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면서 국내 기업들이 기회의 땅 러시아에 다시 발을 디딜 가능성도 함께 고조되고 있다. 연간 100억 달러(약 14조원) 규모 수출 시장 빗장이 풀린다면 미국의 고율 관세와 중국의 저가 공세에 고전하던 한국 수출 기업에 단비로 작용할 전망이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2022년 러·우 전쟁 발발 후 현지 시장에서 철수했던 국내 기업들이 리오프닝을 염두에 둔 예열 작업에 들어갔다.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가 완화되지 않는 한 불확실성은 여전하지만 전후 복원 수요와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는 현지 소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선제적 진입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전쟁 전만 해도 러시아 시장 점유율 1~2위를 차지할 정도로 현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철수를 결정한 뒤 러시아 시장은 중국 브랜드의 놀이터가 됐다. 현재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은 샤오미, 가전 시장은 하이얼, 자동차 시장은 체리자동차가 각각 선두를 달리고 있다. 러시아 재진출에 나서더라도 중국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한국무역협회 국가수출입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대러시아 수출은 2021년 99억7953만 달러로 전년 대비(68억9996만 달러) 44.6% 증가했다. 전체 수출 중 12위권이다. 2022년 2월 전쟁 발발 후 감소하기 시작해 2024년에는 45억 달러로 통계 집계 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러시아와 교역하는 수출 기업 수는 2021년 4003개사에서 올해(6월 기준) 1861개사로 53.5% 줄었고, 교역 품목도 과거 전략 물자 중심에서 소비재, 중고차, 기초소재 등 비제재 중심으로 재편됐다.
전문가들은 미국·유럽 기업의 철수,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구조적 변화 시기에 러시아 시장이 다시 열릴 조짐을 보이는 만큼 새로운 수출 전략 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세밀한 전략 수립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유서경 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러시아는 인구 1억5000만명의 내수 시장, 풍부한 자원, 유라시아로 연결되는 지리적 이점 등을 바탕으로 한국 수출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며 "과거 단순 교역 대상국을 넘어 지정학적 복원력과 전후 수요 회복력이 공존하는 기회의 시장으로 재평가하고 중단기 정책을 병행해 진출 방안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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