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박씨는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 어떤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말하며 "오늘 (샤워실에) 걸어가서 샤워도 하고 했다"고 자신의 건강 상태를 말했다.
그러나 박씨와 함께 구조된 동료 광부 박모씨(56)는 매일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전했다. 작업 반장 박씨는 “아내가 옆에서 지켜주는데 밤에 잘 때 시끄러운 거 같다. 악몽을 꾸는 거 같다. 옆에 있는 친구도 그렇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지난달 26일 오후 4시부터 두 사람은 아연 채굴 작업에 투입됐다.
두 사람은 사다리를 이용해 탈출하려다 낙하물로 인해 포기하고 아래쪽 갱도인 램프웨이 구간으로 향했다.
박씨는 "램프웨이 구간에 덤프들이 다녔던 큰 터널이 있어서 출구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둘이서 3일 동안 10m를 괭이로 팠는데 뒤에도 막혀 있어서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후 두 사람은 고립 당시 작업 장소로 돌아와 발파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는 "31일부터 발파 소리가 아주 약하게 나서 위쪽으로 등(헤드랜턴)을 흔들어보고 소리도 질러봤는데 위에서는 못 듣더라"고 말했다.
반장 박씨 등은 사고가 난 곳에서 작업한 지 4일째 되던 날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박씨는 “작업 장소를 옮기면서 나무 같은 게 필요할 거 같아서 20개 정도 뒀었고 산소절단기도 가져다 놨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고립 당시 현장에 남겨져 있던 비닐을 이용해 움막(천막)을 만들고 모닥불을 피워가며 추위와 싸웠다. 연기를 위쪽으로 올려보내 생존 신호를 보내려는 목적도 있었다.
박씨는 "움막 없었으면 밤에 추워서 추워서 못 있었을 거다"라며 "전기도 나가서 커피포트를 못 쓰니 플라스틱 부분은 떼고 금속 부분에만 물을 담아서 모닥불에 끓여 먹었다"고 말했다.
이어 "작업 들어가기 전에 커피믹스 박스에 손을 넣어서 30개 정도 챙겼다. 첫날에 빨리 구조가 될 줄 알고 커피 믹스 2개를 종이컵 하나에 담고 이게 오늘 우리 저녁이니 저녁밥 먹자고 동료한테 말했었다"라고 말했다.
구조하러 온 동료와 처음 만난 상황에 대해서는 "북한에서 탈북해서 열심히 사는 아주 젊은 앤데 '형님' 하면서 막 뛰어왔고, 부둥켜안고 울었다"며 "얼마나 반갑겠나. 퍽퍽 꺼져가는 촛불이 한 번에 되살아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는 헤드랜턴도 배터리가 다 소진되던 때고 나무도 얼마 안 남았었다"며 "LPG 가스는 진즉에 다 떨어졌고 라이터 가스도 조금 남았었다"고 안도했다.
또한 그는 전날 윤 대통령의 쾌유 기원 카드와 선물을 전하러 온 강경성 산업정책비서관 등에게 “대통령에게 꼭 좀 전해달라”면서 “광산 안전업무기관들이 겉핥기식 점검을 한다. 광부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도록 점검하고 보완 조치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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