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하이엔드 기술을 제외하면 중국이 대부분 따라잡았다." 중국의 거센 압박에 국내 산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아직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 업체조차 드물 만큼 중국의 빠른 추월 속도에 업계는 긴장 상태다. 그나마 한국이 기술 주도권을 지키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분야로는 '차세대 디스플레이'가 꼽힌다.
LCD(액정표시장치) 기술에서는 이미 주도권이 넘어갔으나 한국은 고부가가치 디스플레이인 OLED(유기발광다이오)에 집중하며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OLED 기술 격차는 2년여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K-디스플레이 산업의 전략적 전환점이 필요한 이유다.
LCD는 20여 년 전 디스플레이 산업의 판도를 바꾼 혁신적인 기술이었으나 구조적으로 백라이트가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 한계는 OLED의 등장으로 더 뚜렷해졌다. OLED는 자발광 디스플레이로 픽셀 하나하나가 스스로 빛을 내기 때문에 화질, 두께, 소비 전력 등에서 우수하다. 유연성도 뛰어나 구부리거나 접는 폼팩터 구현이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한국 디스플레이 업계는 일찌감치 OLED에 집중해 독보적인 자리를 꿰찼다.
LCD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중국 업체들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대규모 생산에 나서면서다. 실제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LCD 시장은 지난해 약 112조원에서 2028년까지 연평균 1% 내외의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OLED는 대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지난해 약 76조원에서 연평균 5%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2028년엔 1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 TV, 웨어러블 기기 등 첨단 IT기기의 핵심 부품으로 OLED가 부상하고 있어서다.
중국 BOE, CSOT 등 주요 기업들도 스마트폰용 OLED 출하량을 늘리며 샤오미와 화웨이 등 자국 기업을 상대로 OLED 내재화를 꾀하고 있다. 아직 기술적 한계는 분명하지만 정부의 적극적이 지원을 등에 업고 내수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그 결과 중국산 스마트폰 내 한국산 OLED 패널 사용 비중은 2021년 79%에서 지난해 16%로 크게 낮아졌다.
한국이 기술적으로 앞서고 있으나 한·중 간 격차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은 지난달 전 임직원에게 메일을 통해 '기술'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정 사장 말대로 기술 차별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만이 유일한 해법임에는 틀림없다.
여기에 K-디스플레이의 기술을 유지하기 위한 정부의 전략적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최근 정부가 50조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을 신설하고, 디스플레이 등 핵심 산업에 대한 지원 계획을 발표한 것은 고무적이다. 다만 맹렬히 쫓아오는 중국을 따돌리기엔 역부족이다. R&D 세액공제 확대, 직접 환급 제도 강화, OLED 생산 단가 절감을 위한 기술 개발 지원 등 보다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OLED 기술의 대중화를 위해 수요 확대 전략도 병행되어야 한다. 한 예로 투명 OLED를 국립박물관 전시 시스템에 도입하거나 차량용 디스플레이로 확대 적용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융합산업 창출을 꾀해야 한다. 또 소비자들이 OLED의 우수성을 체감할 수 있도록 친환경 디스플레이 구매 시 보조금 지급 같은 인센티브도 고려해볼 수 있다.
OLED는 단순한 디스플레이 기술을 넘어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를 비추는 빛이다. 빛이 꺼지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제대로 투자하고 발전을 이어가 세계 무대에 K-디스플레이의 영향력을 널리 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