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 인건비, 금리인상 등 건설 원가가 치솟으면서 건설사들의 '묻지마' 수주 경쟁이 치열했던 재건축 시장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감을 맡기는 조합이 '갑', 공사를 따내야 하는 건설사가 '을'의 입장이었지만 최근 급격한 원가상승으로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진 건설사들이 사업장 옥석 가리기에 나서면서 이제 조합이 건설사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어렵게 공사 계약을 체결해도 공사비 갈등이라는 암초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둔촌주공을 비롯해 서울과 지방 주요 정비사업장에서는 조합과 시공사 간의 갈등이 심상치 않게 목격된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분양가 개편이라는 숙제를 제대로 끝내지 못해 충분히 예견된 갈등을 민간에 전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공사비로는 계약 못해"...공사 포기하는 건설사 속출
13일 건설업계 관계자는 "연평균 1%씩 오르던 공동주택 건설공사비지수가 올 2분기에만 20~30% 뛰었다"면서 "지금 같은 상황에선 공사비 견적을 뽑는 게 무의미하다. 매일 눈 뜨면 원자재 가격이 올라가 있어서 제대로 된 공사비 산정을 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 1분기 건설투자 디플레이터는 전년동기대비 10.4%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투자 디플레이터는 외부요인을 제거한 실질 건설물가 상승률이다. 이 비율은 지난해에는 3%대를 기록했고, 2019~2020년에는 1~2%대를 유지했다.
건설 원자재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현장에선 시공사와 조합 사이의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 경기 성남시 분당 매화마을 2단지 리모델링조합은 삼성물산·GS건설 사업단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해지 통보' 공문을 발송했다. 조합은 3.3㎡당 630만원의 공사비를, 시공사업단은 3.3㎡당 720만~730만원의 공사비를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공사업단 관계자는 "백번 양보해 3.3㎡당 670만원대의 공사비를 제안했지만 조합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서 "조합이 제시한 공사비로는 도저히 (조합이 원하는) 요구 수준을 맞추기 어려웠다. 사업 불확실성이 커 적자를 보고 수주하느니 사업을 포기하는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3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장은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동3구역은 '부산의 강남'으로 불리는 해운대 입지지만 공사비를 두고 조합과 건설사들의 눈높이가 맞지 않아 4차례나 유찰됐다. 조합은 3.3㎡당 620만원 수준의 공사비를, 시공사들은 그 이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은 입찰보증금을 낮춰 최근 5번째 입찰공고를 냈다.
이와 관련, 건설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공사를 따내기 위해 시공사들이 공사비 인하, 금융비 지원, 특화설계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했지만 지금은 조합이 원하는 3.3㎡당 400만~500만원대의 공사비로는 첫 삽을 뜰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면서 "조합원들이 요구하는 마감재 고급화, 특화설계 등의 조건을 맞추려면 700만~800만원대(3.3㎡당)의 공사비로는 이제 어림도 없다"고 말했다.
공사비 갈등으로 사업이 지연될 위기에 놓이자 사업비를 인상하는 조합들도 늘고 있다. 경기 성남시 수정구 재개발 사업장인 수진 1구역과 신흥 1구역은 최근 2차 시공사 선정 입찰 공고에서 3.3㎡당 공사비를 기존 495만원보다 약 3% 올려 제시했다. 두 구역 모두 LH가 시행을 맡은 공공 재개발 사업장이다. 서울 용산구 한남2구역은 2020년 3.3㎡당 598만원에 체결한 공사비를 28.76%나 올려 770만원으로 재산정했다.
◇상한선 4%룰...예고된 갈등, 방관하는 정부
업계에서는 정부의 분양가상한제 개편이 기대 이하의 수준으로 마무리되면서 민간의 공사비 갈등을 부추겼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동안 반영되지 않았던 재정비 사업 추진과정의 필수비용과 자재 가격 상승분을 적기에 반영하도록 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전체적인 상승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4%'로 제시해 정책 실효성을 반감시켰다는 설명이다.
앞서 국토부는 정비사업 아파트 분양가를 1.5~4% 내에서 인상하는 내용의 '분양가 제도 운영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아파트 분양가의 급등을 막기 위해 도입한 분양가상한제가 공사비 갈등, 분양지연 등 공급을 막는 요소로 작용하자 대폭 손질에 나선 것이다. 그동안 국토부는 택지비, 기본형 건축비, 가산비 등을 산정해 주변 시세의 최대 80% 안팎에서 아파트 분양가를 책정해왔다.
문제는 최대 인상폭으로 제시한 '4%룰'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세와 5%대로 올라선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봤을 때 이같은 상승폭은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가 분양가상한제를 개편한다고 해서 현장의 애로를 덜고, 보다 현실화된 대안이 나올 줄 알았는데 분양가 인상이라는 여론 압박에 굴복해 인상폭을 4%로 제한했다"면서 "(이건) 한 것도 아니고, 안한 것도 아닌 말장난 같은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공무원들이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현실을 외면하고, 분쟁의 책임을 민간으로 전가한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도급 공사에서 원자재 가격이 평균 10% 상승하면 건설사의 영업이익률은 약 3%포인트 하락한다. 중소 건설업계 관계자는 "총액 계약이 주를 이루는 민간 공사의 경우 자재 가격 부담을 다른 곳에 전가하는 게 쉽지 않다"면서 "분양경기도 예전같지 않은 상황이라 이대로면 향후 1~2년 안에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비상 경영에 돌입하는 기업들이 많다"고 했다.
어렵게 공사 계약을 체결해도 공사비 갈등이라는 암초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둔촌주공을 비롯해 서울과 지방 주요 정비사업장에서는 조합과 시공사 간의 갈등이 심상치 않게 목격된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분양가 개편이라는 숙제를 제대로 끝내지 못해 충분히 예견된 갈등을 민간에 전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공사비로는 계약 못해"...공사 포기하는 건설사 속출
13일 건설업계 관계자는 "연평균 1%씩 오르던 공동주택 건설공사비지수가 올 2분기에만 20~30% 뛰었다"면서 "지금 같은 상황에선 공사비 견적을 뽑는 게 무의미하다. 매일 눈 뜨면 원자재 가격이 올라가 있어서 제대로 된 공사비 산정을 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건설 원자재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현장에선 시공사와 조합 사이의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 경기 성남시 분당 매화마을 2단지 리모델링조합은 삼성물산·GS건설 사업단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해지 통보' 공문을 발송했다. 조합은 3.3㎡당 630만원의 공사비를, 시공사업단은 3.3㎡당 720만~730만원의 공사비를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공사업단 관계자는 "백번 양보해 3.3㎡당 670만원대의 공사비를 제안했지만 조합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서 "조합이 제시한 공사비로는 도저히 (조합이 원하는) 요구 수준을 맞추기 어려웠다. 사업 불확실성이 커 적자를 보고 수주하느니 사업을 포기하는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3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장은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동3구역은 '부산의 강남'으로 불리는 해운대 입지지만 공사비를 두고 조합과 건설사들의 눈높이가 맞지 않아 4차례나 유찰됐다. 조합은 3.3㎡당 620만원 수준의 공사비를, 시공사들은 그 이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은 입찰보증금을 낮춰 최근 5번째 입찰공고를 냈다.
이와 관련, 건설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공사를 따내기 위해 시공사들이 공사비 인하, 금융비 지원, 특화설계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했지만 지금은 조합이 원하는 3.3㎡당 400만~500만원대의 공사비로는 첫 삽을 뜰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면서 "조합원들이 요구하는 마감재 고급화, 특화설계 등의 조건을 맞추려면 700만~800만원대(3.3㎡당)의 공사비로는 이제 어림도 없다"고 말했다.
공사비 갈등으로 사업이 지연될 위기에 놓이자 사업비를 인상하는 조합들도 늘고 있다. 경기 성남시 수정구 재개발 사업장인 수진 1구역과 신흥 1구역은 최근 2차 시공사 선정 입찰 공고에서 3.3㎡당 공사비를 기존 495만원보다 약 3% 올려 제시했다. 두 구역 모두 LH가 시행을 맡은 공공 재개발 사업장이다. 서울 용산구 한남2구역은 2020년 3.3㎡당 598만원에 체결한 공사비를 28.76%나 올려 770만원으로 재산정했다.
◇상한선 4%룰...예고된 갈등, 방관하는 정부
업계에서는 정부의 분양가상한제 개편이 기대 이하의 수준으로 마무리되면서 민간의 공사비 갈등을 부추겼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동안 반영되지 않았던 재정비 사업 추진과정의 필수비용과 자재 가격 상승분을 적기에 반영하도록 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전체적인 상승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4%'로 제시해 정책 실효성을 반감시켰다는 설명이다.
앞서 국토부는 정비사업 아파트 분양가를 1.5~4% 내에서 인상하는 내용의 '분양가 제도 운영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아파트 분양가의 급등을 막기 위해 도입한 분양가상한제가 공사비 갈등, 분양지연 등 공급을 막는 요소로 작용하자 대폭 손질에 나선 것이다. 그동안 국토부는 택지비, 기본형 건축비, 가산비 등을 산정해 주변 시세의 최대 80% 안팎에서 아파트 분양가를 책정해왔다.
문제는 최대 인상폭으로 제시한 '4%룰'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세와 5%대로 올라선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봤을 때 이같은 상승폭은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가 분양가상한제를 개편한다고 해서 현장의 애로를 덜고, 보다 현실화된 대안이 나올 줄 알았는데 분양가 인상이라는 여론 압박에 굴복해 인상폭을 4%로 제한했다"면서 "(이건) 한 것도 아니고, 안한 것도 아닌 말장난 같은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공무원들이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현실을 외면하고, 분쟁의 책임을 민간으로 전가한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도급 공사에서 원자재 가격이 평균 10% 상승하면 건설사의 영업이익률은 약 3%포인트 하락한다. 중소 건설업계 관계자는 "총액 계약이 주를 이루는 민간 공사의 경우 자재 가격 부담을 다른 곳에 전가하는 게 쉽지 않다"면서 "분양경기도 예전같지 않은 상황이라 이대로면 향후 1~2년 안에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비상 경영에 돌입하는 기업들이 많다"고 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