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 (32) 베트남 권력 '빅4' …'대나무 외교'는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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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단국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입력 2024-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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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단국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이한우 단국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새 최고위 지도부 구성과 권력 경쟁
 
베트남 국회가 지난 10월 21일 르엉끄엉(Luong Cuong) 공산당 비서국 상임비서를 국가주석으로 선임하며 새 최고위 지도부 구성을 마쳤다. 그간 또럼 공산당 총비서(서기장)가 국가주석을 겸직해왔는데, 이번에 두 직위를 분리하며 최고위 지도부 ‘네 기둥’이 진용을 갖추게 됐다. 베트남 최고위 지도부는 또럼 공산당 총비서, 르엉끄엉 국가주석, 팜민찐 총리, 쩐타인먼 국회의장으로 구성됐다. 서열 5위인 공산당 비서국 상임비서는 10월 25일에 쩐껌뚜 공산당 중앙감찰위원회 주임이 맡게 됐다. 지난 8월에는 응우옌호아빈 최고인민법원장(대법원장), 부이타인선 외교부장관, 호득퍽 재정부장관이 새로 부총리로 임명됐다. 부이타인선과 호득퍽은 장관도 겸직하고 있다. 쩐홍하 전 자원환경부장관이 2023년 1월부터, 레타인롱 전 법무부장관이 올해 6월부터 부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 인사로 베트남 정부는 5명의 부총리 진용을 갖췄다. 이로써 2023-24년간 베트남의 정치적 격변은 일단락됐다. 베트남은 2021-26년간 임기에 네 명의 국가주석을 둔 격변의 시기를 겪었다. 일부 평자들은 이로써 베트남 정치가 안정권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베트남 정치는 2026년 초 예정인 제14차 공산당대회 때까지 현 상태를 유지하더라도 물밑에서 요동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현 최고위 지도부 구성은 겉으로 보면 공안과 군부 간 타협의 산물로 보인다. 베트남에서 공안은 경찰과 정보 기능을 총괄하는 기관으로서 군부와 함께 막강한 권력기관이다. 두 부문은 경쟁과 협력관계 하에 있다. 두 부문 간 경쟁뿐만 아니라 각 부문 내 권력 경쟁도 도외시할 수 없다. 현재 공안 출신인 또럼과 팜민찐 간, 군부 출신인 르엉끄엉과 판반장 국방부장관 간 경쟁이다. 1958년생 팜민찐은 1957년생 또럼보다 먼저 총리직에 올랐다. 그보다 늦게 또럼이 올해 5월 공안부장관에서 국가주석으로 승진하고 응우옌푸쫑 공산당 총비서의 사망에 따라 8월에 총비서를 겸직하게 됐다. 한편 2016년부터 1960년생 팜반장 현 국방부장관이 군 총참모장 겸 국방부차관, 1957년생 르엉끄엉이 군 정치총국 주임 겸 국방부차관을 맡고 있었다. 판반장이 2021년에 국방부장관으로 선임되며 르엉끄엉보다 먼저 상위 직급으로 승진했다. 르엉끄엉이 올해 5월에 서열 5위의 당 비서국 상임비서로 선임돼 판반장보다 상위에 올랐고 최근 10월에 국가주석으로 선임된 것이다. 공안과 군부 내 네 명의 최고지도자 가운데 연장자 두 명의 승진이 늦었지만, 최근의 승진으로 이제 연장자순으로 서열이 정비됐다. 또럼과 르엉끄엉은 2019년 1월에 각각 공안과 군에서 대장으로 함께 승진한 인연도 갖고 있다.

최고 권력자인 또럼 공산당 총비서는 새 최고위 지도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벌였다. 주요 직위에 공안부 출신 인사들을 배치한 것이다. 또럼이 올해 5월 국가주석으로 선임되면서, 장관직을 겸직하려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6월에 르엉땀꽝 공안부차관에게 장관직을 물려줬다. 르엉땀꽝은 8월에 공산당 정치국 위원으로 선임돼 최고 지도부 대열에 합류했고 10월에 대장으로 승진했다. 올해 6월에는 응우옌주이응옥 공안부차관이 공산당 중앙사무처장으로 선임됐고 8월에 당 비서국 비서로 임명됐다. 당시 공산당 비서국 상임비서였던 르엉끄엉의 직속 하위 직위에 오른 것이다. 또럼, 르엉땀꽝, 응우옌주이응옥은 모두 하노이 인근의 흥옌성 출신이다. 르엉땀꽝이 1965년생, 응우옌주이응옥이 1964년생으로, 이들은 2026년 초 열릴 예정인 제14차 공산당대회 때 61, 62세에 달하기에 차기 최고위 지도자 후보로서 주목해야 할 인사들이다.

또럼의 권력 강화에도 불구하고 그가 응우옌푸쫑 전임 총비서만큼 국가를 대표하는 역할을 수행할지는 의문이다. 베트남에서 국가의 대표는 국가주석이 수행하곤 했는데, 응우옌푸쫑 총비서는 올해 9월 보반트엉 국가주석이 재직하고 있던 시기에도 바이든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시 국가수반으로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르엉끄엉을 국가주석으로 선임하면서 또럼 총비서는 전통적 총비서 역할로 돌아갈 듯하다.
 
 
취임 선서하는 르엉끄엉 신임 국가주석 사진베트남통신사
[취임 선서하는 르엉끄엉 신임 국가주석. 사진=베트남통신사]

 
차기 최고위 지도자 후보군

2026년 초 제14차 공산당대회에서 누가 공산당 총비서로 선임될지 지금 예상하기 어렵지만,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볼 수 있다. 또럼이 제13기 공산당 중앙집행위원회 회기 중간인 올해 8월에 총비서로 선임됐기에 차기 공산당대회까지 임기를 채운다면 약 1년 6개월간 총비서직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르엉끄엉도 1년 반 정도의 단기간에 국가주석직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이 정도로 최고위 권력 행사 후 은퇴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듯하다. 팜민찐 총리의 도전 가능성도 있지만 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또럼과 르엉끄엉이 차기 총비서 후보로 되기 위한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서는 또럼이 상대적으로 유리해 보인다. 또럼 현 총비서가 차기 인사소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현재 공산당 정치국 위원 15명 중 6명이 공안 출신, 3명이 군부 출신으로, 정치국 내 공안 부문이 우위에 있다. 단지 정수 200명으로 구성된 제13기 공산당 중앙집행위원회 출범 시 공안 출신자는 군부 출신자보다 적었다. 제13기 중앙집행위원회 위원 중 공안 출신자는 6명, 군부 출신자는 23명이었다. 공산당 중앙집행위원회가 정치국 위원을 선출하고 총비서를 선임하기에, 차기 중앙집행위원회의 부문별 구성은 차기 최고위 지도자 선임과정에 의미 있게 작용할 것이다. 한편 또럼, 르엉끄엉, 팜민찐은 모두 2026년 초에 65세를 넘긴 상태가 된다. 공산당 총비서를 포함한 정치국 위원이 되기 위한 나이는 65세 이하여야 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응우옌푸쫑 전임 총비서가 65세를 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 승인’을 얻어 두 차례나 총비서로 선임된 적이 있다. 따라서 앞으로도 나이 제한으로 인해 총비서 후보로 나서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들 중 한두 명이 최고위 ‘네 기둥’ 직위를 지속한다면 최고위 지도부의 세대교체는 지체될 것이다. 이 최고위 지도자 4인이 차기 총비서 선임에 합의하지 못해 동반 퇴진하는 일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이들보다 젊은 세대 인사가 후보로 나설 가능성도 있다. 현 정치국 위원들 가운데 2026년 초에 65세 이하인 위원은 전체 15명 중 7명이다.


또럼 총비서의 ‘대나무 외교’ 계승

또럼 총비서 취임 이후에도 베트남의 대외관계는 비교적 순조롭게 전개됐다. 베트남이 개혁을 선포한 이후 곧 채택한 ‘다변화, 다양화’ 외교는 세계정치 무대에서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해 왔다. 베트남은 개혁 이전에 진영 외교에 기반하여 자본주의권에 대한 사회주의권의 승리를 대외정책의 기반으로 삼았었다. 베트남은 개혁 이후에 여전히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진영 외교를 일찍이 폐기했고 1990년대 초부터 다변화 외교를 실천해왔다. 응우옌푸쫑 전임 총비서는 이를 ‘대나무 외교’라고 하며 강조했다.

또럼 총비서 시기에도 이 기조는 유지되고 있다. 또럼 공안부장관이 올해 5월에 국가주석으로, 8월 3일에 총비서로 선임됐는데, 10월 21일 르엉끄엉 국가주석을 선임하기까지 총비서와 국가주석을 겸직하고 있었다. 그는 이 겸직 기간에 중국과 미국을 방문하면서 외교무대에 등단했다. 또럼은 공산당 총비서로 선임된 지 보름 만에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회담했다. 두 지도자는 양국이 사회주의 형제이며 주요 외교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국은 베트남과 ‘운명공동체’라고 주장하지만, 베트남은 중국과 ‘미래공유 공동체’라고 고집한다. 또럼은 9월 25일에 유엔 연차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해 뉴욕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했다. 두 지도자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양국은 지난해 9월 양자 관계를 포괄적 동반자 관계에서 두 단계를 뛰어넘어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었다. 바이든은 남중국해에서 평화‧안정‧협력을 지속하기 위해 베트남과 긴밀히 협력하고 싶다고 했고, 또럼은 베트남이 독립, 자주, 다변화 외교를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또럼은 미국 방문에 이어 쿠바를 방문하여 전통적 우호 관계를 확고히 했다. 그는 이후 10월 6-7일에 프랑코포니 정상회의 참석차 프랑스를 방문하여 마크롱 대통령과 회담하고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이로써 프랑스는 유럽 국가 중 최초로 베트남의 최고위 수준 양자 관계국이 됐다. 이런 일련의 정상 외교는 또럼 총비서 겸 국가주석 개인의 사고에 기반한 성과라기보다 공산당 중앙대외위원회, 외교부 등 베트남 대외정책 집행기관의 집단적 사고의 산물이라고 봐야겠다.

베트남의 대외관계에서 제약도 여전히 있다. 베트남은 남중국해의 해상영유권을 둘러싼 갈등 상황에서 중국의 도발에 대응하는 데 적절한 방안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 중국이 아세안 및 베트남과 남중국해의 행동준칙을 마련하자고 해놓고 합의는 지체되고 있다. 미국은 최근 또럼 총비서 겸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 시장경제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처럼 베트남의 외교는 그 한계도 있으나 국익에 기반한 실용주의 면모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필자 주요 약력
서강대 정치학박사, 서강대 동아연구소 및 대학원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 역임, 한국-베트남 현인그룹 위원 역임. 현 단국대 아시아중동학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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