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지난 이틀간 8% 가까이 급락하는 등 3개월 연속 내림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 부족을 걱정했던 글로벌 원유 시장은 이제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위축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제 유가 하락은 경기 침체가 원유 수요를 위축시킬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시그널이라고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날 10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전장 대비 배럴당 2.3% 하락한 89.55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9일 기록했던 종가 97.01 달러에서 크게 밀린 것이다. 10월물 브렌트유 가격은 이달에만 배럴당 12% 빠지며 배럴당 96.49 달러를 기록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공급 부족 공포에 배럴당 120 달러 넘게 치솟았던 지난 3월의 상황을 생각하면 상전벽해 수준이다. 서방의 대러 제재로 인해 러시아산 원유가 국제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란 우려는 유가를 천장 끝까지 밀어 올렸었다.
그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 억제 전투를 천명하면서 유가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WSJ는 공급 부족과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위축이 팽팽하게 맞섰고, 최근에는 수요 위축으로 전망이 급격히 기울어졌다고 짚었다.
증권사 에버코어 ISI의 애널리스트인 스테판 리처드슨은 “원유 시장은 불황에 대한 공포에서 불황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평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비싼 가격에 수요가 쪼그라든 가운데 인플레이션을 짓누르기 위한 연준의 긴축은 글로벌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고 있다. 미국 증시의 3대 지수는 최근 4거래일 연속 하락하는 등 금융 시장은 휘청이는 양상이다.
중국의 봉쇄정책도 문제다. 선전, 광저우, 다롄 등 중국의 일부 지역들이 부분 봉쇄에 들어가면서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의 생산 활동이 다시 멈추어 설 수 있다는 걱정이 고개를 들고 있다.
오안다의 에드워드 모야 수석 애널리스트는 “시장 트레이더들은 글로벌 경제 성장에 매서운 바람이 불어닥칠 것으로 예상한다”며 “중국 공장 활동은 여전히 위축 국면이며 유로존의 물가 상승률이 매달 사상 최고치를 찍으며 유럽중앙은행(ECB)이 긴축 속도를 높여 심각한 경기침체를 촉발할 수 있다”고 WSJ에 말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적 비축유(SPR) 방출이 9월부터 종료될 예정이라는 점, 이란 핵협상 복원을 통해 이란의 원유 수출문이 열릴 수 있다는 점 등은 변수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유가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감산에 나설 수 있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한다.
미국 원유 재고는 시장의 전망보다 더 많이 감소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과 다우존스에 따르면 지난 26일로 끝난 한 주간 원유 재고는 전주 대비 약 330만 배럴 줄어들었다. WSJ가 집계한 전문가들의 예상치인 120만 배럴 감소보다 더 줄어든 것이다.
또한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코로나19로 수요가 위축되기 전보다 하루 100만 배럴 이상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생산량은 증가 추세다. 6월 미국 원유 생산량은 2020년 4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증가했다고 EIA는 밝혔다.
한편, 주요 7개국(G7)은 러시아산 원유에 가격상한제를 도입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내달 2일 재무장관 회의를 연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이날 워싱턴 DC에서 나딤 자하위 영국 재무장관을 만나 “가격상한제는 푸틴의 전쟁에 필요한 재원을 줄일 뿐만 아니라 에너지 가격을 낮추고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유럽연합(EU)은 오는 12월 5일부터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를 시행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