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40) 소 잃은 후에라도 외양간을 고쳐라 - 망양보뢰(亡羊補牢)

유재혁 칼럼니스트
[유재혁 칼럼니스트]
 
흔히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들 한다. 일상에서 수시로 소환될 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속담이다. 소를 도둑맞고 나서 빈 외양간의 허물어진 데를 고치느라 수선을 떤다는 뜻으로 쓰인다. 사전 대비가 중요하지 일이 이미 잘못된 뒤에 손을 써봐야 무슨 소용이냐는 얘기다. 일 터지고 뭘 한들 뒷북 처방이라는 질책과 힐난의 성격이 강하다. 

과연 그런가. 소를 잃고 나서 외양간을 고쳐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걸까. 물론 사전에 유비(有備)해서 무환(無患)이면 최상이다. 더 바랄 게 없다. 허나 세상살이가 어디 그렇게 순탄하게만 굴러가던가. 실수하고 반성하고 또 실수하고 반성하며 사는 게 이래저래 부족함이 많은 중생들의 숙명이다. 사전 대비도 중요하지만 사후 조치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망양보뢰(亡羊補牢)'라고 하는 중국 성어가 있다. '양을 잃고 우리를 고친다'는 뜻이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우리 속담과 완전 닮은 꼴이다. 양이 소로 바뀐 건 중국인들에게 양이 소중한 만큼 한국인에게는 소가 소중한 가축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망양보뢰가 우리 속담과는 달리 사후 조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쓰인다는 게 흥미롭다.

전국시대의 강국 초나라 이야기다. 양왕(襄王) 치세 때 정치는 부패했고 국세는 날로 위축되었다. 장신(莊辛)이라고 하는 지혜로운 신하가 양왕에게 향락을 멀리하고 국사에 전념하지 않으면 머지 않아 나라가 위기에 처할 거라고 충언하였다. 이에 양왕이 쓸데없이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격노하자 신변에 불안을 느낀 장신은 이웃 조나라로 망명했다. 그로부터 불과 다섯달 뒤 과연 진(秦)나라가 침공하여 국토를 유린하기 시작했고 양왕은 속절없이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제서야 양왕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부랴부랴 장신을 불러 대책을 물었다. 장신의 답은 이러했다. “토끼를 보고 나서 사냥개를 불러도 늦지 않고, 양을 잃은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습니다.(見兔而顧犬 未爲晚也 亡羊而補牢 未爲遲也)." 양왕은 대오각성하여 흐트러진 나라의 기강을 다시 세웠고 초나라는 점차 위기를 벗어났다.

《전국책(戰國策)ㆍ초책(楚策)》에 실려 있는 이 고사에서 성어 망양보뢰가 유래했다. 망양보뢰는 '양을 잃은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亡羊而補牢 未為遲也)'는 장신의 말에서 보듯 '늦지 않다'에 방점이 찍혀 있다. 즉, 어떤 일이 잘못되었더라도 빨리 뉘우치고 수습하면 된다는 뜻이다.
중국에서도 간혹 망양보뢰가 이미 어떤 일을 실패한 뒤에 뉘우쳐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이르는 말로 쓰이기도 하지만, 그런 용도로는 '사후제갈량(事後諸葛亮)'이 훨씬 더 폭넓게 쓰인다.

국가적 혼란이 극심했던 122일간의 탄핵정국이 대통령 파면으로 일단락되었다. 시대착오적 비상계엄은 준엄한 사법적 단죄를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거대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 입법 폭주를 모르는 국민이 없게 됐다. 헌법재판소도 판결문 곳곳에서 야당의 행태를 준엄하게 꾸짖었다. 대통령도 문제였고 야당도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런 망국적 사태의 재발을 막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개헌을 해야 한다고. '87 체제'는 수명을 다했다고. 

12ㆍ3 비상계엄으로 인해 '87 체제'의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정치권은 진작에 개헌을 서둘러야 마땅했으나 당리당략에 매몰되어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며 강 건너 불 보듯 방관적 태도로 일관했다. 국민으로부터 나랏일을 위임받은 사람들의 직무유기다. 그로 인해 호된 대가를 치르고서야 개헌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려 하느냐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그럼에도 개헌은 서둘러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무대에서 퇴장했지만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근원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국정의 파트너를 적으로 여기는 극단의 혐오정치, 무리한 입법에 거부권으로 응수하고 끝내 줄탄핵과 계엄으로 치달은 대결정치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한번 고기맛을 본 맹수는 배고프면 언제든지 산을 내려와 외양간을 다시 부수고 소를 덮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본다. 그렇기에 부서진 외양간은 서둘러 그리고 튼튼하게 고쳐야 한다. 개헌은 울타리가 무너지고 곳곳에 구멍 난 우리사회를 개보수하는 가장 확실한 처방이다. 비록 진통은 겪었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개헌은 시대적 요청이자 책무다. 87 체제의 문제점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최고조에 이른 만큼 21대 대선은 개헌을 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다. 큰 방향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문에 다 녹아 있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고 제왕적 국회의 전횡을 제어하는 법적ㆍ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달리던 개헌 열차가 멈췄다. 개헌의 키를 쥐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급브레이크를 걸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와 사전에 충분히 교감했다고 믿은 우원식 국회의장이 쏘아올린 '대선ㆍ개헌 동시투표' 제안은 정작 이 대표의 반대로 바람 빠진 풍선이 됐다. 늘 그렇듯 이 대표는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었고 국회의장은 보기좋게 체면을 구겼다.

이 대표는 내란 종식이 우선이며 개헌은 대선 후에 추진해도 된다고 하지만 윤 대통령의 파면으로 내란은 종식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란을 입에 담는 건 국민의힘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프레임일 뿐이다. 개헌은 내란 재발을 막는 확실한 보증수표이기도 하니 이 대표는 개헌을 반대할 명분이 없다.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 이재명 대표의 몸사리기는 전형적인 '부자 몸조심'이다. 이대로만 주욱 가면 대권은 따 놓은 당상인데 대선정국에서 새로운 변수가 등장하는 게 달가울 리 없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의 정치사를 되돌아보면 '대선 후 추진'을 말하는 건 개헌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동의어다.

이재명 대표가 당대표직을 사퇴하고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린 11분 남짓한 영상을 통해 21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정치는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양복을 연한 베이지색 니트로 바꿔 입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큐 영상을 찍는다고 국민의 마음이 얻어지는 게 아니다. 이 전 대표는 당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민주당이 23년간 유지해온 '국민경선제'를 걷어찼다. 개헌을 외면하는 것도 눈앞에 다가온 제왕적 권력에 연연하기 때문이다. 이런 행태들로는 사법리스크는 차치하고라도 잦은 말바꾸기, 거짓말 논란 등으로 인한 신뢰리스크와 지지율보다 월등히 높은 비호감 정서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기려면 버려야 하고, 갖고자 하면 얻을 수 없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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