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업이익률이 0~1%대라는 것은 사실상 마진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다음 프로젝트를 따지 않으면 기존 사업에서 펑크난 부분을 메울 수 없기 때문에 업체 입장에서는 납기일을 맞추지 못할 줄 알면서도 달려들죠. 마치 '카드론 돌려막기'로 연명하는 부실 채무차처럼 발주처에서 받는 선수금 돌려막기의 무한 반복입니다."(A철도제조사)
철도업계는 최저가 입찰제가 산업 발전은 물론 생태계 자체를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싼 가격을 적어내 사업을 따내도 납기 지연 등으로 프로젝트 자체가 난항을 겪는 일이 빈번하다. 납품 단가를 맞추려 저가 중국산 부품을 무리하게 사용하는 탓에 잦은 고장과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국내 철도 대부분은 중소기업이 부품을 들여와 설치·조립만 한 사실상 중국산 제품이다. 부품 강소기업 육성은커녕 국내 관련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제품 사양에 따라 다르지만 해외에서는 철도 1칸당 납품가가 16억원 안팎인 반면 국내는 11억원 정도다. 해외 평균 대비 68%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이나 유럽 등 일부 선진국에서 요구하는 고사양 철도는 1칸당 납품 원가가 25억~30억원에 달하기도 한다. 철도 제조업체가 고품질 열차 개발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문제는 국내 시장의 열악한 납품 단가가 기업의 지속 가능성이 약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로템이 납품하는 국산 철도에는 우진산전, 다원시스 등이 제작하는 차량보다 국산 부품이 2배 더 쓰인다. 대기업이 공공조달시장에 참여하려면 국내산 소재·부품 기업 제품을 일정 비율 이상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로템 철도부문 매출액은 1조5900억원, 영업이익은 150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이 0.9%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 한 업계 관계자는 "공공 수주액에서 부품 비용과 인건비, 서플라이 체인(공급망), 연구개발(R&D) 비용 등을 제하면 공공발주 사업은 남는 게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대기업이 떠난 시장은 중소기업의 놀이터가 됐다. 중국산 부품 사용, 낮은 R&D 투자, 저임금 등으로 최저가 입찰제 구조 내에서 생존해 왔다. 2023년 우진산전 영업이익률은 4.8%, 지난해 다원시스 영업이익률은 2.5% 수준이다. 5%에도 못 미치는 영업이익률을 감수하고 공공발주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낙찰과 동시에 사업비의 최대 70% 이상이 선수금으로 입금되는 업계 관행 때문이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운영사에서 받은 선수금으로 기존 프로젝트 공사 대금과 각종 유지·보수 비용 등을 치르다 보니 새로운 사업이 안 들어오면 자금 경색에 빠지고 2~3차 협력사 대금도 지급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열차 납기일, 애프터서비스(AS) 보증 기간, 보수·관리 등 뒷일을 고민하지 않고 무조건 사업 따내기에만 집중하니 연간 생산능력보다 더 많은 물량을 수주하고, 납기일을 못 맞추고, 납품 지연이 반복돼 결국 의무 미이행 시 배상하는 지체상금을 부담하게 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지하철 사고가 잦아지고 운행 지연도 빈발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우진산전이 2022년 적자를 기록하고, 다원시스가 이번 1·4·8호선 입찰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도 열차 납기 지연에 따른 지체상금 지급과 경고 누적 때문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시민의 발인 지하철이 잦은 고장의 상징인 '중국산 에스컬레이터'처럼 민폐 시설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현재 지하철과 공공시설 에스컬레이터 99% 이상은 중국산이다. 국내 기업들이 저렴한 중국산에 밀려 생산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열차를 계속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안전사고와 고장에 대한 최종 피해는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는 다수 국민들 몫"이라며 "하루빨리 입찰 제도를 정상화해 소모적 논란을 끝내고 중소 철도 업체들의 성장과 해외 진출을 위한 산업 육성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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