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길을 하나만 꼽으라면 신사동 가로수길이다. 거리 양옆으로 심어진 은행나무가 독특한 경관을 만든 이 거리는 트렌디한 편집숍과 다양한 독립 브랜드들이 자리잡으며 십수년 전부터 젊은 층이 찾는 명소로 입소문을 탔다. 전성기에는 비싼 임대료에도 공실률이 5%를 넘지 않을 정도였다.
지난해 4분기 가로수길 상권의 공실률은 41.2%다. 다른 핑계를 찾아 보려 해도 관광객 수치는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서울 평균도 16.6%에 불과하다. 명동 4.4%, 홍대 10% 등으로 예전의 위상을 되찾아갈 때, 가로수길엔 ‘유령골목’이란 새로운 별명이 붙었다. 도쿄의 긴자, 파리의 샹젤리제, 뉴욕의 소호와 어깨를 나란히하던 시절은 이제 과거가 됐다.
가장 큰 이유는 임대료다. 바로 인근에 세로수길, 나로수길과도 임대 보증금이 3배가량 차이가 난다. 2018년 애플스토어가 20년치 월세 600억원을 한꺼번에 내며 입점하자, 인근 건물주들도 제2의 애플스토어를 노리며 ‘버티기 전략’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다. 이제 가로수길엔 대기업이나 글로벌 브랜드만이 남고 있다.
교과서대로라면 상권이 침체되고 유동인구가 줄어들면 임대료도 자연스레 내려가야 한다. 그러나 가로수길은 건물주들이 자산가여서 상대적으로 공실로 인한 타격을 덜 받거나, 건물 가치가 하락할 것을 우려해 한번 올린 임대료를 내리지 않는다. 시장균형점보다 높은 지점에 임대료가 머물면서 상권을 침체시키고 나아가 서울이라는 도시의 경제와 문화를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비슷한 문제에 직면한 해외 도시들은 적극적인 정책 대응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경우 상업용 공실 방지를 위해 일정 기간 이상 빈 상점을 방치할 경우 추가 세금을 부과하고, 임대료를 낮춰 빠르게 세입자를 유치하는 건물주에게는 세제 감면 혜택을 제공한다. 이 정책 시행 이후 파리 중심가의 공실률은 대폭 감소했다.
일본 도쿄는 팝업스토어를 활용해 짧은 기간 저렴한 임대료로 빈 상점을 제공함으로써 스타트업과 소규모 브랜드들이 상권에 진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뉴욕 브루클린도 ‘스토어프런트 챌린지’ 프로그램을 시행해 공실 매장을 1년간 무상 제공해 창업자가 테스트 마켓을 운영하도록 지원했다. 두 사례 모두 창업 생태계를 지원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국 런던의 ‘민와일 스페이스’ 프로젝트는 빈 상가를 예술가들의 작업실이나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프로그램이다. 건물주는 낮은 임대료로 공간을 제공하고 세금 혜택을 받으며, 예술가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쇠퇴한 상권에 문화적 활력을 불어넣어 방문객을 다시 유입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정보 비대칭 현상이 심한 상업용 부동산 계약의 맹점을 극복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임대료 투명성을 높여 담합을 방지하고 적정 시장가격 형성을 유도해야 한다. 해외도시 사례를 활용해 장기간 공실일 경우 문화공간이나 팝업 스토어로 활용할 수 있다.
매출연동형 임대차계약이나 단계적 임대료 인상 구조 등 변화된 상권 환경에 맞는 새로운 계약 모델을 개발하고 보급할 필요가 있다. 일정 기간 이상 공실을 방치하는 상가 건물에 대해서는 재산세 감면 혜택을 축소하거나, 적정 임대료로 계약을 체결한 건물주에게는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가로수길의 공실 문제는 단순히 개별 건물주와 임차인의 문제가 아닌, 도시 경제의 건강성과 직결된 사회적 과제다. 이대로라면 유령골목이 한남·성수·마곡·문래 어디에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 수십년 전 주민들이 앞장서 심은 은행나무가 가로수길의 독창성을 가져왔듯이 도시개발 과정에서 누적된 구조적 모순을 인지하고 다시 가로수길만의 색깔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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