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공급망 전쟁 속 지정학적 리스크를 관리하면서도 새로운 수출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 시장."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보고서에서 러시아에 대해 내놓은 평가다. 지루하게 이어져 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착점이 보인다는 관측이 잇따르면서 국내 기업들도 재진출 채비를 시작하는 분위기다.
◆공장 재가동, 상표권 등록 등 韓기업 예열 중
19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지분 재인수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 러·우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부품 수급이 어려워지자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포함한 러시아 법인 지분 100%를 2023년 12월 현지 기업 아트파이낸스에 1만 루블(당시 약 14만원)을 받고 매각했다. 다만 올해 12월까지 지분을 되살 수 있는 '바이백' 조항을 넣었는데, 옵션 행사 여부를 연내 결정해야 한다.
최근에는 러시아 연방지식재산권국에 '현대 ix50' 등 3개 상표권을 등록하기도 했다. 기아 역시 '기아 마이 모빌리티'(Kia my mobility) 등 새로운 상표 5건을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재진출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러시아 시장 리오프닝을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08년 설립한 칼루가 공장에서 TV·모니터·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생산하다 전쟁 발발 후인 2022년 3월 운영을 중단했다. 현재 재가동 여부를 검토 중이다.
러시아 내 광고 예산도 전년 대비 30% 확대했다. 현재 삼성 가전은 제3국을 거쳐 병행 수입 방식으로 러시아에 들어가고 있는데 현지 브랜드 인지도 유지에 공을 들이고 있는 셈이다.
LG전자는 2006년 건설한 루자 공장에서 TV·세탁기·냉장고 등을 생산했으나 전쟁 6개월 만인 2022년 8월 공장 문을 닫았다가 지난 3월부터 일부 라인 재가동을 시작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설비 노후화 방지와 재고 소진 차원의 시험 생산"이라고 밝혔지만 종전 가능성을 감안한 복귀 작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K-브랜드' 앞세워 中에 뺏긴 파이 되찾아야
코트라에 따르면 러시아는 인구 1억4700만명에 달하는 거대한 소비 시장으로 전쟁 중에도 2022년 2.1%, 2023년 3.6%, 지난해 3.9% 등 성장률이 꾸준히 올랐다.
동유럽을 중심으로 'K-브랜드' 열풍이 불고 있는 건 우리 기업들에 호재다. 한 재계 관계자는 "러시아는 이미 성공 사례가 축적된 시장이라 여건만 조성되면 반드시 재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30%로 1위에 올랐고, TV 시장에서도 9년 연속 선두를 지킨 바 있다. LG전자 역시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 시장에서 수차례 1위를 기록했다.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이 빠진 틈에 현지 시장을 장악한 중국 기업과의 경쟁이 관건이다. 삼성전자 TV 점유율은 2022년 25%에서 지난해 5%로 급락했고, 스마트폰 점유율도 12%로 떨어지며 중국 샤오미(23%)에 1위를 내줬다. 가전 시장은 중국 하이얼이 석권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도 2021년 36만대 판매로 1위에 올랐지만 지난해에는 3만대로 91.7% 급감하며 중국 체리·지리·창안자동차 등에 시장을 뺏겼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유럽 최고 수준의 한류 열풍과 브랜드 인지도 조성으로 (러시아 내) 우호적 분위기가 역대급"이라며 "서방 경쟁 기업의 철수로 공백이 생긴 만큼 현지 수요 대처와 수출 품목 다변화를 위한 루트 개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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