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식당 앞에서 망설인다. 손님은 식당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고, 사장님은 지나는 손님을 붙잡을 수 없다. 손님은 가격표를 보고, 사장님은 텅 빈 의자를 본다. 점심 한 끼도, 커피 한 잔도 지갑 사정을 보자니 망설일 수밖에. 편의점으로 향한 직장인들은 도시락을 데우며 전자레인지 2분이 지나기를 기다린다.
점심값 오르고, 커피값 오르고, 모든 게 오르는데 월급만 안 오르는 것 같다. 임금근로자의 입장만이 아니라 자영업자의 상황도 이해하기 어려운 건 아니다. 재료비 오르고, 임차료 오르고,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다 오르는데 메뉴 가격을 올리지 않을 수 있으랴? 월급 주는 기업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매출도 그렇고, 영업이익도 주는데 임금 인상 요구를 수용하기도 부담스럽기만 하다.
스태그플레이션 찾아왔나?
스태그플레이션의 사전적 정의는 경제 활동의 침체와 함께 물가 상승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불황을 뜻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통상적으로 불황이 오면 물가가 하락하고, 호황이 오면 물가가 상승하는데 경기와 물가의 안 좋은 것만 함께 찾아온다니 이보다 안 좋을 수 없는 상황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이 한국 경제를 덮친 걸까? 한국 경제가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 두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지 진단해 보자.
첫째, 한국 경제는 이미 경기 침체 상황에 진입했다고 판단한다. 2020년 팬데믹 경제위기를 경험한 이후 한국 경제는 경기 침체에 진입했고, 2025년까지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0~2025년 경제성장률 평균치가 1.7%다. 한국은행은 지난 2월 2025년 경제성장률을 1.5%로 전망했고, 기존 전망치(2024년 11월)에서 0.4%포인트나 하향 조정했다. 한국은행의 경제전망 역사상 최대 폭의 하향 조정이다.

한국 경제성장률 추이 및 전망 [자료=한국은행]
정의가 분분하긴 하지만 경기 침체(Recession)는 경제순환 주기(Economic Cycle)상 확장 국면이 아닌 수축 국면에 놓인 때를 가리킨다.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최근 6년 동안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상황에 갇힌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대외 환경이 매우 녹록지 않고, 대내적으로도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불안이 가중되는 형국이다. 2025~2026년에도 경기 침체 국면에서 벗어날 만한 마땅한 돌파구는 보이지 않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첫 번째 조건인 경기 침체 상황에 부합한다고 판단된다.
중국의 시장 지배력은 구조적으로도 한국 경제의 지위를 잃게 하고 있다.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중화학공업 영역에서 중국에 시장을 점유당한 지는 오래되었다. 2025년 1월 들어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이 65.3% 점유율을 기록했다. 중국의 BYD와 Geely는 세계 전기차 시장 1·2위 기업으로 3위인 테슬라를 넘어섰고, 9위인 현대차·기아는 한국 국내 시장을 위협받고 있다. BYD는 신차 ‘아토3’ 국내 출시를 앞두고 3월 현재 산업통상자원부의 친환경 자동차 신고와 한국환경공단의 보급 평가 인증을 진행하고 있다. 약 3000만원 수준인 소형 SUV 전기차가 국내 시장 공급을 앞두고 있고, BYD코리아오토를 설립해 중고차 시장까지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전기차용 이차전지 시장도 마찬가지다. 1위 CATL, 2위 BYD는 2024년 각각 37.9%, 17.2%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고, 시장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3위 LG에너지솔루션, 5위 SK온, 7위 삼성SDI는 점차 시장을 잃고 있다. 반도체 파운드리(Foundry) 시장도 중국에 역전되었다. 한때 삼성전자는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세계 시장을 20%가량 장악했지만 2024년 4분기 들어 8.1%로 떨어졌고, 중국의 파운드리 3사는 9.0%(SMIC 5.5%, Huahong Group 2.6%, Nexchip 0.9%)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둘째, 한국 경제는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벗어난 것으로 진단된다. 물가 상승률이 2025년 2월 2.0%를 기록하며 한국은행의 목표 물가인 2%에 부합하는 상황이다. 물가 상승률이 2022년 7월 6.3%를 기록하며 한국도 예외 없이 글로벌 인플레이션 시대에 진입했고, 이후 기준금리 인상 등의 노력으로 인플레이션에서 빠져나온 것으로 판단된다. 더욱이 근원물가는 1.8% 상승률을 기록하는 만큼 오히려 2017~2020년에 ‘디플레이션 우려’ 상황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물가상승률 추이 및 전망 [자료=통계청]
경제 전문가 집단이 말하는 물가와 대중들이 말하는 물가의 개념이 다르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경제 전문가 집단은 ‘물가 상승률’을 논하고, 일반 대중은 ‘물가 수준’을 논한다. 물가 상승률은 잡혔지만 물가 수준은 잡히지 않은 것이다. 대중은 “물가 언제 잡히나”라며 고충을 토로한다. 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가 아닌 이상 여전히 물가는 오르는 것이다. 아직도 2% 물가 상승률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동안 가파르게 올라간 물가 수준에서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사실상, 한국의 소비자물가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로 물가 수준이 전년보다 오르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팬데믹 경제위기가 닥쳐왔는데도 물가는 오르기만 했다.

한국 물가상승률과 물가지수 추이 [자료=통계청, 2025년 소비자물가지수와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월 기준임]
‘체감적’ 스태그플레이션,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스태그플레이션이 아니라 ‘체감적 스태그플레이션’이다. 진단이 틀리면 처방도 틀린다.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한국 경제를 진단하면 잘못된 대응책을 마련하게 된다. 한국 경제는 ‘저성장 고착화’하고 있고 장기 침체 상황에 놓여 있지만 인플레이션 상황은 아니다. 물가 안정을 유도하는 통화정책 관점에서는 인플레이션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긴축적 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실물경제에 과중한 부담을 줄 수 있다. 물론 환율, 가계부채 등 다른 요소들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통화정책을 운용해야 하겠지만 인플레이션이라고 오진하고 통화 긴축을 유지하면 위험할 수 있다.
서민이 체감하는 물가 수준은 가혹할 만큼 높다. 서민의 체감물가 안정을 위한 노력은 정부가 경주해야 할 부분이다. 체감물가가 높은 이유는 식료품이나 주거비 등 필수재 성격의 물가 수준이 높고, 그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소득이 늘어나지 않아서다. 농축수산물 공급망 안정화 방안이나 주거 안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하는 국면에서 고용시장이 불안하고, 소득도 불안정한 상황이다.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경제 선순환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취약계층을 위한 식료품 바우처 사업이나 공공근로 사업 등과 같은 안전판도 확대해야 한다.
‘체감적 스태그플레이션’의 함정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저성장의 고리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1%대 저성장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중국의 무서운 기술 추격과 세계 시장 장악 등의 흐름을 좌시하면 안 된다. 한국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기술과 산업을 재정의하고, 해당 영역으로 민간 R&D 투자와 사업 진출을 독려해야 한다. 쓰러지는 나무에 매달려 있어서는 안 된다. 쓰러지는 나무를 꽉 붙잡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무로 옮겨가야 하는 시점이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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