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 "친시장파 경제 관료" vs "非경제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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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중국)=배인선 특파원
입력 2022-11-0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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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경제 이끌 차기 총리내정자 리창 분석

  • 과거 인터뷰 "정부 '만능' 아냐" 시장 역할 강조

  • 리창의 경제이론 '무산론영웅'

  • '꼭두각시' 총리냐, 친시장파 총리냐

중국 차기 총리 내정자 리창.[아주경제DB]

세계 2대 경제대국을 운영할 중국 차기 총리는 ‘시진핑 사단’으로 분류되는 리창(李强) 상하이 당서기로 내정됐다. ‘중앙 행정 경험이 전무한 중국 최초의 비(非) 경제 전문가 총리’라는 우려 목소리가 나오지만, 또 한편으론 중국 경제 허브인 창장 삼각주의 상하이·저장·장쑤 지역에서 성장, 혹은 서기를 역임했던 중국 최초의 총리로, 친기업적·친시장적 관료라는 기대감도 있다.

한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라이벌로 10년 임기 내내 견제를 받던 리커창 총리와 달리, 리창은 시진핑이 아끼는 부하다. 특히 리창의 친시장 행보는 시장보다 정부 역할을 중요시하는 시코노믹스(시진핑 경제정책) 색채를 옅게 만들어 주지 않겠냐는 관측도 있다.
 
“정부는 ‘만능’ 아냐" 시장 역할 강조
과거 인터뷰 발언 ‘화제’
"정부가 모든 것을 다 간섭하는 '집사'가 돼서는 안된다" <2013년 차이신 인터뷰>
"저장성은 더 많은 알리바바와 마윈을 육성해야 한다"<2014년 제1회 세계인터넷대회 연설>
"시장이 역할을 더 발휘하도록 해야지, 정부가 '발묘조장(拔苗助長)’해서는 안되다" <2015년 CNTV 인터뷰>

리창의 친시장·친기업적 성향은 과거 연설이나 인터뷰 내용을 통해 파악해 볼 수 있다. 

2013년 겨울, 중국 내 권위 있는 정치·경제 전문 매체 차이신의 후수리 전 편집장이 당시 저장성 성장이었던 리창을 인터뷰한 기사가 대표적이다. 후수리는 미국 경제주간지 포춘이 선정한 세계 '50인 지도자'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되는 등 중국 언론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힌다. 

리창은 당시 인터뷰에서 중국 경제 성장 과정에서 민영경제와 시장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민영경제는 저장성 지역경제의 최대 활력소”, “민영기업의 활력과 혁신력이 저장성의 민영경제 발전을 좌지우지한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리창은 “시장이 활기를 띠려면 기업이 많아야 한다. 그럼 경쟁이 더 많아지고, 시장은 더 활기를 띠게 된다”며 “중소기업을 지원해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밸브를 열어 물을 주려면 문턱을 낮춰야 한다”며 교육·의료 등 공공 서비스 시장에 민영기업이 진출하는 것을 적극 지지했다. 그는 정부 역량엔 한계가 있는 만큼, 민간의 힘으로 공공 서비스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야 할 것을 조언했다.

시진핑 주석에게 밉보였던 마윈 알리바바 창업주에 대한 칭찬도 했다. “마윈은 오로지 창업에 대한 열정만 갖고 빈손으로 창업했다"며 “그러한 창업가 정신만 있다면 무서울 게 없다”고 높이 평가한 것. 

비대한 정부 기관을 개혁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정부 거버넌스 현대화를 강조하며, 정부가 할 일은 하되,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만능이 돼서는 안된다며 특히 미시 경제 활동에 대한 간섭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제도의 활력을 시장·사회의 활력으로 전환하려면 정부가 활력이 있어야 하며, 이는 정부 스스로 개혁하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오늘날 "동서남북, 당이 모든 걸 영도한다”고 주장하는 시진핑 사상과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발언이다. 
 
中경제허브 저장·장쑤·상하이 수장 두루 경험
리창이 제창한 ‘무산론영웅’
특히 '민영경제 요람'으로 불리는 저장성 성장으로 재임할 당시, 그는 어떻게 하면 기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리창의 대표적인 경제 이론인 ‘무산론영웅(畝産論英雄)’이 탄생한 배경이다. 

무(畝, 1무=666㎡)는 원래 중국에서 토지 면적 단위다. 무산론영웅은 무당 생산액으로 기업 등급 가치를 매겨, 무당 생산성이 높은 기업에 자금과 물자 인력을 몰아줘서 집중 육성하겠다는 뜻이다. 은행 대출을 더 많이 대주고, 토지를 싼값에 제공하고, 가스·수도·전기료 등을 낮춰주는 등의 방식이다. 이는 덩치만 클 뿐 비효율적인 국유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한편, 강소기업을 적극 육성하는 데 도움이 됐다. 리창은 이 경제이론을 훗날 장쑤성 서기, 상하이시 서기로 재임할 때에도 적극 활용했다. 

그는 저장·장쑤·상하이시 3개 지방 정부의 수장을 맡으면서 현지 중국 기업인은 물론 다국적 기업인과도 긴밀히 소통하며 친분을 쌓았다. 일반적으로 민간 경제가 발달한 이곳 관료들은 경제 운용 경험이 풍부하고 융통적이고 개방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상하이 서기 시절 치적은 화려하다. 미·중 갈등이 격화하던 2019년 시진핑 주석이 하이테크 기업 자금 조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제창한 ‘상하이판 나스닥’ 커촹반이 리창의 진두 지휘 아래 상하이거래소에서 일사천리로 출범했다. 미국 전기차기업 테슬라 공장 투자를 상하이로 유치하는 데도 큰 공을 세웠다.

리창에 대한 현지 재계 평판도 나쁘지 않았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컨트롤리스크 앤드류 길홈 중국분석 본부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서 “기업 친화적인 리창은 상하이 재계에서 평판이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다.

FT는 리창의 지인들은 그를 “상냥하고 친근하며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표현했다며 “유능하고 비즈니스 친화적인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시진핑의 ‘꼭두각시’ 총리냐
시코노믹스 색채 옅게 할 친시장 총리냐

지난 10월 23일 열린 중국 공산당 20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20기1중전회) 폐막 후 기자회견장 단상으로 걸어나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리창 상하이 당서기.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사실 코로나19 사태 발발 이후, 베이징·선전 등 타 대도시가 소규모 확진자 발생에도 도시를 봉쇄하는 등 강압적인 제로코로나 정책을 시행할 때도 상하이는 줄곧 유연한 방역 정책을 선보였다.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일부 지역만 타깃으로 정밀화 방역을 실시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방역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했다. 한때 중국 언론들은 상하이 특색 방역 모델을 높이 평가하며 이를 중국 전역으로 확산해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올 봄 상하이에 갑작스럽게 코로나 확진자가 대규모로 발생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결국 상하이는 도시 전체가 두달간 봉쇄되는 최악의 사태를 겪었다. 지역 경제는 마비됐고, 리창이 그간 상하이 당서기로서 공들여 쌓은 업적과 명망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는 상하이 주민들의 불만과 원성을 사며 신뢰를 잃었다. 리창이 차기 상무위원 후보에서 탈락할 것이란 관측이 무성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은 여전히 리창을 중용하며 그를 차기 총리로 낙점했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 중국 전문가 링리 교수는 FT를 통해 "시진핑은 리창의 상하이 봉쇄를 높이 평가했다”며 “당이 중요한 순간에 직면했을 때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막중한 책임을 지는 진정한 공산주의자로서 롤 모델을 선보였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차기 총리 리창에 대한 가장 큰 의문은 그가 시 주석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꼭두각시 총리'가 될 것인지, 아니면 시 주석의 절대적 신뢰를 잘 활용해 친기업적 행보로 개혁개방을 진두지휘하며 시장보다 정부 통제 역할을 중요시하는 시코노믹스 색채를 약화시킬 것인가이다.

조르그 우트케 주중유럽연합(EU)상회 회장은 최근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지방 행정 경험밖에 없는 사람이 국무원 1인자로 올라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중앙에서 일해본 적도 없는 차기 총리가 재계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며 “아주 힘들 것 같다"고 우려했다.

장양 아메리칸 대학 교수도 뉴욕타임스에서 "중앙에서 경험이나 권력 기반이 취약한 만큼, 시진핑 주석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중국 컨설팅업체 플레넘의 천룽 파트너는 FT를 통해 “시진핑의 충성파라고 모두 잘못됐다고 보면 안된다”며 “한때 시진핑의 라이벌로 견제를 받았던 리커창 총리와 달리 리창이 추진하는 (친시장, 친기업) 정책은 시진핑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신중한 낙관론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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