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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언제부턴가 한국 경제가 처한 대내외 상황을 보면 늘 호재보다 악재가 많아 보인다. 경제 규모는 커지고 있다지만 구조적 측면에서 보면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원초적으로 대외의존도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고, 이는 수출이 경제의 젖줄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여건이 최악의 국면이라는 지적이 전혀 틀리지 않는다.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큰 틀에서 보면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트럼프발(發) 관세 포화로 확대일로에 있는 무역 전쟁이다. 다른 하나는 가성비를 장착한 중국 상품의 해외시장 기습 진출로 한국의 시장 기반의 약화 조짐이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험난해지는 대외 통상 이슈에 대응할 수 있는 국가 중심축의 붕괴다. 언제 걷힐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심화하는 중이다.
연일 터져 나오는 미국의 관세 폭탄에 대한 한국 내의 우려와 기대가 동시에 나온다. 반도체·자동차·철강·석유화학 등 우리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긴 하다. 직격탄을 맞으면 한국 제조업이나 수출에 대한 후폭풍이 일파만파가 될 것임은 매우 분명하다. 이런 걱정 속에서도 한국이 피해 나갈 수만 있다면 반사이익을 볼 수도 있다는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요행수는 없다. 미국과 협상해야 할 국가의 중심이 무너진 상태에서 어떤 결과가 만들어질지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는 분위기다. 미국 쪽은 계속 여지를 남기면서 협상 카드를 들고 올 것을 요구하고 있지마는 정부와 민간이 한 팀이 되지 못하고 따로 놀면서 삐걱거리는 모양새다.
보호무역 파고에 못지않게 우리 경제 앞에 닥친 또 하나의 큰 도전은 품질과 가격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중국산의 해외시장 공습이다. 내부의 시장 회복 지연으로 과잉 생산에 직면한 중국 기업이 내수보다 수출에 치중한다. 구조조정 당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가의 밀어내기 수출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로 인해 세계 시장 곳곳에서 한국산과 중국산이 불가피하게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산이 고전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게 보인다. 세계의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상품의 가짓수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다양하다. 해외 현지 시장에서도 홍수처럼 밀려오는 중국산에 당황한 나머지 각국 정부가 이에 대한 적색경보를 높이고 있는 것이 현상이기도 하다.
긴장의 끈 놓으면 일시에 붕괴 위기
한국·중국·일본 소비자의 행태도 사뭇 다르다. 지갑을 좀처럼 잘 열지 않는 일본 소비자들은 불가피하게 저가의 중국산 일반 소비재를 구매하고 있으나 내구재의 경우 철저하게 자국산 소비를 고집한다. 세계 시장에서 일본산을 제친 지가 오래지만 정작 일본 시장에서는 한국산 자동차나 가전이 점유율이 제자리걸음을 한다. 중국 소비자의 애국 소비 열풍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중국 정부도 직간접적으로 이를 부추긴다. 실제로 중국산의 품질이 특히 한국산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올라온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심지어 중국산 화장품까지 한국 시장에 밀고 들어온다. 이들과 비교할 시 한국 소비자의 소비 행태는 실로 아쉽다. 일본이나 중국보다 소비자의 자존심에서도 현저하게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는 중국이 목표로 하는 ‘중국제조 2025’의 마지막 해다. 지난 10년간 중국은 미국의 위협 속에서도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절반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소위 말하는 ‘홍색 공급망(Red Supply Chain)'이 착실하게 진행 중이다. 소재·부품·장비의 외부 의존도를 줄이고 국내 완결형 공급망을 만들겠다는 그들의 의도가 적중하고 있기도 하다. 내친김에 2035년까지 첨단 기술 굴기(崛起)를 완수하겠다는 또 다른 목표를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쪽이 한국 제조업이라는 것은 여러 방면에서 입증된다. 미국은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 있지만 우리는 그마저도 없다. 가만히 있다가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마침내 쪽박을 차야 하는 형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안일하고 태연하다.
이 와중에 중국 정부가 오는 5월에 ‘한한령(限韓令, 한류 콘텐츠 금지령)’을 풀 수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사드 배치로 인해 8년 전에 만들어진 족쇄다. 국내 연구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피해액이 15조에서 22조에 이른다. 이 배경을 두고도 여러 말이 있다. 트럼프 정부의 마구잡이식 공세에 대한 맞불로 기존의 ‘전랑(戰狼, 늑대 전사) 외교’에서 탈피해 ‘미소(微笑) 외교’로 돌아서고 있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무비자 입국 국가를 늘리거나 한한령을 푸는 것도 이런 맥락의 일환이라는 해석이다. 벌써 국내 콘텐츠 업계는 2,500조의 중국 문화 콘텐츠 시장이 재개된다고 설레는 분위기다. 중국발(發) 춘풍에 올라탈 수 있다고 고무되고 있다. 지나치게 들떠 있다가 보면 기대가 물거품으로 바뀔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중 간의 제조업 구조나 통상 환경이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는 인식을 저버리고 긴장을 끈을 느슨하게 하면 언제든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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