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앞다퉈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강화 일환으로 발간하기 시작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구색 맞추기에 그치고 있다. 2021년부터 도입된 지속가능보고서 작성 건수는 늘었지만 내용은 원론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리스크 대응 체계나 ESG 실천 사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 들어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관련 공시는 NH투자증권, 키움증권 등 총 5건이 올라왔다. 도입 후 상반기에 올라온 공시 건수가 0~3건에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5건 모두 원론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전산 사고나 시스템 장애 등 이슈가 불거졌던 증권사들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살펴봐도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문구는 빠지지 않지만, 구체적 사례나 개선 계획은 찾기 어렵다.
올 상반기 잦은 홈트레이딩시스템(HTS) 접속 지연 등으로 투자자 불만이 제기된 키움증권의 2025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는 전산장애 발생과 관련한 시스템 점검 및 대응체계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었다. 대신 기후리스크를 포함한 리스크를 3단계(식별-평가-관리)로 대응하고 있다는 형식적인 내용이 담겼다.
미래에셋증권도 마찬가지. 2024년 통합보고서에서는 유동성 비율이나 조정 NCR 등 각종 규제지표를 KPI로 설정해 리스크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지만, 최근 발생한 매매 시스템 장애 등과 관련한 대응 사례는 별도로 다루지 않았다.
다른 증권사들도 사정은 같다. NH투자증권, 교보증권, 다올투자증권, SK증권, 상상인증권 등 중소형 증권사들도 매년 ESG보고서를 내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리스크 관리 항목에서 ‘리스크 한도 설정’, ‘위험감수성 분석’, ‘사전 모니터링’ 등 정형화된 표현을 반복할 뿐 실제 사례 기반 분석은 드물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실질적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보안적인 문제도 있어 보고서에 모든 내용을 담거나 구체적인 사안을 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해명했다.
증권사들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의 주요 동기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ESG 평가 기준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ESG 수준을 투자 판단 기준에 반영하기 시작하면서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보고서 발간이 확산됐다”며 “중소형사들도 추세에 따라 형식적으로 보고서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투명한 경영’이나 ‘이해관계자 소통’이라는 본래 목적보다 대외적 인증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ESG 보고서의 양적 확대는 긍정적 변화지만 형식적 보고에 그치고 있다"며 "금융당국도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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