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고율 관세 부과 대상으로 지목된 유럽연합(EU)과 중국이 손을 잡고 대안을 모색할 방침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박 속에 EU과 중국이 미국에 맞서 공동 대응 체제를 구축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2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EU 대변인을 인용해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무역·경제안보 집행위원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이 다음달 초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무역기구(WTO) 장관급 회의에서 별도 회동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EU가 중국과의 연대를 통해 전략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이날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 역시 "양측은 중국-EU 경제 및 무역 협력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놓고 심도 있는 의견 교환을 진행하고, 중국-EU 고위급 교류를 위한 준비를 할 예정"이라고 한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셰프초비치 위원은 지난 3월 말 베이징을 방문해 왕 부장과 허리펑 국무원 부총리를 만났고, 지난달 8일에는 화상 통화를 진행한 바 있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력에 맞서기 위해 양측이 접촉을 강화하고 있다는 또 다른 신호라고 평가했다.
EU와 중국은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고율 관세 대상으로 지목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관세 공방을 벌이며 서로 100%가 넘는 관세를 주고 받았으나 이달 '제네바 합의'를 통해 90일간 서로 관세를 115%포인트씩 인하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또한 EU는 지난 주 트럼프 대통령이 내달 1일부터 50% 관세를 부과한다고 했으나 지난 주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과의 통화 이후 관세를 7월 9일까지 유예했다.
따라서 비슷한 상황에 처한 EU와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박에 맞서 공동 대응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중국 푸단대 국제학연구소 중국-유럽관계센터의 지엔쥔보 센터장은 "일부 서방 국가들의 보호무역주의와 일방주의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WTO를 핵심으로 한 다자간 무역 체제를 굳건히 지지하고 경제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주요 세력인 중국과 EU는 대화를 강화하고 이견을 적절히 조율해 경제 관계를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며 "이는 혼란 속에 있는 세계 경제에 확실성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글로벌타임스에 말했다.
한편 EU는 중국과의 접점을 넓히는 동시에 미국과의 협상도 병행하고 있다. 셰프초비치 집행위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옛 트위터)에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좋은 전화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셰프초비치 집행위원은 "집행위는 EU-미국 합의를 향한 건설적이고 집중된 노력을 계속해서 기울일 것"이라며 "우리는 계속해서 연락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인 통화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파울라 핀호 집행위 수석 대변인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정상 간 전화통화에서 "협상을 가속하기로 합의했고 정상 간 연락을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며 "우리는 늘 그랬듯 합의를 타결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올로프 길 집행위 무역담당 대변인도 협상안 관련 질문에 "여전히 상호 무관세 제안이 좋은 협상에 도달하기 위한 매력적인 출발점이라고 본다"고 답하면서도 '추가 양보안' 제시 가능성에 대해선 협상 중이라는 이유로 함구했다.
다만, 미국과 EU 간 협상 테이블에 오른 핵심 쟁점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실질적인 합의 도출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앤드루 스몰 독일 마셜 펀드 수석 연구원은 뉴욕타임스(NYT)에 "느리게 움직이는 열차들이 결국 충돌할지 아니면 새로운 움직임이 있는지 모르겠다. 현 상황에서 협상 방향이 바뀔 것으로 볼 근거가 없다"고 평가했다.
현재 EU는 에너지, 통신, 반도체, 철강 협력과 농산물 시장 개방 등 다양한 이슈를 협상 카드로 제시하고 있지만, 미국은 비관세 장벽 철폐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상태다. 관세와 관련해서도 EU는 '기본 관세 10% 유지'라는 기존 영국과의 합의 수준 이상은 수용 불가하다는 입장이나, 미국은 이를 협상의 최소 기준선으로 설정하고 맞서고 있다.
베렌베르크의 홀거 슈미딩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관세 발효까지 남은 6주가 모든 세부 사항을 해결하기에 부족할 수 있지만 무역 협정의 기본 틀을 마련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일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그는 최종적으로 미국이 모든 유럽산 제품에 20~30%의 일괄 관세를 부과할 경우 "EU는 미국에 대해 상당 수준의 보복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브뤼겔의 군트람 볼프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매우 불분명하다"며 "이것이 현재 협상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EU 주요 회원국들은 미국과의 대립보다는 신속한 무역 합의를 촉구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미국과) 논의가 잘 진전되고 있다"면서 "가장 호혜적인 무역이 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관세율이 최대한 낮아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카테리나 라이헤 독일 경제장관도 "해결책을 찾을 시간이 6주 남았다"며 "그 시간을 집중적으로 사용해 대서양 양쪽의 원활한 무역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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