지 않은 용어와 명칭이 쓰이고 있다. 디지털 형태로 제공되는 예방접종증명서를 바라보는 인식과 발전 방향에 대한 기대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보건의료계와 ICT 분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할 복잡한 사항이 매우 많다. 질병청의 '쿠브' 서비스는 현재 코로나19 예방접종 일자, 종류, 차수 등을 나타내는 수준이다. 디지털백신여권으로 활용하기 위해 여기에 담길 정보는 이것으로 충분할지, 아니면 접종 당사자의 면역능력 형성 여부까지 다뤄야 할 것인지 판단이 필요하다. 이 증명서로 코로나19 관련 정보만 취급할지, 다른 주요 감염병의 접종 이력까지 다룰지도 관건이 된다. 또한 이 증명서로 예방접종과 투약 등 처방관련 정보만 다룰 것인지, 그와 관련된 개인의 기저질환 등 의료건강기록과 신원증명 정보까지 연관지어 처리되게 할 것인지도 실제 의료 현장에선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기술적인 논의는 물론 복잡하게 전개되겠지만, 표준 규격을 최대한 유연하게 설계한다면 대체로 현실에 맞게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핵심은 결국 만들어낸 표준을 언제 어떻게 국가 행정에 도입해 시행하고, 국가 간 상호 인정 단계에 이르게 할 것인지다. 이해당사자의 관계와 인식은 각국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어서, 엄격한 표준을 만들고 각국의 방역 실무 현장과 출입국 검역·법무 행정 처리에 일관되게 적용할 수는 없을 듯하다. 단순한 종이 예방접종증명서를 디지털 스캔한 수준에 그칠 수도, 국제 운전면허증처럼 타국의 방역과 행정 당국에서 인정하는 국제 증명서로 활용될 수도 있다. ITU-T SG17을 비롯한 세 연구반과 WHO의 전문가들, 주요 국가 정부 주요 보건의료 당국의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아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진=임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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