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한국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달 말에 넷플릭스가 발표한 글로벌 TOP 10 비영어(非英語) 드라마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2000년 초반, 한류 드라마의 원조격인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시작하여 시나브로 한국 드라마들이 세계를 석권하기 시작하였다. 일일이 모두 나열할 수는 없지만, 비단 ‘폭싹 속았수다’뿐만 아니라, 한류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드라마 제작 수준이 높아서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스토리텔링, 연출 및 촬영기법,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세계적 수준이다. 둘째로는 한류 콘텐츠가 가족, 사랑, 소시민적 일상, 인간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과 같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과 정서를 다루기 때문이다. 셋째로 한국의 문화적 매력과 정서적 공감적 요소로서 충(忠)과 효(孝), 가족, 우정, 희생, 정(情) 같은 요소들, 동서양을 떠나 인간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테마를 다룬다. 그래서 성공한 한류 콘텐츠는 ‘글로벌(global)’과 ‘로컬(local)’이 합친 ‘글로컬(glocal)’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그래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넷째는 필자가 번역학을 전공해서인지 번역을 꼽고 싶다. 한류 콘텐츠가 번역 과정 이후 자막이나 더빙의 형식으로 서비스되어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도 한류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가 있다. 부동의 1위는 영어이다. 영어사용 인구는 약 15억명이다. 영어는 세계의 공용어이고, 영어가 제2외국어로 사용되는 나라가 많기 때문에 당연히 영어 사용자가 많다. 다음으로 2위는 중국어로 중국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약 13억에 이른다. 3위는 인도의 힌디어로 사용 인구는 약 6억명이다. 4위는 스페인어로 사용 인구는 약 5억명이다. 5위로 프랑스어도 추가하자면, 대략 3억에서 조금 모자란다. 따라서 남북한 7000만명의 화자를 가진 한국어가 세계로 진출하려면, 당연히 번역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류 콘텐츠가 이렇게 5개 언어로 번역이 된다면, 전 세계 70억 인구의 절반 이상이 한국 드라마를 보고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번역은 필수이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성공한 이유로 필자가 보기에는, 첫째, 드라마의 스토리가 감동을 준다. 제주에서 태어난 주인공 ‘애순’과 ‘관식’의 모험이 가득한 애틋한 삶을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사계절로 서술하면서, 남녀노소, 누구나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을 선사한다. 둘째,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다. 아이유와 박보검을 비롯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였다. 박보검이 빨간 추리닝을 입은 채로 눈물을 글썽이는 표정을 보면,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또 아이유는 ‘애순’과 딸 ‘금명’, 1인 2역을 수행하면서, 당연한 듯, 요망스러운 연기는 보는 이들이 다른 듯, 닮은 듯, 그 연기와 변신에 감탄해 마지않는다. 셋째, 오늘날 한국의 노년과 중년 그리고 장년들이라면, 이 드라마가 배경으로 하는 시대에 살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의 ‘노스탤지어(nostalgia)’를 불러일으킨다. ‘노스탤지어’는 희랍어로 ‘집으로 돌아간다’는 뜻의 ‘노스토스(nostos)’와 통증을 의미하는 ‘알고스(algos)’의 합성어이다. 그래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1960년대에서 1980년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주와 부산, 그리고 서울에 이르는 시공간을 아우르면서, 아득한 당시의 팍팍했던 삶의 편린을 불러일으킨다. 넷째, 번역의 묘미이다. 번역과정에서 번역가들이 접하는 어려운 점들 중의 하나가 바로 사투리의 번역이다. 시인이 시를 쓸 때 시어(詩語)를 고르는 심정으로 번역가는 출발언어에서 목표언어에 이르기까지 직역과 의역에 이르는 스펙트럼 사이에서 적절하고 정확한, 그래서 ‘적확’한 번역어를 고른다.
문화란 한 사회가 보유하고 선조로부터 물려받고 후손에게 물려주는 사회 전반의 요소이다. 문화적인 용어, 내지 문화를 지칭하는 단어, 그리고 문화를 품은 단어들에서 추적, 분화되는 요소들을 ‘문화소(cultureme)’라고 한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와 같이 극히 한국적인 콘텐츠에는 당연히 문화소가 많다. 문화소를 번역할 때 효과적인 번역방법이 바로 ‘초월번역(transcreation)’이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주지하다시피 제주도 사투리로 ‘완전 속았다’가 아니라 ‘매우 수고했다’는 뜻이다. 필자라면 아마도 ‘폭싹 속았수다’를 영국의 록밴드인 ‘비틀스(the Beatles)’가 부른 ‘Let it be’의 첫 소절,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로 번역했을 법하다. 넷플릭스에서는 ‘폭싹 속았수다’를 영어 속담인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를 변형하여 ‘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로 번역하였다. 레몬이나 귤이나, 그 모양이 비슷하다. 그래서 제주도의 특산품이 귤이므로, 영어 속담의 앞부분을 그대로 따면서 귤로 바꾼 것이다. 실로 묘미가 느껴지는 번역이다.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라는 속담은 원래 레몬이 신맛이 나는 과일로 역경과 고난을 의미하는 바, 고난이나 역경이 닥치면, 이를 레모네이드가 의미하는 제대로 된 물건으로, 즉 이를 이겨내고 성공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 ‘애순’이나 ‘관식’이도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lemon을 tangerine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출발언어인 한국어의 ‘매우 수고하셨습니다’를 목표언어인 영어로 번역할 때 영어 속담을 인용하면서 lemon을 귤로 마음대로 번역해도 될까? 이렇게 뜬금없는 번역이 가능하도록 하는 번역전략이 바로 ‘초월번역(transcreation)’이다. ‘초월번역’의 영어 어원을 보면 ‘번역(translation)’과 ‘창조(creation)’의 합성어이다. 직관적으로 그 의미를 바로 알 수 있다.
번역이란 직역이든 의역이든, 출발언어 원문의 의미에 기초하여 목표언어로 전달하면서 번역의 ‘SKOPOS’, 즉 의도에 따라 번역전략을 구사한다. 그러나 초월번역은 출발언어의 의미를 두고 목표언어로 번역하는 가운데, 출발언어에서 의미의 느낌, 의도와 감흥을 전달하는 의미 전달의 재조정으로, 단순한 번역 이상의 전략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번역의 범주에서 그 외연을 확장하여 게임, 광고, 슬로건, 홍보, 마케팅 등 상업적인 매체에 많이 사용된다. ‘초월번역’의 기능은 출발언어에서 목표언어로 의미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원문의 의도와 정신, 그리고 느낌과 감흥을 그대로 느끼도록 전달하는 것이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와 같이 한국적인 문화와 시대적 상황으로 점철된 드라마의 번역에는 ‘초월번역’이 제격이다.
‘언어유희’와 같이 목표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어려운 단어나 표현을, 원래 목표언어의 표현인 것처럼, 의미의 정확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이 정확하도록 적절하게 번역하는 방법이 ‘초월번역’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 물론 원문과는 번역 결과가 전혀 달라질지라도 직역을 통한 몰입도의 하락보다 ‘초월번역’이 한층 나은 결과와 반응을 도출할 수 있다. 효익과 비용의 대응 원칙에 있어 효익을 추구한다. 물론 번역에 있어서 출발언어의 언어적인 내용에 충실해야 한다는 본래 번역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출발언어로 된 각종 콘텐츠를 보면서 출발언어 화자들이라면 웃을 수 있는 상황에서 목표언어 화자가 번역을 보고서 전혀 웃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 번역은 제 역할을 했다고 할 수는 없다. ‘초월번역’의 최대 가치이자 효용은 출발언어가 주는 감흥과 느낌이 목표언어에서 오히려 출발언어를 초월하는 데 있다. 이렇게 한류 콘텐츠가 해외에서 보다 더 열광적인 환호를 받는 데 기여한다.
국가와 히로뽕의 합성어가 국뽕이라고 한다. 자국의 우월감, 자문화 중심주의, 국수주의 등이 별로 좋은 어감은 아니지만, 한류 드라마의 국뽕은 그래도 취할 만하다. ‘한류 드라마’와 ‘시어’를 고르는 심정으로 ‘한류 콘텐츠’를 열심히 번역하는 번역가들의 건투를 빈다. 결코 아무나, 누구나 하는 것이 번역이 아니다. 문화와 언어의 ‘매파((媒婆)’가 바로 번역가이다. 배우들도, 그리고 번역가도 폭싹 속았수다.
필자 주요 이력
▷부산대 번역학 박사 ▷미국 University of Dayton School of Law 졸업 ▷대구가톨릭대 영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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