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강화된 확장억제 공약을 확인하고, 실행력을 제고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를 미국 측과 논의할 것이다.”
미국 워싱턴DC에서 4년 8개월 만에 재개되는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에 참석하는 신범철 국방부 차관이 14일 미국 덜레스 공항에서 취재진에게 이같이 말하며 “큰 틀에서 북한의 위협을 한·미가 어떻게 공유하고 대응책을 마련할지, 확장 억제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발전시켜 국민을 안심시킬지 진전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최근 '자의적 위협 판단'에 따라 언제든 남한을 겨냥한 핵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핵무력(핵무기 전력) 법제화를 대내외에 과시한 것을 의식한 답변이다.
16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리는 EDSCG에서 공약에 불과한 확장억제를 제도화할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8일 2013년 4월 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공고히 한다는 내용으로 채택한 법령을 공식 폐기했다. 대신 ‘선제공격’이 가능한 핵무력 법령을 채택했다.
북한 측 돌발행동에 전문가들은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확장억제(ED·extended deterrence) 강화 방안에 대한 미국 측 확약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이 핵무력을 국가 근본체제로 주장한 점에 비춰봤을 때 정부가 미국 측 확장억제 약속에만 기대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북한 핵 위협에 대해 미국 전략 핵 폭격기, 핵 추진 잠수함, 핵 추진 항공모함, 대륙 간 탄도 미사일(ICBM), 고성능 스텔스 전투기 F-22 등이 상시 한반도에 전개되는 실행력을 약속이 아닌 구속력 있는 제도로 묶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 역시 “한·미 간 확장억제는 약속에 불과하다”며 “제도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핵 위협이 임박했을 때 어떤 수단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단계별로 구체화하고, 우리가 원하는 시점에 전략자산들이 전개될 수 있도록 의사 결정 과정에 일부라도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도 한·미 간 확장억제 실행력 강화를 위한 제도화 기틀 마련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패트릭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이 최근 핵 선제공격을 가능하게 한 법령을 채택한 것에 대해 “북한이 과거에도 해 온 것으로, (역내를) 불안정하게 하는 발언의 연장선”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핵 억제와 관련한 검증된 정책과 절차를 갖고 있고, 여기에는 국제 동맹과 매우 긴밀한 협력이 포함된다”고 했다.
미국 국방부가 나서 북한 선제 핵공격에 대한 대응 방안이 준비됐음을 강조했지만 실효적 조약 등에 근거를 둔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역내 파트너인 우리 측 우려를 씻어내기에는 불충분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아울러 미국이 최근 자국 내 생산 전기차에 대해서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발효하는 등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자세를 유지하면서 동맹 간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도 문제다.
따라서 미국의 불확실한 핵우산에 기대기보다 전술핵에 대한 사용권을 공유하는 ‘나토식 핵공유 모델’을 도입하거나 남한 독자적으로 핵무장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러시아의 우르라이나 침공에서 보듯 자유는 공짜가 아니고, 북한의 핵 위협은 ‘블랙 스완(Black Swan·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 현실화하는 것)'이 아니라 ‘핑크 플라밍고(Pink Flamingo·매우 예측 가능한 사건)'라는 것이다. 다만 동북아 비확산 체제 붕괴 우려로 인해 미국이 한국에 대해 단독 핵보유를 허가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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