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대 초부터 거대 양당의 주요 대선 공약으로 등장했던 '세종 천도론’(행정수도론)이 또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차기 집권 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공석이 된 대통령 집무실까지 '원샷'에 이전시키겠다는 구상을 앞다퉈 내놓은 상태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선 "충청 표심을 흔들기 위한 현실성 없는 약속의 반복"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의사당과 대통령 집무실 이전 필요성의 포문은 민주당 경선 주자들이 먼저 열었다.
이재명 후보는 17일 페이스북에서 "균형 발전의 심장 충청을 행정·과학 수도로 만들겠다. 임기 내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세종 집무실을 건립하겠다"고 말했다. 김경수 후보는 14일 회견에서 "국회와 대통령실까지 세종으로 이전해 행정수도를 마무리하는 게 대한민국 전체 구조를 짜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공언했다.
당선 직후 세종 근무 의지를 밝힌 김동연 후보를 제외한 두 후보는 임기 5년 동안 국회·대통령실 이전의 장기 로드맵을 그린다는 계획이다.
반면 집무실 이전 등을 둘러싼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당 지도부는 이른바 '세종의사당' 구상을 적극 피력했다. 전국 단위 선거에서 줄곧 '캐스팅 보트'로 꼽히는 충청권을 공략하지 못할 경우 대선 패배를 면키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21일 비대위 회의에서 "낡은 정치의 상징이 된 여의도 국회 시대를 끝내고 국회 세종 시대의 새로운 문을 열겠다"며 여의도 의사당 부지를 일반에 개방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세종 대통령 제2집무실 건립의 속도를 더욱 높이겠다"며 "향후 대통령 집무실 세종 완전 이전까지 염두에 두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해 왔다"고 강조했다.
양당이 지역 균형 발전을 골자로 하는 행정수도 변경론에 상당 부분 공감대를 이룬 것은 맞지만,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선 개헌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의견도 있다. 앞서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났던 만큼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수도는 관문 도시적 성격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까다롭다. 이런 관습적인 성격의 헌법을 임의로 고치는 것은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또 양당을 향해선 "충청 표심을 의식했을 가능성이 있는 반면, 수도권은 상대적인 박탈감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정치권이 국가 안팎에 당면한 현안부터 선제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대미 외교나 민생 회복 등의 문제들이 시급한 상황에서 세종 행정수도화는 재정이나 시간적 측면에서 당장 실현하기가 어렵다"며 "탄핵 이후에 실시되는 특수한 조기 대선 과정에서 수도 이전 문제는 큰 실익이 없는 이슈"라고 평가절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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