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 치는 직원에 대한 회사 반응 치고는 너무 안일하다. 열심히 일할 사람 널렸다."
최근 현대자동차가 울산공장 직원 390여 명에 대해 대규모 징계를 단행했다는 뉴스에 달린 베스트 댓글이다. 사건 전모는 이렇다. 생산직 근로자와 관리자급 간부가 조기 퇴근을 해 놓고도 연장 근무를 한 것처럼 속여 부당하게 임금을 수령한 사실이 밝혀지자 회사가 감봉 처분을 했다는 얘기다.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 "썩은 가지는 도려내야 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좋아요'가 1만개 달린 댓글도 다르지 않다. 한국 노동문화 발전에 기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노조를 향한 시선이 이렇게 따가웠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아리다.
때마침 현대차 노사가 올해 임금·단체협약(임단협) 협상을 시작했다. 노조가 사측에 제시한 요구한은 △월 기본급 14만1300원 인상 △전년 순이익 중 30% 성과급 △직군·직무별 수당 인상 또는 신설 △정년 연장(현행 60→64세) △주 4.5일제 도입 등이다. 또 통상임금 위로금 1인당 2000만원, 현재 통상임금 대비 750%인 상여금을 900%로 늘리는 방안, 생산직 근로자 추가 채용 등도 포함됐다.
노조 측 요구 대부분은 자동차 산업이 자율주행·전기차 등 미래 모빌리티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도기적 상황임을 고려하면 쉽지 않다. 내연기관차에는 부품이 3만개 이상 필요하지만 배터리로 가동되는 전기차는 엔진조립 과정이 생략돼 1만5000~2만개 부품 조립만으로 가능하다. 현재 생산직 근로자 대비 60%만 있으면 문제 없이 공장이 돌아간다는 의미다. 글로벌 보호무역 기조가 '뉴 노멀'이 되면서 현지 공장 설립도 필수적이다. 폭스바겐그룹이 독일 내 3개 공장을 폐쇄하고, 혼다가 일본 내 생산 물량 공장을 줄이는 대신 해외 생산 물량을 늘리는 것이 이와 같은 맥락이다.
현대차그룹도 2028년까지 미국에 210억 달러(약 31조원)를 투자해 현지 제철소와 전기차 공장을 짓는 상황이다. 노조 입김이 강한 현대차그룹은 전동화 전환으로 인한 인력조정을 자연감소에 기대 해결한다는 '묘수'를 냈다. 현재 현대차 생산직은 절반 이상이 50대라 매년 2000여 명이 정년 퇴직 대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년을 64세까지 늘리면 회사가 기대한 자연감소 효과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어 그만큼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현대차는 자율주행과 첨단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로 무장한 미국 테슬라, 중국 전기차 굴기의 상징인 BYD와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테슬라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통해 5초에 자동차 1대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석·박사 출신 연구개발(R&D) 인력만 11만명에 달하는 BYD는 하루 12시간씩 일을 하며 기술 추격에 매진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모두 노동문화가 유연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대차는 이들과 싸워 미래 모빌리티의 패권을 한국으로 가져와야 하는 막중한 위치에 놓였다. 노조 측 요구가 파업으로 관철되면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환, 더 나아가 한국의 미래까지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만난 40대 현대차 직원 A씨는 "대부분 젊은 직원들은 중장년층 중심인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자신들 미래는 물론 회사 전체 경쟁력을 갉아먹는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노조 측 요구가 지속 가능하려면 그 내용이 국민적 상식과 시대 정신에 부합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의 경제 정책 성공을 위해서는 노동개혁이 필수적이다. '귀족 노조=썩은 가지'로 보는 2030세대의 분노를 이해하는 일, 다른 한편에선 '아메리카 드림' 신화를 일궈낸 기성세대의 불안함을 읽는 노력에서 노동개혁의 첫 단추가 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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