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정당성을 주장하며 '부정선거 음모론'을 확산시키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통상 선거에서 패배한 진영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내세웠던 부정선거 음모론이 정도를 넘어서 우리 사회 내부를 흔드는 위험요소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21일 헌법재판소 탄핵 재판에 출석해 발언기회를 요청하고 "부정선거 주장은 음모론이 아니다"며 "계엄을 선포하기 전에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에 의문이 드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2023년 10월 국가정보원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전산시스템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발견했다면서 "선거가 부정이어서 믿을 수 없다는 음모론을 제기하는 게 아니라 팩트를 확인하라는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대표를 역임했던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비상계엄 직후 자신의 SNS에 "'대표님, 제가 검찰에 있을 때 인천지검 애들을 보내서 선관위를 싹 털려고 했는데 못 하고 나왔다'가 첫 대화 주제였던 사람이 윤 대통령"이라고 첫 만남을 회고했다.
신용한 전 윤석열 캠프 정책총괄지원실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이 극우 유튜브의 주장을 기반으로 부정선거 가능성을 강하게 믿고 있었고, 캠프 내에서 대책회의도 수차례 열었다"고 폭로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주변에 '대선에서 10~15%(포인트) 이상 이겼어야 했는데 0.73%(포인트) 차이로밖에 못 이긴 것은 이상하지 않나'라며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4월 21대 총선 이후 열린 선거들의 부정 가능성을 꾸준히 의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4·15 부정선거' 주장이다.
실제 한국 정치사를 보면 여야 할 것 없이 관권·금권 부정선거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이른바 '차떼기'로 알려진 2002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불법 대선자금 전달사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 등은 그 실체가 확인됐고 당시 검사였던 윤 대통령이 직접 수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과 그 지지층이 주목하는 '4·15 부정선거' 주장은 윤 대통령의 대선 승리 전까지 보수 진영의 선거 패배가 이어지면서 덩치를 키웠다.
구체적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중국과 협력해 부정선거를 주도했다는 주장이 윤석열 대선캠프 내부에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원장은 이번 비상계엄에서 체포·구금 대상에 포함되기도 했다.
그러나 '4·15 부정선거' 주장은 그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보수진영에서도 나온다. 보수논객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지난 17일 YTN 라디오 '신율의 뉴스정면승부'에 출연해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사전 투표 반대 운동을 했는데, 오히려 민주당에 유리한 것"이라며 "결국 좌파와 민주당 도와준 것. 결과적으로 그러면 윤 대통령에게 줄 서면 한국 보수는 재기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20일 오후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에 출연해 "진짜 명백한 증거가 나오면 저도 믿겠다. 나라를 뒤흔드는 뒤집는 일이니까"라며 "(그러나) 저 같은 사람이 믿을 만한 증거를 아직까지는 본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선관위는 윤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국정원 점검 과정에서 일부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22대 국회의원 선거 전 대부분 강화 조치를 완료했다"며 "실제 선거는 실물 투표와 공개 수작업 개표로 진행돼 조작은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반박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선거에서 패배하면 각 진영에서 지지층들을 결집시키기위해 '부정선거론'을 꺼낸다"면서 "우리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반칙을 해서 패배했다는 논리"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부정선거 주장은 지난 총선 국민의힘 대패로 다시 힘을 얻었고, 보수 유튜버의 돈벌이 수단이 되면서 더 악질적이고 끊이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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