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상정하고 생산·수입 등 전략 재검토에 나섰다. 조달지 다변화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사들은 미국의 이란 공격 발표 직후부터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원유 운송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업계 관계자는 "주 7일 비상근무 체제를 가동해 유조선 현황을 실시간 점검 중"이라며 "불황으로 정제 마진이 낮아진 가운데 원유 수급까지 불안해지면 그간 겪어보지 못한 사상 초유의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내 정유사들은 현행법상 7~8개월치 원유를 비축하고 있어 공급 대란이 당장 벌어지는 건 아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실제 봉쇄가 감행되면 세계 석유 물동량 20%가 수송 차질을 빚게 돼 원유 가격 급등이 예상된다"며 "만일 주변국으로 봉쇄가 확대되거나 (전쟁이) 장기화하면 중동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원유 수급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항공업계도 이번 사태로 유가와 환율이 오를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연료비는 항공사 전체 운영비에서 30% 이상을 차지해 국제 유가가 오르면 수익성에 치명적이다. 항공유를 연간 3100만 배럴 사용하는 대한항공은 국제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르면 연간 손해액이 3100만 달러(약 430억원)에 달한다. 항공기 리스, 공항 이용료, 연료비 등 각종 고정비를 외화로 결제하기 때문에 환율이 오르는 것도 악재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 대한항공은 약 350억원, 아시아나항공은 284억원의 외화평가손익이 발생한다.
전자·자동차 산업 역시 관세 리스크에 더해 중동발 리스크로 이중고에 놓였다. 전자업계는 소비심리 둔화와 프리미엄 제품 수요 감소 등을 우려한다. 중동 확전이 글로벌 경기 침체와 맞물려 반도체 수요도 쪼그라들 가능성이 있다.
미국 관세 장벽을 중동 지역 수익 확대로 넘으려 했던 현대차는 사태를 예의 주시 중이다. 이스라엘 쇼룸은 현지 정부 지침에 따라 전면 폐쇄했고, 이란에서는 전쟁 장기화에 따른 판매 위축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나리오는 현대글로비스를 중심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해 중동에서 1만대 수출탑을 쌓은 KGM도 올해 튀르키예, 이스라엘, 이집트, 중동 등 신시장에 전년 대비 16% 증가한 12만7000대를 수출하겠다는 중장기 전략을 세웠지만 이번 사태로 마케팅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돼도 차량 수송에는 직접적인 타격이 없지만 전쟁 분위기가 지속되면 중동 지역 판매량에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향후 미국이 이란 경제 제재 동참 등을 요구할 수도 있어 정세 변화를 예민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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