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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순국 115주기 추모식' 개최…"韓 과거·현재·미래 밝히는 횃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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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선 기자
입력 2025-03-26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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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유공자 유족·숭모회원 등 200여명 참석

  • 강정애 장관 "애국정신 계승·발전시키겠다"

안중근 의사 사진국가보훈부
안중근 의사 [사진=국가보훈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안중근 의사 순국 115주기 추모식'이 열린다. 

26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안 의사의 추모식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안중근의사숭모회 주관으로 개최된다. 

추모식은 강정애 보훈부 장관, 김황식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을 비롯해 독립유공자 유족, 숭모회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약전 봉독, '최후의 유언' 낭독, 추모 식사 및 추모사, 안중근동양평화상 시상, 감사패 증정, 추모 공연, 헌화 순으로 진행된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안중근동양평화상은 안 의사의 애국정신과 평화 사상을 기리고 미래 세대로 계승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안 의사와 관련한 학술 연구, 선양 활동 등에 공헌한 자를 시상한다. 올해는 안 의사의 공훈 선양과 한·일 우호 친선을 위해 항일독립운동사의 진실을 알리는 역할을 해온 일본 대림사가 수상한다. 

1879년 황해도 출생의 안 의사는 1905년 을사늑약 후 중국 상해로 건너가 국권 회복의 길을 강구하다 돌아와 사재를 털어 삼흥학교·돈의학교를 세워 미래 인재 양성에 힘썼다. 또 고종황제의 폐위, 군대 해산 등 나라가 식민지 상태에 이르자 다시 해외로 나가 이범윤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8년에는 의군장으로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에 진입해 경흥·회령 등지에서 대일 항전을 전개했다.

그 후 블라디보스톡 등지를 왕래하면서 동지들과 구국의 방도를 모색했고, 1909년에는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 동맹'을 결성하며 일사보국을 맹세했다. 특히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9시경 하얼빈역에서 군인들의 경례를 받으며 각국 영사들이 도열해 있는 곳으로 걸어가던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쏘아 3발을 모두 명중시킴으로써 민족의 원흉을 처단했다. 군인들이 그를 체포하려고 하자 하늘을 향해 "코레아 우라(대한독립 만세)"를 크게 세 번 외쳤다. 

러시아 헌병대에서 여순에 있는 일본 감옥으로 이송된 안 의사는 심문과 재판을 받는 가운데서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 행위를 비판하며 시정을 요구했고,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동양 평화의 정착을 주장하며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 이후 안 의사는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은 후 3월 26일 순국했다. 정부는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강정애 장관은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안중근 의사님의 숭고한 생애와 정신은 순국 115주기를 맞이하는 지금도 대한민국의 과거·현재·미래를 밝히는 횃불"이라며 "광복 80주년의 뜻깊은 해를 맞아 안중근 의사님을 비롯한 선열들의 애국정신과 그분들이 일궈낸 자랑스러운 독립의 역사를 기억하고 계승·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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