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반도체 제조 장비 투자액은 전년 대비 10% 증가한 1171억 달러(약 160조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중국이 절반에 육박하는 496억 달러를 차지했는데 정부가 반도체 생산능력 확대와 기술력 제고에 팔을 걷어붙인 결과다.
실제 중국 메모리 기업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와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스(YMTC)는 내수를 중심으로 빠르게 점유율을 늘리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이 주도하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역시 미국 마이크론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마이크론은 올해 140억 달러(약 20조원) 규모의 설비투자(CAPEX)를 단행하는데 대부분 HBM 분야에 투입된다.
다행히 이재명 대통령도 사안의 중대성을 인지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취임 선서에서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산업에 대한 대대적 투자와 지원으로 미래를 주도하는 산업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 후 1호 공약으로 반도체 산업 지원 계획을 발표하는 등 지속적으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다만 반도체 업계가 줄곧 요구해 온 '주 52시간 근로시간 특례제도 도입' 관련이 없었던 점은 아쉽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반도체 업계 내에서 가장 큰 사안은 근로시간 유연화"라며 "우리나라와 치열하게 경쟁 중인 대만은 (생산라인을) 풀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대립 없이 업계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서 (주 52시간 예외 적용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는 물론 배터리 업계도 미국·중국과 같은 정부 차원의 직접적인 보조금 지원을 요구한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현재 세액공제 등 간접적 지원은 이뤄지고 있지만 미국이나 일본처럼 현금성 보조금 같은 직접적인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수익성 악화로 위기에 놓인 국내 배터리 업계도 '직접환급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이익이 나야 혜택을 받는 기존 제도로는 미국·중국과 보조금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 이후 투자금의 최대 30%를 현금으로 환급하고 있으며, 중국도 140조원 이상을 투입해 반도체 산업을 키워왔다.
'한국판 IRA'로 불리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민주당 등 다수 의원이 발의해 놓은 상태지만 기획재정부는 재정 부담과 산업 간 형평성을 이유로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 둔화와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른 대외 불확실성 등으로 K-배터리 산업이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며 "여야 모두 문제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만큼 이번 정부에서 직접환급제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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