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거래대금 활성화로 증권사들의 실적개선을 이끌었던 위탁매매 수수료는 한계에 봉착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업황 회복 여부가 실적 반등의 트리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15일 자기자본 상위 증권사 10곳의 올 1분기 영업이익(잠정 포함)은 2조22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2조3769억원보다 6.6%(1569억원) 줄어든 수준이다. 연초 IB부문이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부동산 PF 업황의 우려가 확대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특히 금융당국의 압박으로 인해 부동산PF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높은 증권사일수록 충당금 부담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충당금은 차기 이후 지출할 것이 확실한 특정비용에 대비해 각 기간 대차대조표 부채항목에 미리 계상하는 금액을 가리킨다. 통상 일회성 비용으로 회계처리되지만 정책에 따라 추가적으로 적립해야 되는 경우도 생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부동산PF 정상화 방안을 내놓으며 증권사를 포함한 금융권은 해당 충당금 적립이 급선무로 떠올랐다”며 “증권사 실적도 충당금 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상적 이익환경 개선·PF 비용 절감
대형 증권사 중 한국투자증권은 349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1위를 기록했다. 한투증권은 전년(3014억원)보다 16.03% 증가하며 수익성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위탁매매와 IB 수수료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한투증권의 올 1분기 위탁매매 수수료는 881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27.31% 증가했다. 기업금융 수수료로는 1644억원을 벌어들이며 같은 기간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주요 증권사 중 가장 큰 규모로 파악됐다.
이어 키움증권 3377억원, 삼성증권 3316억원, NH투자증권 2769억원, KB증권 2515억원, 미래에셋증권 2490억원, 메리츠증권 1557억원, 하나증권 1090억원, 신한투자증권 859억원, 대신증권 730억원 등으로 집계됐다.
대신증권은 올 1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 33.94% 늘어나며 이들 증권사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리테일, 트레이딩(상품운용), IB 등 다양한 부문에서 양호한 성과를 거뒀다. 자기자본 확충에 따라 사업 규모 자체가 커진 것도 영업활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작년 충당금을 지속적으로 적립하며 올 들어 충당금 부담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지난해 세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던 하나증권은 전년동기 대비 12.72%(123억원) 증가해 영업이익이 1000억원대까지 회복됐다. 채권발행시장(DCM), 주식발행시장(ECM) 등 전통 IB분야에서 활약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나증권의 올 1분기 회사채 발행실적은 1조2970억원을 기록했으며 전년동기(7920억원)보다 63.9% 늘었다.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에이피알, 포스뱅크 등을 대표주관하고 대어급으로 거론된 HD현대마린솔루션 공동주관사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NH투자증권도 같은 기간 10.1%(254억원) 늘어 긍정적인 개선폭을 나타냈다. 위탁매매 수익이 호조를 보이고, ECM과 DCM 등에서 실적이 크게 증가했다. 또한 PF 채무보증 수수료 하락폭도 제한됐다. 대손상각비는 전분기 대비 70.9% 큰 폭 감소한 반면 168억원 규모의 대손충당금이 환입되며 실적개선에 도움을 줬다.
김재철 키움증권 연구원은 “경상적 이익 성장을 위한 영업환경은 개선되고 있다”며 “평가손실 및 충당금으로 인한 비용은 상당 부문 작년에 반영했기에 충분한 비용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IB·운용부문 실적 부진에 아쉬움
키움증권의 경우 영업이익이 두 번째로 높았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17%(512억원) 줄었다. IB 부문이 크게 성장한 반면 운용부문이 부진해 수익성이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IB 수수료는 544억원으로 전년동기(245억원)보다 2배 이상 늘었지만 규모 자체가 적었고, 운용부문은 945억원으로 같은 기간 34.28%(493억원) 감소했다.다만 증권가에서는 키움증권에 대해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도형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향후 3년간 별도 기준 평균 ROE 15%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는 리테일에서의 연간 6000억원 이상 수익을 기반으로 한다”며 “나머지 부문에서는 ROA 기준 6% 이상의 수익률을 설정했으며 저수익 자산 수익률 제고 노력이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메리츠증권은 올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동기 대비 35.04%(840억원) 급감하는 등 주요 증권사 중 감소폭이 가장 컸다. 부동산PF 업황이 위축된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다. 다만 당기순이익은 1265억원으로 2018년 1분기 이후 25분기 연속 1000억원 이상 달성 기록은 이어갔다.
메리츠증권은 PF를 제외한 브로커리지, 금융수지, 트레이딩 부문에서 기대보다 양호한 수익을 거뒀다고 판단했다.
회사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 침체에 따른 영업환경 악화가 지속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시장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준수한 실적을 달성했다”며 “어려운 시장환경에 맞서 더욱 보수적인 리스크 관리 및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창출에 집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한투자증권도 전년동기 대비 32.47%(413억원) 감소해 영업이익이 900억원 미만으로 내려앉았다. 당기순이익도 757억원에 그쳤다. 수익성이 악화된 원인은 자기매매 부문에서 부진했기 때문이다. 자기매매는 증권사가 보유한 고유자금으로 유가증권을 매매해 수익을 얻는 것을 가리킨다.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주식시장 활성화로 증권거래 수수료가 늘었지만 자기매매손익이 감소해 전체 이익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영업이익이 전년동기 대비 20.47%(641억원) 줄어들었다. 위탁매매 수수료 등 리테일 분야에서는 선전했지만 IB 및 운용부문에서 아쉬움을 보였다. IB 수수료는 445억원으로 같은 기간 28.8%(180억원), 운용부문은 3034억원으로 15.44%(554억원) 감소했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글로벌 경제 및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며 “지속가능한 수익 다변화를 위해 글로벌 사업 추진 전략을 구체적으로 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증권과 KB증권도 영업이익이 전년동기 대비 각각 2.93%(100억원), 4.12%(108억원) 감소했지만 선방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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