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야구만 한 학생들 …정치화하는 언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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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입력 2024-08-3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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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토국제고 고시엔 우승을 바라보는 일본 사회의 복잡한 시선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일본에서 여름이라고 하면 떠오는 것 중 하나로 ‘고시엔(甲子園)’이 있다. 고시엔은 효고현(兵庫県)에 위치한 구장의 이름인데, 이곳에서 열리는 고교야구 전국대회를 보통 고시엔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꼭 프로를 목표로 하지 않아도 좋아하기만 하면 중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야구 선수가 될 수 있다. 야구는 워낙 인기 스포츠이기도 해서 대부분 고등학교에 야구부가 있고, 많은 고등학생이 소속된다. 일본고등학교야구연맹(고야연)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전국 4,702개 고등학교 중 3,798개 학교, 127,031명의 학생이 고등학교에서 야구를 하고 있다. 그 많은 학생들의 정점을 결정하는 최대의 전국 대회가 바로 고시엔이다. 야구를 하는 아이들에게 고시엔은 꿈의 무대이자 성지다.

고시엔 구장은 프로야구 한신타이거스(阪神Tigers) 본거지이지만, 매년 여름은 고교 야구의 성지로서 전국 대회의 무대가 된다. 일본의 지자체 47개 도도부현(都道府県)의 지방 대회를 이긴 각 지역 대표 49개교(도쿄도와 홋카이도만 2개 교씩)를 대상으로 매년 8월에 토너먼트 대회가 개최되어 고교야구의 정점을 겨룬다. 다른 스포츠에서도 당연히 전국 1위를 가리는 대회가 있지만, 이 고시엔이 특별하다는 것은 전국대회 모든 경기가 NHK에서 생중계된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널리 시청한다는 이야기다. 평소에는 야구를 안 보는 사람도 자신의 지역을 대표하는 고등학교를 응원하기 위해 마음먹고 TV로 관전한다.

어떤 의미에서 고시엔은 범국민 규모의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야구가 아닌 고시엔의 팬이라는 사람이 있을 정도고, 올림픽처럼 많은 사람들이 TV 앞에서 지켜보고, 혹은 그 고등학교와 관계가 없어도 직접 구장을 찾아 응원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청춘을 걸고 3년간 연습해 온 고교생들의 열정적 플레이와 사소한 흐름에 승패가 좌우돼 극적인 경기 전개를 많이 볼 수 있는 학생 스포츠만의 묘미가 매력인 셈이다. 패배한 학교의 선수가 눈물을 흘리며 성지 고시엔의 흙을 손으로 퍼서 가져가는 장면은 익숙한 감동 포인트이기도 하다.

이렇게 일본에서 사회적 주목도가 높은 고시엔에서 올해 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京都国際)고등학교가 우승을 했다. 일본에서는 이 소식이 신문 호외로 배포되거나 TV 속보로 자막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우승이 확정된 지 몇 시간 후 자신의 SNS에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고시엔 결승전 구장에 힘차게 울려 퍼졌습니다. 교토 국제고의 고시엔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열악한 여건에서 이뤄낸 기적 같은 쾌거는 재일동포들에게 자긍심과 용기를 안겨주었습니다. 야구를 통해 한일 양국이 더욱 가까워졌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투고한 것이 보도되어 한국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한국 언론은 “한국계 교토국제고, 日고시엔 첫 우승 ‘기적’... 결승서 2-1 승리”(연합뉴스), “‘한국계’ 교토국제고, 창단 25년 만에 기적의 우승”(아주경제), “한국이 세운 학교서 일본 선수들 일냈다... ‘고시엔 신화’”(조선일보), “‘한국계’ 교토국제고, 고시엔 첫 우승... “동해 바다” 교가 울려...”(경향신문) 등으로 보도하였고, 일본 미디어도 한국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된 사실을 다루기도 했다.

나도 개인적으로는 이 쾌거를 매우 기쁜 마음으로 들었다. 한일관계, 특히 재일교포를 둘러싼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 온 한 사람으로서 일본 역사에 남을 큰 뉴스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뉴스를 그저 기뻐만 하기에는 답답한 감정도 존재했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교토국제고 우승을 계기로 분출된 일본사회의 ‘혐한’이었다. 교토국제고의 교가는 한국어다. 고시엔에서는 경기 종료 후, 승리한 학교의 교가를 듣게 되어 있고, TV 중계에서는 그 가사가 자막으로 나온다. 일본 전국에 방송되는 NHK를 통해 한국어 교가가 불리고, 한글 가사가 화면에 뜬다는 것은 특별하다.

그러나 이를 혐오하는 사람들도 있다. SNS에는 “역시 한국어 교가는 불쾌하다”, “교토국제고의 고야연 제명을 요구한다” 등의 투고가 이어져 교토국제고가 위치한 교토부의 지사가 “인터넷상에서 민족차별이라고 보여지는 악질적인 투고가 다수 있었다”며, 그중에서도 특히 악질적인 4건에 대해 교토지방법무국이나 웹사이트 운영자에 대해 삭제를 요청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한편으로는 “혐오의 화살을 그들에게 돌리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 순순히 우승을 축하한다고 말할 수 없는가”라든가 “고시엔 결승까지 싸워낸 선수들의 얼굴을 봐라” 등 차별적인 투고에 반대하는 투고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헤이트 스피치와 그것을 둘러싼 논쟁이 퍼질 것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사실 교토국제고 야구부 선수들 대부분은 일본인이라고 한다. 어떤 인터뷰에서 이 팀의 주장은 한국어 교가에 대해 “세상에는 많은 생각이 있다. 나도 솔직히 괜찮을까 생각할 때도 있다. 비판받는 것에 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야구를 위해 이 고등학교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런 비판은) 우리에게 하는 말인 것 같기도 해서 힘들 때가 있다” 등의 이야기를 했는데, 고등학생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게 만든 일본사회의 문제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교토국제고와 같은 학교가 일본사회에서 주목받는 것은 좋은 일인 반면, 눈에 띄었다는 이유로 정면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유감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한편, 교가의 가사가 한국이나 재일동포 사이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교가는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라고 시작한다. NHK 생중계에서 교가와 함께 가사가 자막으로 나오는데, 교토국제고의 경우 자막으로 한글과 그 의미를 담은 일본어가 병기되었다. 이때 일각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 “동해 바다” 부분인데, 일본어 자막에는 “동쪽 바다(東の海)”로만 표기됐고, 또 “한국의 학원”이라는 가사도 일본어로는 “한일의 배움터(韓日の学び舎)”로 표기됐다. 이에 가사 왜곡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는데, 사실 가사의 일본어 번역은 학교 측에서 제공한 것으로 일본사회의 혐한으로부터 학생들을 지키기 위한 배려라는 해석도 있다.

두 번째로 교토국제고의 쾌거를 둘러싼 민족주의적 반응에 대한 위화감을 이야기하고 싶다. 앞서 본 것처럼 한국 언론에서는 교토국제고를 “한국계”라고 부르며 “한국이 세운 학교”라는 표현까지 했지만, 나는 일본에 있는 한국학교에 대해 사람들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일본에는 6개의 한국학교가 있다. 한국 정부가 재일동포 민족단체로 인정한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운영하는 학교로는 교토국제학원 외에 도쿄한국학교, 건국학교, 금강학원이 있고, 비교적 최근에 창립된 코리아국제학원, 청구학원 쓰쿠바 학교가 있다. 이들 모두 한반도 출신자들의 민족교육을 부정해 온 일본사회에서 재일동포들이 자녀를 위해 창립한 학교들이다. 이 중 ‘각종학교’로 분류된 도쿄한국학교와 코리아국제학원을 제외한 4개 학교는 일본 정부교육부(문부과학성)의 기준인 일본 학교교육법 제1조에 따른 인가를 받은 이른바 ‘1조교’다.

교토국제고는 1947년 창립된 교토조선중학교를 전신으로 한다. 당시에는 대한민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성립되기 이전이었고, 식민지 시기를 통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조선인, 즉 지금의 재일동포들이 해방 후 필요로 했던 민족교육의 장이었다. 이후 일본 정부의 탄압과 사회적 차별도 있어 학교가 폐쇄되는 등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은 쉽지 않았다. 교토조선중학교는 한국 정부의 인가를 받아 교토한국학교로 명맥을 유지했으나 학생수 감소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동안 얻지 못했던 일본 정부의 인가를 받아 ‘한국’이라는 표현을 ‘국제’로 바꾸고 2003년 교토국제학교로 재출범했다.

소수민족의 존재나 민족교육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사회에서 교토한국학교가 존속의 위기에 놓였던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내부에서도 여러 갈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존속을 도모하기 위해 일본인 학생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1조교로 전환하고, 학교명에서 ‘한국’을 제외해 지금의 교토국제학교로 이르렀다. 그래도 한국어 교가는 남기면서 일본어 번역에서는 “동해” 표현에 구애받지 않는 방향을 선택했고, 야구부 강화도 학교 존속의 한 수단이었다고 한다. 보도에 의하면 160명 가까이 되는 중고교 총 재학생의 70%가 일본인이고, 남학생의 대부분이 야구부에 소속된 특수한 학교이기도 하다. 수업에서 한국어도 배우지만 야구부가 경기에서 이겨도 한국어 교가를 부르지 못하거나 부르지 않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스포츠잡지 ‘Number’의 기사에 따르면 야구부 스카우트 담당자와 감독은 우승 후 인터뷰에서 한국어 교가에 대해 “지금 시대에는 레게 교가도 있을 정도인데 K-POP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윤석열 대통령이 우승을 축하한 것에 대해서는 “저는 정말 한국과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몰라서요. 나는 일본의 학교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라고 곤혹스러운 얼굴로 답했다고 한다.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우승을 한국 학교의 자랑이라거나 한일 우호의 징표 같은 것으로 간주하는 보도와는 온도차를 느낀다.

일본에서 민족학교로는 한국학교 외에 조선학교가 있다. 대학교를 포함해 64개교가 있다고 하는데, 조선학교는 북한과 관계 깊은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에 의해 운영된다. 모두 1조교에 해당하지 않는 ‘각종학교’로, 한국학교와 구별되지만 원래는 해방 후 민족교육의 필요성을 느낀 재일동포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민족교육의 장이라는 점에서 그 뿌리는 같다. 1950년대 이후, 일본사회에서 항상 차별의 대상이었던 한반도 출신자들이 민족교육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 것은 한국 정부가 아니라 당시 북한 정부였다. 그 결과 재일동포의 민족교육은 대부분 조선학교에 의해 뒷받침되어 왔다.

그러나 그 조선학교에 의한 민족교육 또한 위기를 맞고 있다. 일본정부가 조선학교를 고교 무상화 정책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학교 운영이 어려움에 놓였고, 학생수 또한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한국학교는 한국계라는 점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지만 이것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동포와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이주, 혹은 단기적으로 주재하는 재일동포 가족 사이에는 민족학교 역할에 대한 인식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어쨌든 순수하게 야구에 몰두하고 꿈을 이룬 학생들을 두고 국가나 민족만 강조하는 언론의 보도 방식에 나는 별로 공감할 수 없다. 물론 애초에 스포츠가 민족의식을 고양시키고 국민통합의 도구로 활용되기 쉬우며,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일희일비하는 엔터테인먼트로서 매력을 가진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순수하게 야구를 좋아하는 고교생들이 청춘을 바쳐 몰입하는 모습이 상업적으로 소비되는 것과 이들에게 민족과 국가를 투영시켜 어른들의 사정으로 부담을 주는 것에 대한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최근 열린 파리올림픽에서도 한반도에 뿌리를 둔 재일동포들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눈에 보이는 형태로 활약한 재일동포는 ‘한국의 자랑’, ‘민족의 자존심’으로 주목받으며 인기를 얻지만, 그 관심이 오래가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일본정부의 차별적인 정책, 일본사회의 혐한과 무관심에 노출된 재일동포의 실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2002년경부터 일본사회에서는 북한에 의한 납치문제와 핵문제, 한일관계 악화 등으로 재일동포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

내년이면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는다. 1965년에 맺어진 한일기본조약과 그 부속협정에 따라 재일동포의 법적지위가 정해졌지만 국가 논리에 의해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를 받아들일 수 없어 어느 국적도 선택하지 않고, 외국인 등록상의 표기로 일찍이 한반도를 의미하는 ‘조선’을 선택한 경우인데, 이들이 일본에서 합법적인 영주자격이 인정되지 않았던 ‘조선적’ 재일동포들이다. 이후 1990년대에 조선적을 가진 이들도 일본에서 영주자격이 인정되었지만, 한국정부는 아직도 그들을 외면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아이들 교육에 정치를 끌고 와 민족교육의 장이라는 점에서 한국학교와 다를 것 없는 조선학교를 구별하고, 차별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를 지지해서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여권을 가지려고 필요에 의해 한국 국적을 택한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상 실리적 선택으로 일본 국적을 취득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국적이란 결코 당사자의 정치적 성향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우승 소식을 접하면서 스포츠는 스포츠로서 순수하게 보면 된다고 생각하는 한편, 재일동포를 둘러싼 환경이 지극히 정치적이기에 그들을 억압하고 있는 현재 일본사회 상황에 대해 둔감해서는 안 된다고도 생각한다. 한국어 교가가 고시엔에 울려퍼진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것에 비해 그들이 일본사회에서 안고 온 차별과 갈등에 대해서는 과연 얼마나 관심을 기울여 왔는지 묻고 싶어진다.




필자 주요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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