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희 칼럼] 대통령실 이전… '소통의 약속'은 어디로

이재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이재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2022년 20대 대선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10대 공약 중 하나로 '대통령실 개혁'을 내세웠다. 그는 "기존 청와대를 해체하여 제왕적 대통령제를 청산하고 국정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대선 후 일주일 만에 윤 당선인은 용산 국방부와 합참을 대통령실 이전지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나 윤 전 대통령 파면으로 치른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청와대 복귀를 선언했다. 일반 가정도 이처럼 초특급으로 이사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집무실 이전은 수도 이전에 버금가는 중대 사안이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은 공약 발표 후 석 달 반, 대선 이후 두 달 만에 대통령실을 이전했다. 당시 KBS 여론조사에서는 반대 53.8%, 찬성 40.6%였음에도 민주적 절차와 법률을 무시한 채 진행되었다. 일반 가정도 이사를 위해 경제 여건, 교통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하고 집을 물색하여 계약하기까지 통상 석 달이 소요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청와대 이전을 공약했다.  그러나 두 대통령의 공약은 목적과 실행에서 차이가 있다. 문 전 대통령은 '행정수도로의 이전'을 목표로 했고, 윤 전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 강화'를 이유로 내세웠다.  또한 문 전 대통령은 다각도 검토 후 계획을 철회했지만 윤 전 대통령은 무리하게 실행했다.  윤 전 대통령이 '구중궁궐' 청와대를 벗어나 국민과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약속은 출근길 문답으로 일시적으로 지켜졌으나 기자의 질문 태도를 문제 삼아 61회 만에 중단함으로써 소통 약속은 식언이 되고 말았다. 

선진국에서는 대통령과 장관들이 언론과 자주 소통합니다. 미국에서는 백악관 대변인이 거의 매일 브리핑하고, 대통령도 정기적으로 언론과 대화합니다. 일본에서도 총리는 출퇴근길 약식 인터뷰에 응하는 것을 의무로 여긴다.  보도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취임 165일까지 약식 인터뷰를 100회, 공식 기자회견을 10회 했고, 스가 전 총리도 같은 기간 공식 기자회견 8회를 포함해 인터뷰를 61회 했다고 한다. 

21대 대선 후보들은 용산 대통령실을 일시적으로 사용하다 청와대나 정부서울청사로 복귀한 후 장기적으로 세종시 이전을 제안했다.  대통령실 이전이 원점으로 돌아가면 예산 낭비와 함께 국방부와 외교부 시설 재배치에도 혼란이 야기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으로 지난해까지 832억원이 투입되었고, 대통령 관저와 합참 이전 비용까지 합치면 수천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런 예산 낭비 외에도 대통령 출퇴근으로 인한 국민 불편, 대통령실과 군 수뇌부의 근접 배치로 인한 비상계엄 우려 등이 국내외 정치·경제에 큰 후유증을 남겼다..

윤 전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을 공약했지만 실제로는 국민이 선거로 만든 정치 구도를 무시하고 대통령실 이전부터 국민, 전문가, 정부·여당 내부 의견도 듣지 않는 제왕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결국 잠시 실시했다 중단된 출근길 문답은 '대국민 쇼'로 끝났다.  또한 윤 정부의 4대 개혁과 국정 과제도 '대국민 쇼' 성격이 강했다. 의료개혁이라며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렸지만 정작 필수 의료와 지방 의료 대책, 수가 조정 등 핵심 방안은 제시하지 않아 의료계가 1년 넘게 혼란에 빠졌다. 노동개혁에서는 노조의 일자리 세습과 이권 개입을, 교육개혁에서는 교육계의 연구비 배정과 수능문제 출제를 카르텔 문제로 규정해 도덕성을 공격했다.  또한 윤 전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한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1차 탐사에서 경제성이 부족한 것으로 판명되어 당시 해병대 채 상병 사건 논란 속에 국면 전환용 쇼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3년간 우리는 자질 부족한 대통령의 국정 운영으로 인한 폐해를 목격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지도자 덕목을 갖추고 민주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선출해야 하며 이재명 대통령도 이를 명심해야 한다. 

첫째, 상호 존중의 정신으로 소통하는 인물이어야 합니다. 정치는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바탕에서 벌이는 경기이지 일방적 항복을 요구하는 전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소야대 정국이라도 총선 민의에 따른 결과이므로 수용하고 대화하며 협치해야 한다. 

둘째, 겸손하고 삼가는 태도, 즉 겸허근신(謙虛謹愼)의 덕목이 생활화된 인물이어야 한다.  오만무도한 사람이나 군대, 검찰, 경찰 등에서 상명하복 문화에 익숙한 사람은 참모나 장차관의 조언을 경청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셋째, 과학적 사고로 국정을 운영하고 '공정과 상식'의 원칙에 따라 자기 가족과 측근의 잘못도 일반인과 동일하게 처리하는 인물이어야 합니다. 윤 전 대통령의 대통령실 이전 결정이 무속인의 영향 때문이었는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국가 정책을 결정하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통령의 국정 경험이나 이해가 부족할수록 국가적 사안은 국민 여론 수렴을 위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한 대통령이 국민과 직접 소통하거나 언론을 통해 국가 현안을 자주 설명하는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많은 예산을 들여 대통령실을 옮겨도 아무런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이재희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교육학박사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 ▷미국 텍사스대(오스틴) 연구교수 ▷한국초등영어교육학회 회장 ▷경인교육대학교 6대 총장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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