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강력해진 '트럼프 2.0'시대가 도래하면서 한국 자동차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도널드 트럼프가 과거 집권기에 보여줬던 보호 무역주의와 대중 견제 수위가 전례 없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전기차, 타이어, 배터리 등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대미 투자를 대폭 늘려온 기업들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업계는 트럼프가 '녹색 사기'라고 지목한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폐기와 수입차 관세 폭탄 등의 통상 정책이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7일 완성차 업계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가장 우려하는 정책은 △IRA 폐기 혹은 단계적 축소 △수입차 10~20% 관세 부과 △탈(脫) 중국 공급망 가속화에 따른 부품업계 파생 효과 등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자동차 수출액은 370억 달러(약 51조6500억원)로, 이 가운데 북미 시장 비중은 217억 달러(약 30조3000억원)로 전체의 약 60%에 달한다. 현대차와 기아가 올 상반기 미국에서 판매한 차량 81만7804대 가운데 친환경차는 15만5702대로, 매년 두 자릿수씩 증가하는 추세다.
IRA가 폐기되면 현대차, 기아는 내년부터 예상됐던 미국 보조금 혜택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IRA는 바이든 정부가 2022년 신설한 법안으로 핵심 광물의 50% 이상, 부품의 60% 이상을 북미 지역이나 미국 FTA 체결국에서 생산할 경우 1대당 7500달러의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IRA 조건을 맞추기 위해 막대한 재원을 투자, 각각 조지아와 앨라배마에서 전기차 전용 공장을 증설했고 내년부터 본격 가동에 돌입할 계획이었다.
미국 제조업과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수입차에 보편적 관세 10~20%를 부과하고, 특히 중국 전기차에는 60%의 관세를 부과해 완전히 고립시키겠다는 보호 무역주의도 우려 사항이다. 특히 트럼프는 중국 기업의 멕시코 생산 자동차에 대해 2000%의 관세 부과를 언급하며, 중국의 '제3국 우회'도 적극 차단하겠다는 방침을 공표한 바 있다.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은 "IRA로 인한 해외 투자유치, 일자리 창출의 혜택이 공화당 우세 지역에 대부분 위치했기 때문에 법안 폐기의 전면적 시행은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지만 향후 정책의 방향성, 중요 조항의 선택적 폐지를 통해 한국 기업에 독소 조항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있다"며 "핵심 광물이나 부품 요구사항을 통해 IRA 대상을 줄이고, 미국 기업에 유리한 보조금 요건을 신설하면서 해외 기업들의 경영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3국의 유사 조치, 중국의 맞대응 조치 등으로 통상 환경이 혼탁해지면 전기차 업체의 행정 비용이 증가하고 시장성 악화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현재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 생산 캐파는 연간 약 30만대다. 현지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생산 능력이 부족한 상황이고, 수입차에 부과되는 20%의 고관세를 버텨내기에는 아직 브랜드 경쟁력이 약한 편이다. 때문에 이럴 경우 고관세에 상응하는 판매 인센티브를 별도로 지급하면서 미국 판매량을 유지할 공산이 크다. 증권 업계에서는 이로 인한 현대차그룹의 추가부담금이 연간 7조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 중국이 60%의 관세를 피해 미국이 아닌 인도, 중동, 남미 등에서의 공세를 강화하면 국내 완성차 업체들 사이의 '제 3지대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고, 이 경우에는 부품 업체 등 전체 자동차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한국 경제 전반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자동차의 대표 후방산업인 타이어업계도 통상환경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타이어 원료의 대부분은 수입산이라 관세 부담에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또 한국타이어, 금호타이어는 각각 미국 테네시, 조지아에 생산시설을 갖췄지만 현지 수요를 감당하기 부족하고, 넥센타이어는 아직 미국 공장이 없다. 타이어 업계는 북미 전기차 수출 확대에 따라 전기차 전용 타이어 매출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인데 트럼프의 전기차 정책 축소에 따라 시장 위축이 예상돼 사업 계획 수정이 불가피하다.
강남훈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회장은 "트럼프 2기 시대를 맞아 미국의 자국 산업 우선주의, 대중국 견제 강화 움직임, IRA의 단계적 축소 혹은 폐지 등이 예상된다"면서 "관세 인상으로 수출에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에 공급망 및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다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미 정부 측에 한국 기업의 미 진출, 투자 확대를 통한 고용과 경제 기여도를 강조하고, 일본·독일 등 주요 대미 흑자국과 협력해 정책 변화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민관이 정보를 수시 공유하고 미 행정부와 의회 대상 아웃리치(적극적 소통·협력)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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