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 中국민분식 '란저우라면 법'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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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중국)=배인선 특파원
입력 2023-03-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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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란저우, 하루 200만 그릇씩 팔리는 우육면

  • 면발만 9종···육수와 국수에 담긴 '비법'

  • '란저우 라면집' 우후죽순···잃어가는 전통

  • 양저우 볶음밥법, 윈난 쌀국수법도···

란저우 우육면 [사진=웨이보]

“란저우에는 ‘란저우 라몐(라면)’이 없어요.” 

얼마 전 중국 간쑤성 란저우 시내 뉴러우몐(牛肉面, 우육면) 노포에서 만난 현지인 류씨가 말했다. 란저우 사람들은 란저우 우육면이라 부르지, 란저우 라면이라 부르지 않는다는 것.

정통 란저우 우육면 집은 전날 소고기 뼈를 사다가 4~5시간 푹 끓여 우려낸 육수로 새벽부터 장사를 한다. 육수를 물에 희석시키지 않고 원액 그대로의 맛을 유지하기 때문에, 점심 장사를 마칠 때쯤이면 육수가 동이 난다. 류씨는 “정통 란저우 우육면 가게는 오후 2시면 문을 닫는다”며 란저우 우육면을 향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란저우人 '우육면' 사랑···하루 200만 그릇씩 팔려

중국 간쑤성 란저우 비물질문화유산 박물관이 재현해 놓은 과거 청나라 말 '란저우 우육면 시조' 마바오쯔의 식당 모습. [사진=배인선 기자]

란저우 사람들의 우육면 사랑은 유명하다. 하루 아침·점심 두끼를 우육면으로 때우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 '우육면을 먹는다'는 뜻의 현지 사투리도 있다. '扎碗牛大(자완뉴다)'다. '자(扎)'는 파고든다, '완(碗)'은 사발, '뉴다(牛大)'는 우육면 대(大)자의 줄임말이다. 즉, 얼굴을 큰 사발에 파묻고 우육면을 먹는다는 뜻이다.   

인구 440만명의 도시 란저우에서 하루 팔리는 우육면은 200만 그릇. 2명 중 1명은 우육면을 먹는다는 얘기다. 란저우 사람들이 하루에 밀가루 37톤, 고추 30톤을 소비한다는 통계도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과거 란저우를 시찰할 당시 우스갯소리로 “우육면이 있어서 란저우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말했다.

란저우 우육면의 원조는 약 100년 전 청나라 말기 회족 마바오쯔(馬保子)가 만든 국수다. 면발을 뽑아내 맑은 소고기 육수에 넣고 고추기름, 고수, 풋마늘 등을 첨가한 게 란저우 우육면의 시작이다.

특히 밀가루 반죽에 봉회수(蓬灰水, 알칼리성의 봉봉초를 태운 재를 물에 희석시킨 액체, 주요 성분은 탄산칼슘)를 첨가해 면발의 탄력을 더하고 국물은 맑게 유지하는 비법으로 유명하다. 2021년 6월, 란저우 우육면 제조기술은 중국 국무원의 제5차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면발만 9종···육수와 국수에 담긴 '비법'

란저우 우육면 제조 계승자 마원빈이 수타면 뽑기를 시연하고 있다. [사진=배인선 기자]

최근 란저우 현지에서 유명하다는 우육면 노포 '진딩(金鼎)우육면' 식당을 찾았다. '마쯔루(馬子祿)'와 함께 란저우 우육면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노포다. 1991년 란저우 현지 우육면 노포인 란칭거(蘭淸閣), 훙빈러우(鴻賓樓) 등을 통합해 중국 제1호 란저우 우육면 체인기업으로 거듭 났다. 란저우 우육면 시조, 마바오쯔의 4대 계승자 마원빈(馬文斌) 장인이 직접 면발을 뽑아내는 식당으로도 유명하다. 

‘란저우 제일면(第一面)’이라는 간판이 붙은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때마침 점심 식사 때라 홀엔 손님들로 꽉 차 있다. 테이블에 앉아 란저우 우육면을 주문하려는 데 국수 종류만 9가지에 달한다. 

0.5㎜ 지름의 실처럼 얇은 마오시(毛细)부터 1㎜ 시몐(细面), 2㎜  싼시(三细), 3㎜  얼시(二细)까지 지름도 다양하다. 8㎜ 지름의 두꺼운 원통면 얼주쯔(二柱子), 삼각면 제마이링(蕎麥棱), 5㎜ 너비·1㎜ 두께의 부춧잎 모양면 주예(韭葉), 1.5㎝ 너비의 두꺼운 납작면 다콴(大寬), 1.5㎝ 너비의 얇은 납작면 바오콴(薄寬)도 있다. 

가장 잘 팔리는 면발은 너무 얇지도, 굵지도 않은 시몐·얼시·싼시, 혹은 주예라고 종업원은 말했다.  

주문을 받자마자 현장에서 즉석으로 손님이 원하는 면을 뽑아 국물과 고명을 더해 내어준다. 때마침 이날 란저우 우육면 계승자 마원빈 장인이 직접 손님들 앞에서 수타면 뽑기를 선보였다. 4종의 면발을 뽑아내는 데 각각 걸리는 시간은 10~20초 남짓.

그렇게 2~3분 만에 내어온 우육면은 그야말로 '일청이백삼녹사홍오황(一清二白三绿四红五黄)'이다. 맑은 탕, 하얀 무 조각, 초록빛 고수와 풋마늘, 붉은 고추기름, 노란 면발로 이뤄진 란저우 우육면을 표현하는 글귀다.
 
'란저우 라면집' 우후죽순···잃어가는 전통의 맛
가격은 한 그릇에 약 10위안(약 1900원). 여기에 고기·계란 등 고명을 추가하면 20위안대 남짓. 서민들이 아침 한 끼 때우기에 안성맞춤이다.

2007년에는 시내 가게 수백여곳의 란저우 우육면 가격이 갑작스레 올라서 서민들이 분노했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1그릇당 2.5위안이던 가격이 하루 새 3위안으로 뛰자 란저우가 발칵 뒤집히고 란저우시 물가국 전화통에 불이 났다. 우육면을 아침으로 먹는 란저우 시민들에게 우육면 가격 인상은 마치 버스요금이나 공과금 요금 인상만큼이나 중요했던 것. 이에 란저우시 정부는 '란저우라면 가격 제한령'까지 내리고 이를 어긴 식당을 적발했던 적도 있다. 

오늘날 란저우 우육면은 란저우 시민뿐만 아니라 14억 중국인이 즐겨 먹는 '국민 분식'이 됐다. 란저우 우육면 식당만 전국 각지 50만곳에 달해 연간 4000억 위안(약 75조5000억원)어치씩 팔리고 있다. 천샹구이(陳香貴), 마지융(馬記永), 장라라(張拉拉) 같은 우육면 패스트푸드 체인점도 생겨났다. 

하지만 최근 들어 란저우 우육면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식당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만 정작 란저우 현지 고유의 맛을 재현할 수 있는 맛집을 찾기는 어렵게 된 것. 중국인들은 란저우 우육면 가격은 예전보다 올랐지만 양은 줄고 고기 두께는 더 얇아졌다며 불만을 호소하기도 한다. 
 
양저우 볶음밥법, 윈난 쌀국수법도···
간쑤성 정부가 최근 ‘란저우라면법’ 입법까지 추진하고 나선 배경이다. 

간쑤성 정부는 란저우 우육면은 아직 통일된 우육면 품질·기술·표준 시스템이 없는 데다가, 생산·가공·운영·서비스 측면에서 법적 보장이 부족하다며 우육면 산업의 규모화·표준화·브랜드화 발전을 위해 이번 입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란저우우육면 협회는 이미 2018년 '란저우 우육면 경영규범표준'을 발표하기도 했다. 여기엔 육수와 물의 비율은 1대2를 초과해선 안되며, 란저우 이외 지역의 모든 가게에는 '란저우 우육면'이라고 표시해야 한다는 등의 규정이 담겼지만 협회 차원의 표준인 만큼 법적 구속력은 없었다. 

사실 란저우 우육면뿐만이 아니다. 최근 전국 각 지방정부에서는 현지 먹거리 산업 발전을 위해 란저우 우육면법 같은 입법을 추진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톈진시는 길거리 음식 '젠빙궈쯔(煎餠果子, 전병)'의 표준 규격을 제정해 녹두나 좁쌀을 주원료로 하고, 전병을 펼쳤을 때 지름은 38~45㎝ 크기로 맞추고, 포장지에는 판매자명과 전화번호 등을 표시하도록 요구했다. 

장쑤성 양저우도 '양저우 볶음밥' 표준을 마련해 멥쌀·달걀 서너 알을 주재료로 하고, 해삼·닭고기·새우·죽순·표고버섯 등을 부재료로 넣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윈난성 정부가 제정한 '궈차오미셴(過橋米線, 쌀국수)' 규범에는 지름 22㎝ 이상 크기의 자기 그릇에 담고, 2㎜ 두께 이하의 생고기가 들어가야 한다는 등의 조항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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