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미국 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추운 날씨 때문에 실내에서 치러졌지만 미국 각주의 상징인 별들로 장식한 취임식장과 거칠 것 없는 트럼프의 언변과 퍼포먼스, 그리고 여러 학교의 밴드 행진 등 각종 행사는 과연 미국답구나 하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미국의 모습은 대통령이 수감되고 탄핵재판 중인 우리와 확연하게 대비되었다. 며칠 전 트럼프는 “내가 혼란스러운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한국을 보라”라는 말을 했다고 하니 우리의 자괴감은 더욱 커진다.
미국이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광활한 영토, 막대한 부를 갖고 있고 세계의 80% 결제통화인 달러화의 발권력, 그리고 최대 시장을 가지고 있다. 농산물부터 석유, 가스 등 중요 광물자원도 많고 항공, IT, 군수산업 등 제조업과 엔지니어링 등 서비스 경쟁력도 탄탄하다.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어 내는 무형의 사회적 자산도 있다.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을 꿈꾸고 몸집을 키워온 유럽도, No.2 중국도, 왕년의 거인 러시아도 미국과 대적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무리 잘 갖춘 미국이라지만 트럼프의 세계에 대한 공격적 메시지는 언제든 충격적이다. 유죄 판결을 받은 역대 최고령 당선자이고 징검다리로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두 번째 대통령인 트럼프는 취임하기도 전에 여러 발의 구두탄을 쏘았다. 취임과 동시에 수십 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하였고 관세인상 조치 등을 시행할 것이라고 공약하였다. 이런 대통령의 모습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힘들다.
트럼프의 공언이 어떻게 실현될까. 먼저, 트럼프는 위대한 미국을 만들겠다는 영토적 상상을 내비치고 있다. 안보를 구실로 러시아, 중국과의 각축장이 될 수 있는 덴마크 땅 그린랜드를 미국에 넘기라고 잽을 날렸다. 1867년 미국이 소련으로부터 사들인 알래스카나 1917년 덴마크로부터 사들인 버진 아일랜드를 떠올리고 있는지 모른다. 캐나다에게는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면 어떠냐는 농담을 하여 인기가 떨어져 있던 트뤼도 수상이 사임 발표를 하게 만들었다. 중국의 앞마당이 된 파나마 운하의 운영권을 미국이 되찾겠다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멕시코 만의 이름을 미국 만(Gulf of America)로 바꾸고 북미 최고봉인 알래스카의 디날리 산의 이름을 하와이 합방에 공이 큰 매킨리 대통령의 이름을 따 매킨리 산(Mount McKinley)로 되돌려 놓겠다고 선언하였다.
두 번째로 트럼프는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을 되찾으면서 해외 군비 지출을 줄이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벌이고 있는 소모적인 중동전의 조속한 종식을 압박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임 하루 만에 종전시키겠다고 장담하였다.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하마스에 인질로 억류되어 있는 이스라엘 가족들을 단상으로 올려 이스라엘-하마스 휴전이 자신의 공임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세 번째로 미국의 안보와 이민과 관련한 정책이다. 트럼프는 남쪽 국경지역에 대한 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불법 입국을 중단하고 불체자의 강제 송환을 예고하면서 불법체류자의 미국 출생자녀(birthchild)에게 미국 국적을 주지 않겠다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하였다. 멕시코와 캐나다가 불법 이민과 펜타닐 등 마약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서 이들 나라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2월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하였다.
넷째, 미국의 무역적자 문제 해결이다. 트럼프는 보편관세 10~20%, 중국에 대한 60%의 추가관세를 공언하여 왔다. 또 각종 자유무역협정(FTA)의 재검토, 중국이 미국상품 구매 약속을 지켜왔는지 확인하겠다고 하고 있다. 다섯째,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석유·가스 산업으로의 복귀를 천명하고 기후변화의 핵심인 파리협정의 탈퇴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하였다. 에너지 비용 상승과 막대한 지출 증가를 가져온 인플레이션 대책의 일환으로 미국의 부존이 많은 석유와 가스를 수출하고 가격을 낮추겠다고 하였다. 재생에너지 등 그린 뉴딜을 끝내고 전기차 지원제도를 폐지하여 미국의 자동차 산업과 고용을 살리겠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트럼프의 공언이 지켜질 수 있을까. 미국의 영토적 상상 중에서 멕시코 만과 디날리 산의 개명 빼놓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고 본다. 그린랜드의 획득이나 캐나다의 미국 편입은 상대방들이 있는 주권 문제로 성사되기 어려운 정치적 수사라고 본다. 전쟁 동력이 떨어진 이스라엘-하마스 휴전은 일단 발효되었다. 그러나 3년을 끌어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당사국들은 물론이고 국제역학 관계가 복잡하여 트럼프의 희망대로 단숨에 끝날 것 같지 않다. 이민, 마약 등의 문제를 가지고 미국이 만만한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해 시범 케이스로 관세 조치를 하고 있지만 이들 국가가 적절한 대안을 제시해 오면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다만, 국내 정치적인 인기와 다른 나라들에 대한 과시효과를 적절히 고려할 것이다.
우리와 관련된 무역적자 등 경제가 문제이다.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보편관세는 추진하기 어렵다. 미국과 각국이 1:1로 붙는 게임이 아닌 미국: 전 세계의 무역전쟁은 트럼프로서도 승산이 떨어지고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60% 추가 관세도 마찬가지이다. 무리한 수준인 60%보다 낮추되 트럼프 1기 때 중국이 약속한 사항,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 추진한 대중국 조치들의 이행사항을 검토하여 분야별 공격으로 수정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 대한 각종 보조금 문제 제기는 미국을 비롯, 보조금을 안주는 나라가 없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국이 전가의 보도인 환율조작, 지재권 문제 등을 걸 가능성이 있지만 결국 중국이 미국 물건을 더 많이 사주는 방향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우리 문제는 어떨까. 반도체 등 한국기업에 대한 보조금은 미리 돈을 받은 TSMC 등과의 형평성 때문에 그대로 지급될 것으로 본다. 결국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축소가 관건이다. 그간 편중되고 있던 우리의 대미 수출을 다른 지역으로 돌리면서 석유 및 가스, 군수물자, 수송장비 등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늘려 나가야 한다.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한국의 대미 투자와 미국이 조선산업 부흥에 대한 한국의 기여 가능성을 어필할 필요가 있다. 정권교체에 따라 바뀔 수 있었던 보조금을 좇아 움직인 것은 결과론이지만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그러나, 이미 진도가 나간 상황이기 때문에 지역간 생산-판매전략을 유연하게 수정하면서 대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국내외 정치적 상황을 보면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느낌이다. 과도기로서 최상목 권한대행 체제를 밀어주고 각 부처를 격려해 줄 필요가 있다. 우려했던 것보다 2기 트럼프 정책은 1기보다 합리성을 가지고 있고 예측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 말잔치가 무성한 가운데 트럼프 출범에서 얻은 교훈도 있다. 정권교체마다 시끌벅적한 정부 조직 개편이 아니라 정부효율성부(Dept of Govt Efficiency)를 신설해서 세계적 기업인인 머스크를 장관으로 임명한 점이 하나이다. 국내에서 보조금 지급에 대한 요구가 잦아들 가능성은 덤으로 얻어졌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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