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섭 스페셜 칼럼] AI 대전환기 CES 2025가 던진 대한민국의 미래 '투트랙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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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섭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입력 2025-01-2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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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라우드 AI '추격자'…물리적 AI '선도자'

주영섭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새해 벽두 세계인의 관심 속에 세계 최대 기술 전시회 CES(소비자전자쇼)가 열렸다. 166개국 4500여 기업이 전시 업체로 참가하고, 14만1000명이 참관하며 역대 최대 성황을 이루었다. 전시 업체를 국가별로 보면 미국이 1509개로 제일 많았고 중국, 한국이 그 뒤를 따랐다. 중국은 미·중 갈등에 따라 많이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었음에도 전년 대비 20% 증가한 1339개 기업이 참가했다. 내수 부진을 수출로 만회하려는 중국 기업들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어 세계 시장에서 중국과 경쟁하고 있는 우리 기업의 분발이 요청되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1031개 기업이 전시에 나서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특히 역시 역대 최대인 641개 스타트업이 참가하여 양적으로 다른 나라를 압도하며 혁신 경쟁을 주도했다. 참관 인원 면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직전 18만여 명에 미치지 못하나 과거 대비 대폭 확대된 온라인 참관 인원과 미·중 갈등의 여파를 감안하면 이 역시 역대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기술이 기업은 물론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기술패권 시대를 맞이하여 기술 트렌드에 대한 모든 기업과 국가의 관심이 뜨거워졌다는 방증이다. 금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기술패권 전쟁의 전개 방향과 함께 미래 기술 트렌드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예측에 기반을 둔 국가적 대응 전략 수립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올해 CES 2025의 최고 화두는 단연 AI(인공지능)였다. 지난 수년간 AI는 지속적으로 CES의 핵심 기술로 제시되었으나 올해 들어 본격적 방향 정립과 함께 상품화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간 AI 일상화를 의미하는 ‘AI Everywhere’가 슬로건으로 제시해 왔다면 올해는 AI를 적용하지 않은 제품을 찾기 어려울 만큼 사실상 전 분야에서 핵심 기술로 자리 잡았다. CES 2025를 총평하며 볼거리도 적고 새로운 혁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폄하하는 일부 시각도 있으나 40년간 스무 번 이상 CES를 참관한 필자의 시각으로는 AI 대전환의 본격적 시작을 알리는 시대적 전환점이라는 의미를 가진 대단히 중요한 기술 전시회였다. 올해 CES 2025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관점은 ‘올해 전시된 AI 기술 및 제품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나 ‘지금 왜 AI인가?’ ‘무엇을 위한 AI인가?’ ‘우리의 대응 방향은 무엇인가’와 같은 전략적 관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CES의 역사적 흐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돌이켜보면 팬데믹 이전 CES는 늘 첨단 신기술 경연장이었으나 팬데믹이 끝나고 제 모습을 되찾은 CES 2023에서 대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팬데믹 위기와 함께 기후 위기가 부상하며 환경, 사회, 궁극적으로 인류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게 되자 세계인은 기술 자체에 몰입하기보다 기술의 목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즉, CES 2023에서는 기술의 목적으로서 인류의 지속 가능성 확보 등 인류를 위한 기술이 되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CES 2024는 전년에 인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개념으로 제시한 ‘모두를 위한 인류 안보(Human Security for All·HS4A)’를 기술의 목적으로 부각시키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AI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배경을 감안하면 CES 2025는 그동안 인류의 지속 가능성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제시된 AI가 개념이나 시나리오를 넘어 실제 상품으로 구현되기 시작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러한 CES의 흐름을 이해하고 보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향후 방향이 보인다. 무엇보다도 먼저 AI도 기술 자체에 집착하지 말고 AI의 활용을 의미하는 AI 대전환의 목적을 선점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시급히 개선해야 할 대목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이끈 우리의 성공 전략이었던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에 안주하여 관점이 기술 및 제품에 머물러 있다. 우리 당면 과제인 ‘선도자(First Mover)’가 되려면 먼저 기술의 목적 및 미션을 선도해야 한다. CES가 제시한 ‘모두를 위한 인류 안보’는 기술의 목적 및 미션의 훌륭한 개념이다. 즉, AI 기술 자체보다 AI 대전환의 목적을 선도하는 것이 ‘선도자’ 전략의 시작점이다. CES 2025에서 ‘어떤 AI 기술이 나왔는가’라는 관점보다 ‘AI로 어떤 목적을 구현하려 했느냐’는 관점으로 면밀히 분석하여 우리의 전략적 방향을 세계를 선도하는 목적 및 미션 중심으로 만들어야 한다. CES 2023에서 단연 스타가 된 미국 농기계 기업 존 디어가 좋은 예다. 삼성, 현대차, LG, SK 등 대기업은 물론 급신장하고 있는 스타트업 등 우리 기업이 외견상 CES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뭔가 2%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은 것도 기술의 목적을 선도하여 세계인을 감동시키는 스토리텔링과 명분 쌓기가 부족한 데 기인한다. CES 2026에서는 이를 개선하여 ‘선도자’로서 획기적 변화를 기대한다.
 
이와 동시에 CES 2025가 제시한 AI 대전환의 방향을 바탕으로 우리의 강약점을 감안하여 대한민국 AI 대전환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AI 대전환 전략은 크게 AI 도입을 통한 산업 전반의 제품 및 서비스 혁신과 오퍼레이션 및 업무 생산성 제고로 나뉜다. 제품 중심의 CES에서는 전자의 AI 대전환 전략이 중심이다. 이와 관련하여 CES 2025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의 개막 전야 기조연설이었다. GPU 신제품 발표, AI 플랫폼 전략, 개인용 슈퍼컴 예고 등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연설 중에 우리 AI 대전환 전략에서 가장 큰 시사점은 물리적(Physical) AI 분야 진출 선언이라 사료된다. 젠슨 황은 AI 발전 단계를 인식 AI, 생성 AI, 에이전트 AI, 물리적 AI 등 네 단계로 정의했다. 인식 AI는 음성, 영상 등 주변 정보를 인식하여 처리하는 AI이고, 생성 AI는 챗GPT와 같이 글, 영상, 음악, 코드 등 콘텐츠를 생성하고 이해할 수 있는 AI다. 에이전트 AI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스스로 의사 결정이나 행동을 할 수 있는 자율적 AI다. 물리적 AI란 센서 및 액추에이터를 통해 실제 물리적 세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며 상호작용하는 지능형 시스템을 말한다. AI 기반 자동차, 로봇, 드론, 항공, 선박, 기계장비, 의료기기 등이 예다. 광의로 보면 스마트폰, PC 등도 물리적 AI에 포함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주력 첨단 산업의 많은 분야가 이 영역이다. 엔비디아가 사실상 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생성 AI, 에이전트 AI를 넘어 우리 미래 산업과 직결된 물리적 AI 단계에서도 지배자가 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엔비디아의 물리적 AI 진출은 우리 주력 산업 전체의 미래가 그들의 사정권에 들게 된다는 점에서 국가적 관심과 대응이 시급한 중대 사안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엔비디아가 단순한 GPU 기반의 AI 반도체 공급사가 아니라 AI 생태계를 좌우하는 지배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젠슨 황은 기조연설에서 물리적 AI 구현을 위해 생성 AI나 에이전트 AI의 기반인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넘어 ‘코스모스(Cosmos)’라 명명한 ‘월드 파운데이션 모델(WFM)’을 제시했다. 자동차, 로봇, 드론 등에 적용될 물리적 AI는 대화형 LLM만으로는 불충분하고 각종 센서를 통해 들어오는 영상, 이미지, 소리, 온도, 압력, 위치 등 제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상황을 이해하고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한 새로운 통합적 모델이 필요하다. 여기에 자사 3D 시뮬레이션 솔루션인 ‘옴니버스(Omniverse)’를 결합하여 무제한 생성 가능한 합성 데이터로 학습시킴으로써 더 빠르고 경제적인 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오픈형 개발 생태계를 제안했다. 일견 보기에는 각종 물리 AI 시스템 개발을 지원해 주겠다는 이타적 제안처럼 들리지만 현재 생성 및 에이전트 AI 생태계를 쥐락펴락하는 영향력을 물리적 AI에서도 행사하겠다는 무시무시한 복안이다. 과거 엔비디아는 자사의 개발 플랫폼인 CUDA를 사실상 시장 표준으로 만들어 세계 개발자와 기업을 엔비디아 GPU에 종속시키는 독점적 GPU 생태계를 구축했다. 동일한 전략을 물리적 AI에도 적용하여 강력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겠다는 뜻이다.
 
우리의 대응 전략으로 유연한 투트랙 전략을 제안한다. 한편으로는 엔비디아가 제시한 물리적 AI 생태계에 참여하여 협력할 필요가 있다. 격변하는 기술 경쟁에서 글로벌 협력은 필수적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보다 중요한 방향으로 국가적 역량을 모아 엔비디아에 종속되지 않고 물리적 AI 생태계를 주도해야 한다. 엔비디아도 약점이 많다. GPU 속성상 전력 소모가 크다는 점이 한 예다. 클라우드 기반 AI와 함께 AI 대전환의 양대 축인 디바이스 기반 AI는 온디바이스(On-Device) AI에서 물리적 AI로 확대되고 있는데, 그 속성상 저전력 특성이 대단히 중요하다. GPU 기반의 엔비디아 솔루션이 클라우드 기반 AI에서는 에너지 논란 속에서도 통하고 있으나 성능에 직결되는 물리적 AI는 상황이 다르다.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다.
 
선택과 집중의 목표는 정해졌다. 엔비디아가 지배하고 있는 클라우드 기반 AI에서는 ‘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협력하고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물리적·온디바이스 AI 분야에 민관 협력으로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는 ‘선도자’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삼성, 현대차, LG, SK 그룹 등 첨단 제조 대기업과 혁신 중소·중견기업, 스타트업, 대학, 연구소가 공동의 목표를 향해 역할 분담 및 협력해야 한다. 이를 위한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협력을 통해 저전력 물리적·온디바이스 AI 반도체 개발과 함께 관련 월드 파운데이션모델, 운영체제·미들웨어·애플리케이션 등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 센서·액추에이터 등 하드웨어를 망라한 물리적 AI 생태계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 유수 기업, 대학, 연구소와 협력하는 것은 필수다. 물리적 AI의 강자 대한민국을 만들자! 우리는 할 수 있다!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전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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