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대미 통상 아웃리치(대외접촉)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한계가 여전한 만큼 협상 골든타임을 허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12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미국은 이날 오후 1시(한국시간)부터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모든 수입산 철강, 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철강·알루미늄 관세는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후 한국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첫 사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에도 수입산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 관세를 부과했다. 다만 당시 한국은 수출 할당량(쿼터) 이하 물량에 대한 관세를 면제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쿼터를 모두 없애면서 연간 263만t까지는 관세를 면제해주기로 맺었던 한·미 협약도 폐기됐다.
이에 따라 대미 수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의 '미국 보편 관세가 국내 수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대미 철강 수출액은 4억9860만 달러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지난해 한국의 철강 수출액(43억4700만 달러) 대비 11.47% 규모다. 알루미늄 역시 10.31%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번 조치가 관세전쟁의 신호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시작으로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등 품목별 관세가 예고됐다. 다음 달 2일 상대국의 관세율 및 비관세 무역장벽까지 고려한 '상호관세'가 시작될 전망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목재와 구리 수입이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를 지시한 가운데 외국 농산물 관세 부과 방침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일 의회 연설에서 한국의 대미 관세가 미국보다 4배 높다고 주장한 만큼 한국에 또다시 '청구서'를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트럼프발 관세 정책으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블룸버그 산하 경제 연구소인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미국 정부의 관세 부과 위협만으로도 올해 한국 GDP가 0.8%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명목 GDP가 원화 기준 2549조1000억원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GDP가 20조원 이상이 증발할 수 있다는 의미다. 골드만삭스 역시 미국이 10% 상호관세를 매기는 경우 한국 GDP가 0.7%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는 당장의 관세 부과를 피하지는 못했지만 한·미 실무협의체를 통해 최대한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방미 후 "미국의 관세 부과는 단판 경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라톤으로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트럼프 정부는 관세라는 카드를 가지고 일종의 압박을 가하고 있는 만큼 업계 피해 최소화를 위해 여러가지 협상을 긴밀하게 해야 할 것"이라며 "협상 골든타임을 이미 많이 놓치고 있지만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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