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이유 "나의 계절은 가을…'폭싹'으로 수확 거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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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25-04-0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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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주연 배우 아이유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주연 배우 아이유 [사진=넷플릭스]
"개인적으로 가을을 참 좋아해요.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잖아요. 여름을 돌아보고 재정비하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그런 관점에서 스스로도 '가을'에 있는 것 같아요. 오래 품고 있던 '폭싹 속았수다'를 세상에 내놓고 사랑받는 지금이 꼭 가을처럼 느껴지네요."

바야흐로 수확의 계절이다. 배우 아이유(31)는 빽빽하고 푸르렀던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의 문턱에 이르렀다. 드라마 '드림하이'를 통해 싱그러운 시작을 알렸고, '프로듀사'로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다졌다. 이후 '호텔 델루나', '나의 아저씨', 영화 '브로커' 등에서 차근차근 깊이를 더하며 다진 내공이 마침내 '폭싹 속았수다'를 통해 결실을 맺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극본 임상춘·연출 김원석)는 제주에서 태어난 '애순'과 '관식'의 일생을 사계절로 풀어낸 작품이다. 공개 3주 차에도 글로벌 TOP 10 시리즈(비영어) 부문 1위를 지키며 글로벌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4막 공개 후에는 600만 시청수(총 시청 시간을 러닝타임으로 나눈 수치)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극 중 아이유는 '애순'과 그의 딸 '금명' 역으로 1인 2역에 도전했다. 그는 세대를 넘나들며 각기 다른 감정과 개성을 표현해내야 했고, 배우 문소리와 함께한 인물을 공유하는 2인 1역의 미묘한 호흡도 맞춰야 했다. 이처럼 안팎으로 까다로운 조건에도, 아이유는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연기적 내공을 바탕으로 캐릭터의 삶을 세밀하게 채워 넣으며 자신만의 가을을 완성했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이런 대본이 나에게도 오는구나' 싶더라고요. 정말 행복했어요. 특히 '이 장면은 어떻게 구현될까?', '브라운관에서는 어떻게 보일까?' 하는 궁금증이 계속 들었는데, 그 궁금증을 상상하면서 따라갈 수 있을 만큼 디테일이 살아 있었거든요. 어떤 날씨인지, 그날의 공기와 분위기가 어떤지까지 대본 안에 다 들어 있어서 읽는 내내 장면이 그려졌어요."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주연 배우 아이유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주연 배우 아이유 [사진=넷플릭스]

작품에 관한 애정만큼 부담감도 컸다고 한다. '폭싹 속았수다'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었다.

"부담이 확실히 있긴 했어요. 현장에서 '어떤 쪽이 더 애순 같아요? 금명 같아요?' 하고 여쭤보기도 했고요. 함께하는 분들이 너무 대단하신 분들이라, 기대를 한껏 받는 느낌도 있었죠. 그 기대에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아이유의 인생작이라 불리는 '나의 아저씨'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원석 감독과의 재회. 자연스레 '지안'과 '애순'의 비교도 따라붙었다. 이에 대해 아이유는 "'지안'과 '애순'은 완전히 다른 캐릭터"라며 차근차근 그 차이를 설명했다.

"'나의 아저씨' 지안과 애순이 비슷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요. 사실 저는 크게 닮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지안은 그늘에서 출발해 점점 볕을 향해 나아가는 인물이라면, 애순은 볕에서 시작해 여러 그늘을 지나가요. 하지만 그 그늘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다시 햇볕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죠. 그런 점에서 두 인물은 확실히 결이 달라요."

금명의 내레이션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있었다. 설명적이라는 지적부터 캐릭터의 시선인지 작가의 시선인지 헷갈린다는 의견도 있었다.

"마지막 회에 70대 금명이 나오잖아요. 그 시점을 기준으로 엄마의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의 삶을 함께 떠올리는 구성입니다. 처음에 그걸 모르고 들으면 어린 금명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죠. 그래서 톤 조절에 정말 공을 많이 들였어요. 나레이션 작업만 두 달 넘게 했고, 수정도 정말 많이 했어요. 감독님께 다양한 버전을 보내드렸고, 최종 파일은 감독님이 직접 골라 마무리하셨어요. 듣기에 너무 어리게 느껴진다, 톤이 높다 싶으면 낮추고… 그런 세세한 조율을 계속했죠."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주연 배우 아이유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주연 배우 아이유 [사진=넷플릭스]

아이유는 단순한 감정 전달을 넘어, 시간의 흐름을 안고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만들고자 했다. 어린 금명이 아닌, 세월이 지나 삶을 관조하는 시점의 내레이션을 담아내려 했다.

"금명이의 내레이션은 회고에 가까운 이야기예요. 단순히 상황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성장이 느껴지고 '이 인물이 이런 후회를 하는구나', '이런 속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걸 세세하게 짚어주셨어요. 마음이랑 다르게 행동한 적 있잖아요. 저도 그렇고, 금명이라는 인물도 그렇고요. 그런 걸 '왜 이렇게 말하지?'가 아니라 '그럴 수 있지', '후회한 적 백 번도 넘지' 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극 안에서 다 보여주지 않은 감정의 빈칸들을 시청자가 따라갈 수 있도록 내레이션이 길을 잘 열어준 것 같아요."

'폭싹 속았수다'를 촬영하며 자연스레 부모님을 떠올릴 때도 많았다. 그는 "이런 작품을 연기하며 부모님 생각을 안 하면 너무 불효녀 아니냐"며 웃음을 터트렸다.

"엄마, 아빠에게 많이 여쭤보면서 연기했어요. '엄마도 그런 적 있어?', '금명이가 이럴 때 이해가 가?' 하고요. 금명과 엄마가 두 살 차이인데, 엄마는 애순이랑 금명이 모두에게 이입을 하시더라고요. 엄마 입장에서 보면 또 다르게 느껴지나 봐요. 처음으로 딸이 연기한 걸 작품으로 온전히 본 거잖아요. 잘했나 못했나, 실수한 건 없나 보시는 줄 알았는데, 극에 완전히 몰입해서 애순과 금명이로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 듣고 '이야기의 힘이란 이런 건가?' 싶었어요. 저도 엄마에게 혹시 잘못한 건 없었나 되돌아보게 됐고, 요즘은 엄마에게 짜증을 내거나 하는 시기는 지났지만, 한마디를 하더라도 예쁜 말, 엄마 아빠가 기분 좋아질 만한 말을 더 하게 되더라고요. 이 작품 하면서 '이제 좀 철들었나?' 했는데, 아, 아직 더 철들 여지가 많구나 싶었죠."

아이유는 작품을 통해 부모를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애순'과 '금명'의 시선을 빌려 엄마를 다시 바라보게 된 시간은, 결국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애순'의 10대 시절이 유난히 공감되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여러 연령대의 애순을 연기해 봤지만, 아무래도 10대 애순이 저랑 가장 닮아 있는 것 같아요. 지기 싫어하는 마음도 그렇고요. 저는 애순처럼 처음부터 낙관적인 생각만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되게 투덜대고 부정적일 때도 많고, '나 왜 이렇게 생각하지?' 싶을 때도 있는데, 결국은 또 낙관적으로 정리되더라고요. 나쁘게 말하면 합리화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잘 버티고, 결국은 좋게 생각하려는 성향이 있어요. 애순이 뭐든지 다 해먹고 싶어 하는 욕심도 그렇고, 지면 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도, 저랑 좀 닮아 있는 부분이죠."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주연 배우 아이유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주연 배우 아이유 [사진=넷플릭스]

문소리와 2인 1역을 소화한 소감도 전했다. 문소리는 아이유가 '애순'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다정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고. 아이유는 그의 배려 덕에 자연스레 자신만의 '애순'을 길어 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소리 선배님과 2인 1역이라는 게, 사실 너무 영광스러운 일이잖아요. 내가 과연 선배님의 상상 속 애순을 모자람 없이 표현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긴장도 많이 됐어요. 그런데 첫 미팅 때부터 선배님이 너무 편하게 다가와 주셔서, '시간 맞으면 한 번 얘기할까?' 하고 가볍게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사실 상의드리고 싶은 게 산더미였는데, 괜히 귀찮게 해드릴까 봐 참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자연스럽게 풀 수 있게끔 해주셨어요. 선배님 작업실에 가서 작품 이야기뿐 아니라 살아온 이야기부터 나눴어요.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싶은지 같이 읽어보기도 했고요. 연기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같이 씬을 읽어보면 '아, 청년 시절 애순은 이렇게 표현해야겠다'는 힌트를 얻기도 했어요."

'폭싹 속았수다'는 가수 아이유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한 인물의 생을 따라가며 겪은 감정들이 음악적으로도 스며든 것이다. 그는 지난해 2월 발표한 노래 '쉬..(Shh..)'가 '폭싹 속았수다'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든 음악이라고 설명했다.

"언젠가 꼭 꺼내 쓰고 싶었던 마음속 테마였어요. 하지만 이 작품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나오진 않았을 것 같아요. 애순과 금명을 따라가다 보니 너무도 자연스럽게, 가사로 떠올랐죠. 쓸 때도 따뜻한 감성에만 머물기보다, 강인함이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아이유는 '폭싹 속았수다'가 가진 질문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성공한 삶이란 뭘까, 잘 산 삶이란 뭘까. 작품을 보면 그런 질문을 던지게 되잖아요. 욕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그걸 다 이뤘다고 해서 정말 성공한 걸까 생각해 보게 됐어요. 감정을 다 누리지 못하고, 어울리지도 못하고, 마음을 해소하지 못한 채 이루는 삶이라면…. 그게 정말 좋은 삶일까 싶더라고요. 그보다 '내 인생이 시집 한 권 같았어. 한 장도 허투루 쓴 게 없어. 이게 내 보물이야'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게 진짜 잘 산 삶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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