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재 칼럼] 혼란을 딛고 협치와 통합의 길로

··박원재 논설고문
[박원재 논설고문]

21대 대통령 선거의 날이 밝았다.
오후 8시 투표를 마치고 개표가 진행되면 자정 즈음엔 새 대통령이 선출된다. 비상계엄과 국회의 대통령 탄핵 소추,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그리고 치열한 선거운동을 거쳐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의 국정을 책임질 새 정부가 출범하는 것이다.
계엄이라는 돌발 변수로 인해 갑작스럽게 대선을 치르는 탓에 정당과 후보는 집권계획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유권자는 후보의 자질을 평가하고 공약을 검증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 정책과 비전의 경쟁을 통해 공동체가 가야 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지만 선거는 유례를 찾기 힘든 막장선거로 치달았다. 자질과 공약에 대한 판단은 뒷전으로 밀리고 저주에 가까운 막말과 비방, 인신공격이 선거기간 내내 난무했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이 지닌 역사적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혼란을 안정으로, 헌정 마비의 위기를 헌정 질서의 회복으로 바꿀 책무를 짊어졌기에 그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22일간의 선거운동 기간이 후보와 정당의 시간이었다면 선거일인 오늘은 유권자들의 시간이다. 민주주의에서 유권자는 국가의 주인이며 투표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고 국가의 방향을 결정한다. 투표는 신성불가침의 권리인 동시에 의무다.
어떤 후보가 국정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지, 안팎의 도전으로부터 국익을 지킬 적임자인지, 국민통합에 대한 실천 의지를 갖고 있는지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내란 심판’과 ‘범죄 방탄’ 공방에서 한발짝 떨어져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고민해야 할 시간이다.
국민들의 관심은 34.74%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사전투표 결과로도 나타난다.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리더십 공백과 국론 분열을 넘어서 경제를 살리고 국민을 통합해 달라는 뜻이 투표 참여 열기에 담겨 있다.
후보들은 투표율의 유불리를 따지기에 앞서 숫자에 담긴 민의를 헤아려야 한다. 입법권력의 법안 강행 통과와 탄핵 남발, 행정권력의 거부권 행사와 버티기로 빚어진 혼돈과 분열 속에서 국가 위상은 추락하고 민생은 망가졌다. 반목과 대결 일변도의 정치로는 우리 사회가 진영간 다툼의 질곡에 빠져 침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이제 협치와 통합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민생을 살리기 위한 전제조건이자 시대정신이 됐다. 이념 지형상 중도에 속하는 유권자 중에는 누가 더 통합형에 가까운지, 협치할 의지가 있는지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후보들은 선거운동을 하면서 여러 차례 국민 통합을 강조했다. 이재명 후보는 집권하면 정치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고 김문수 후보와 이준석 후보는 협치를 통한 국정안정을 다짐했다. 네거티브 공방에 질린 많은 유권자들이 이런 약속에 반신반의하면서도 귀를 기울였다. 통합과 협치에 대한 발언이 표를 얻기 위한 립서비스 또는 일회성 식언(食言)에 그친다면 유권자를 기만한 행동은 언젠가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다.
지금 민생은 정치적 불확실성과 내수 위축, 대외 악재가 겹쳐 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다. 올해 ‘0%대 성장’은 기정사실이 됐고 수익성이 악화된 기업들은 투자 여력도, 의욕도 없는 상태다. 좋은 일자리가 줄어드니 경제에 활력이 생기지 않는다.
새 대통령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숙제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라는 데는 후보들도 동의한다. 이 후보는 20조원 이상의 추경과 비상경제대응 TF, 김 후보는 30조원 추경과 비상경제 워룸 설치 등을 예고했지만 이런 구상이 실행력을 갖기 위해서도 협치는 필수다.
지금의 위기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국난(國難) 수준이어서 대응도 비상해야 한다. 1998년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확인한 것처럼 정파를 초월해 해결책을 제시해야 국제 사회와 시장을 설득하고 경제주체들의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다. 경제문제 해결이 곧 새 정부의 성적표라는 점에서 통합과 협치는 집권세력이 먼저 손을 내밀고 풀어야 한다.
새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 그동안 미뤄온 관세협상을 비롯해 주한미군 위상 재조정,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에 나서야 한다. 안보 위기가 현실로 닥치기 전에 북한 핵개발에 대한 대응 방향을 결정해야 하고 미·중 갈등 국면에서 중국과의 관계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통해 두 달가량 준비한 전임자와 달리 취임과 동시에 쉽지 않은 실전에 나서야 한다. 새 대통령이 내부 정쟁의 한복판에서 발목이 잡히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유권자는 없을 것이다.
다행히 선거가 끝나면 경제에 숨통이 트일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조금씩 높아지는 분위기다. 돈의 풍향에 민감한 외국계 투자은행은 최근 대선을 계기로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바닥을 헤매던 소비자심리지수는 5월 들어 기준치인 100을 넘어 ‘새 정부 효과’에 대한 기대가 생기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희망의 싹을 키워 꽃을 피우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이 반(反) 헌법적 계엄으로 훼손된 민주주의의 가치와 제도를 회복하고, 진영간 대결로 갈라진 국민을 통합하고, 꺼져가는 경제 성장동력을 되살리는 계기를 만드는 선거가 돼야 한다.
개표가 마무리된 뒤 승자와 패자가 국민을 감동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 패자가 승복 선언을 통해 위기 극복을 위한 전폭적인 협조를 약속하고, 승자가 경쟁 후보의 공약 중 수용 가능한 정책의 추진을 다짐한다면 이번 대선은 네거티브로 얼룩진 저질선거라는 오명을 씻고 소임을 다한 선거가 될 수 있다.
역사는 6·3 대선을 어떻게 평가할까. 혼란을 딛고 새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성공한 선거가 될 것인가, 진영 갈등을 해소할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실패한 선거가 될 것인가. 결정은 유권자의 몫이고 평가를 받는 것은 21대 대통령이 될 것이다.


박원재 필자 주요 이력
△핀란드 알토대 경영학석사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논설위원, 경제부장 △동아닷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 △경성대 교수(현)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